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16093218-0320AlisaAlisa – Energia(Energy) – Melodiya, 1985/1988

 

 

절망과 소외의 세대의 흑백의 자화상

루이스 캐롤(Lewis Carrol)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부터 밴드 이름을 차용한 이 러시아 밴드의 음악은 어둡고 침울하면서도 거칠고 에너지가 가득하다. 빅또르 쪼이와 끼노의 음악이 어둡지만 거칠지 않다면, 그리고 유리 셰브추끄와 D.D.T.가 거칠지만 어둡지 않다면 알리사(Alisa)의 음악을 대략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얼핏 보기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하드 록’과 ‘뉴 웨이브’를 결합시키려고 한 이들의 시도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약물문화가 발달한 나라에 사는 사람이라면 “질 나쁜 약물을 복용할 때의 기분”이라고 평할 것이다.

이 앨범은 멜로지야에서 ‘무단 재발매’한 음반들 중 하나이지만, 1985년에 비공식 테이프(마그니즈다뜨)로 발매되어 뻬쩨르부르그 록 뚜소브까(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광범하게 배급된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닥터 꼬스쨔(Dr. Kostya)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꼰스딴찐 낀쩨프(Konstantin Kinchev)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작위적인 목소리 톤으로 아무 것도 거칠 것 없는 같다. 무대에서 그의 모습은 영국의 고딕 록 밴드의 프론트맨들이 즐겨 구사하는 ‘캠프 페르소나(camp persona)’를 연상하면 대략 비슷할 것이다.

가장 알리사다운 트랙은 “Miy Vmeste(We Together)”과 “Moe Pokolenie(My Generation)”이다. “Miy Vmeste”에서는 긴장감을 던지는 드러밍과 대충 치는 듯한 기타 피킹에 이어 노래한다기보다는 지껄여대는 버스(verse) 뒤에 “Miy Vmeste!”라고 툭툭 내뱉는 코러스가 나온다. 중간에 나오는 신서사이저의 촌스러운 소리는 ‘여기는 뻬쩨르부르그의 지하실’라는 선언으로 들린다. 이들을 대표하는 곡이자 1980년대 소비에트 청년의 자화상인 “Moe Pokolenie”도 구성은 비슷하다. 단지 기괴한 바이올린 소리와 성의 없는 기타 스트러밍과 더불어 극도로 억눌린 분위기에서 속삭이듯 노래하는 버스(verse)와 색서폰 소리와 더불어 극도로 흥분하여 소리질러대는 코러스(chorus)의 대조가 극도로 선명하다는 점이다. “이 녀석이 바로 구석에서 침묵하는 나의 세대 / 나의 세대는 감히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네 / 나의 세대는 고통을 느끼지만 다시 채찍 밑에 있게 된다네 / 우리 세대는 내려다 본다네 / 우리 세대는 낮을 두려워 하지 / 우리 세대는 밤을 지키네 / 아침마다 자신을 먹어 치우고”라는 자조적 가사까지 음미하면 이들의 소외감과 좌절감을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알 수 있다.

이런 대조의 기법은 “Eksperimentator(Experimentator)”와 “Ko Mne(Come To Me)”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등장한다. “Eksperimentator(Experimentalist)”에서는 앞 부분에서 1분 동안 지속되는 클래시컬 음악의 자연스럽고 우아한 사운드와 그 후 등장하는 드럼 머쉰과 신시사이저의 생경하고 작위적인 사운드가 대조된다. “Moe Pokolenie”와 더불어 또 하나의 송가인 “Ko Mne(Come To Me)”도 마찬가지다. 나선형의 신서사이저와 더불어 차분하게 시작하지만 코러스에 이르러 보컬의 기괴한 목소리가 볼륨을 높일 때면 동굴 속에서 미아가 된 기분까지 들 정도다. 이는 마치 소비에트의 공식 사회와 비공식 사회 사이의 차이만큼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 두 곡을 포함하여 “Bolna(Wave)”의 인트로 등 여러 트랙에서 등장하는 색서폰의 기괴한 소리도 프리 재즈 정도는 아니라도 이들의 ‘미칠 듯한’ 정서를 충분히 표현해 준다.

상대적으로 밝고 경쾌한 밝은 분위기의 곡들도 있다. 예를 들어 타이틀곡 “Energia(Energy)”를 비롯하여 “Meloman(Music Maniacs)”, “Plokhoi Rok’n’rol(Bad Rock’n’roll)” 그리고 재즈 풍의 “Doktor Bugi(Doctor Bugi)” 등이다. 이들 트랙들은 ‘지금이 어느 땐데….’라는 말이 나올 법한 ‘후진국형 로큰롤’ 스타일이라서 처음 들을 때는 다소 귀에 거슬리기도 한다. 재즈 풍의 “Doktor Bugi”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런 낙후된 스타일도 ‘조야한’ 사운드, 그리고 낀쩨프의 빈정거리는 어투와 결합하면 자기풍자 혹은 자기희화화라는 코드를 만들어낸다. 이런 풍자와 희화화가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빅또르 쪼이(‘비쨔’)와 끼노가 로맨티스트 시인 같다면 꼰스딴찐 낀쩨프(‘꼬스찌야’)와 알리사는 니힐리스트 극작가 같다. 끼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바우하우스(Bauhaus),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등과 함께 들어보면서 대처 수상 치하의 영국과 안드로포프 당 서기장 치하의 러시아(구 소련)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암울했을까를 비교하면서 상상해 보는 것도 꽤 흥미롭다. 당시 한국에서는 어떤 음악이 있었을까를 슬쩍 떠올려보는 것도. 들국화, 시인과 촌장 그리고 또 누가 있었지… 20011015 | 신현준 homey@orgio.net

9/10

수록곡
1. Miy Vmeste(We Together)
2. Bolna(Wave)
3. Meloman(Music Mania)
4. Doktor Bugi(Doctor Bugi)
5. Plokhoi Rok’n’rol(Bad Rock`n Roll)
6. Moe Pokolenie(My Generation)
7. Eksperimentator(Experimentalist)
8. Ko Mne(come to me)
9. Sokoviyzhimatel'(Exploiter)
10. Energia(Ener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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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Alisa 공식 사이트
http://www.alisa.ru
Alisa 비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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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sa에 관한 바이오그래피, 디스코그래피, 음원(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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