20020130092047-0402-aviaAvia – Vsem(For Everybody) – Hannibal, 1988

 

 

‘팝 스탈린주의’의 웃기는 냉소와 풍자

이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은 ‘러시아의 황신혜 밴드’였고 지금도 이 생각에 변함은 없다. 즉, 이들의 음악은 ‘키치’라든가 ‘패스티시’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하기에 제격이다. ‘풍자’와 ‘아이러니’라는 단어를 동원하는 것은 왠지 진부해서 삼가고 싶지만 별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시종일관 ‘골 때린다’는 반응을 그칠 수 없는 음반이라는 이야기다. 가사를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웃기는’ 음악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지할수록 우습고, 우스울수록 진지하다.

본문 텍스트를 읽은 독자를 위해 설명하면 아비아(Avia)는 스뜨라니에 이그리(Stranniye Igry: Strange Games)라는 밴드의 반쪽이다. 스트레인지 게임스가 아끄바리움, 알리사, 끼노와 더불어 미국에 최초로 소개된 컴필레이션 앨범 [Red Wave: Four Underground Bands in the U.S.S.R.]에 수록되었다는 소개도 필요할 것이다. 니꼴라이 구세프(Nikolai Gusev), 알렉산드르 콘드라쉬낀(Aleksandr Kondrashkin: 드럼), 알렉세이 라호프(Aleksei Rakhov: 색서폰, 기타)를 기본 편성으로 하고 기타 여러 게스트가 참여하여 만들어진 이 밴드는 모스끄바의 즈부끼 무와 더불어 1980년대 말 – 1990년대 초 러시안 록 중에서 서방에서 가장 ‘각광받은’ 스타일이었다. 이 음반 역시 즈부끼 무의 음반처럼 러시아어 음반이지만 영국의 한니발(Hannibal)에서 발표된 국제적 작품이다(한니발 레이블은 포크 음악과 월드 뮤직 전문 레이블이다).

앞서 언급한 키치와 패스티시의 용법은 모든 곡에서 찾아볼 수 있다. 촌스러운 음색의 키보드 리프, 고의로 허세를 부리는 색서폰이 주도하다가 갑자기 템포가 빨라지면서 “Aviavia”라는 합창과 “빰빰빰”하는 합주로 끝나는 첫 트랙은 이 음반의 음악적 컨셉트를 집약하고 있다. “Nochyu V Karaule(Night Of Guard)”에서는 고음의 바이올린 소리가 지속되는 가운데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고, “Semafor(신호대)”에서는 러시아(및 동유럽)의 ‘민속성’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아코디온까지 더해져서 코믹함을 더한다.

음악적으로는 ‘올드 스쿨’ 스카, 라운지 재즈(혹은 칵테일 재즈), 영화 음악, 그리고 ‘집시 유랑극단’에서 사용했을 법한 음악들이 ‘역설적으로’ 혼합되어 있다. 후반부에도 이런 재미는 계속되고 특히 훵키한 베이스라인으로 시작되다가 코러스에서는 스카 리듬이 쿵짝쿵짝대는 “Vesennyaya Massovaya(Spring, Mass)”가 가장 흥미롭다. 훵키한 베이스 라인과 촌스러운 키보드 리프가 주구장창 반복되면서 구호를 외치는 듯한 보컬이 전개되는 마지막 트랙 “Urok Russkogo Yaziyka Chast’ I(Do Svidaniya)(Russian Language Lesson Part 1)(Good-Bye)”도 흥미롭다.

이들의 무대가 소비에트 사회의 ‘일상적 구습(舊習)’이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역설적으로 패러디한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감흥이 더 생생할 것이다. 한 예로 이들은 스탈린 시대 이른바 ‘체육 문화(physical culture)’라는 퍼레이드를 무대 위에서 재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부류의 음악에 ‘팝 스탈린주의’라는 역설적 명칭을 부여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런 ‘장난끼’는 1990년에 “1,000번째 위대한 10월 혁명 기념일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가졌던 일련의 콘서트 투어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1997년에도 “사회주의 10월 대혁명”을 기념(!)하는 공연을 가지는 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런 공연에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고 골수 스탈린주의자들이 티켓을 사서 관람하다가 분노에 가득찬 표정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물론 ”풍자적 재미’가 음악의 전부냐’라는 반론은 여전히 남지만, 소비에트 사회의 근엄한 분위기에서 ‘웃기는’ 음악의 가치는 소중해 보인다. 20011029 | 신현준 homey@orgio.net

8/10

사족
1. 1995년 이후 라호프는 스뜨라니에리 이그리에서 함께 활동했던 빅또르 솔로구브(Viktor Sologub)와 다시 만나 데두슈끼(Seadshuki)라는 일렉트로닉 프로젝트를 결성하여 1998년 영국에서 레코딩한 [The Art Of Stone Statues]를 발매하고, 보리스 그레벤쉬꼬프와 비야체슬라브 부뚜소프(Vyacheslav Butusov) 등 러시안 록의 ‘전설’들과도 함께 작업하고 있다.
2. 이 음반을 발견한 곳은 이들의 근거지인 뻬쩨르부르그도, 음악산업의 글로벌 센터인 뉴욕이나 런던도 아니고, 종로에 있는 한 대형매장이었다. 마침 재고 LP를 대량방출했을 때인데, 이런 음반이 어떻게 거기까지 흘러들어왔는지는 궁금하기만 하다. 아마도 내가 집어들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폐기처분되었을 것 같다.

수록곡
1. Aviavia(Aviavia)
2. Nochyu V Karaule(Night Of Guard)
3. Semafor(Signal)
4. Ya Ne Lyublyu Tebya!(I Don’t Love You)
5. Prosnis’ i Poi!(Wake Up And Sing!)
6. Urok Russkogo Yaziyka Chast’ II(Russian Language Lesson Part 2)
7. Vesennyaya Massovaya(Spring, Mass)
8. Prazdink(Holiday)
9. Urok Russkogo Yaziyka Chast’ I(Do Svidaniya)(Russian Language Lesson Part 1)(Good-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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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데두슈끼(Seadshuki) 공식 사이트
http://www.deadushki.ru/eng/index.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