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vizor – Otchuzhdenie(Alienation) – Melodiya, 1989 러시아의 블랭크 제너레이션의 소외감 미하일 보르즈이낀(Mikhail Borziykin)이 이끄는 뗄레비조르(Televizor)는 1987년 발표한 “Viyiti Iz Pod Kontrolya(Get Out Of Control)” 이라는 노래로 ‘글라스노스찌 시기’를 상징한 밴드다. 미하일 보르즈이낀(애칭 ‘미샤(Misha)’)의 신랄하고 직설적 가사는 KGB나 당국 뿐만 아니라 뻬쩨르부르그의 록 커뮤니티(이른바 록 뚜소브까)로부터도 ‘왕따’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최근에는 당시에 그가 반감을 품었던 인물인 마이끄 나우멘꼬(Mike Naumenko)의 주빠르끄(Zoopark)와 공동으로 앨범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불편했던 관계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지만 이 앨범의 제목이 ‘소외’라는 사실을 보면 소비에트의 공식 사회는 물론 비공식 사회인 록 커뮤니티로부터도 소외된 이들의 정서가 어땠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미샤와 뗄레비조르가 록 커뮤니티로부터 내부검열을 당하면서 연주를 금지 당하는 빌미를 제공한 곡이 바로 “Tvoi Papa-Fashist(Your Papa-Fascist)”였고, 이 곡이 수록된 비공식 데모 테이프(라이브 부틀렉)도 배급을 금지 당했다. 이 곡은 지금 소개하는 음반의 세 번째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다. 물론 이 곡은 앞에 언급한 “Viyiti Iz Pod Kontrolya”가 수록된 [Otechestvo Illyuzii(The Motherland of Illusion)](1987)에도 수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techestvo Illyuzii]가 아니라 이 앨범을 리뷰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Otechestvo Illyuzii]가 언더그라운드 시기의 ‘결산’의 성격에 가깝다면 [Otchuzhdenie]은 ‘전자음악적 전환’이라는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는 음반이기 때문이다. 뉴 웨이브가 반드시 전자음악의 성격을 띨 필요는 없지만 러시아의 뉴 웨이브가 신서사이저와 전자음향 효과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던 반면(예를 들어 끼노의 [Gruppa Krovi(Blood Type)]가 그렇다), 이 음반은 전자음향을 전면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이는 ‘일렉트로닉 퍼커션’을 맡은 인물이 정규 멤버로 있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그 효과는 차갑고 인공적인 사운드다. 이는 전기 기타와 어쿠스틱 드럼이 삽입되어도 변하지 않는다. 멀리 울려 퍼지는 스네어 드럼의 톤, 무거우면서도 종종 리버브를 입힌 베이스의 톤도 이런 사운드에 일조하는 요인이다. 거기에 토킹 헤즈의 데이비드 바이언(David Byrne)이나 갱 오브 포(Gang Of Four)의 존 킹(Jon King)과 같은 과(科)에 속할 듯한 냉소적 보컬은 통제의 중심을 잃어버린 듯(‘get out of control’)이 부조리한 언어로 투덜대기를 계속한다. 전체적으로 스타일이 일관되어서 개별 트랙의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그래도 몇몇 곡을 살펴보자. 우선 신서사이저를 이용한 시퀀싱이 이끌어가는 “Deti Ukhodyat(Children Leaves)”는 큐어(The Cure)가 디페시 모드처럼 해보고 싶을 때 만들 법한 곡이고, 노이즈를 포함한 전자효과음의 사용이 많은 “Riyba Gniet S Goloviy(Fish is Rotten From Head)”는 조금 더 막 나가면 ‘노 웨이브’의 고지도 멀지 않을 곡이다. 물론 앨범의 주축을 이루는 스타일은 “Vera(Belief)”, “Otechestvo Illyuzii(Fatherland of Illusion)”, “Potrebitel(Consumer)'” 등으로 훵키한 리듬을 차가운 사운드의 요소로 운용하는 포스트펑크/뉴 웨이브 일각의 흐름의 발상을 잇는 곡이다. 캬바레 음악을 도입한 “Tri-Chesiyre Gada(Three or Four Villain)”는 아비아(Avia)나 즈부끼 무(Zvuki Mu)처럼 한때 서방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러시안 아방가르드 록’과 궤를 같이하는 스타일이다. “Tvoi Papa-Fashist(Your Papa-Fascist)”는 격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캐치한 리듬과 멜로디를 가진 대중적인 곡이라는 사실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뗄레비조르는 아끄바리움이나 D.D.T.처럼 컬트의 지위에 오르면서 장수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잘은 모르지만 토킹 헤즈와 갱 오브 포가 밥 딜런(Bob Dylan)이나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보다는 장수하지 못한 이유와 비슷할 것 같다. 어느 나라든 록의 영광된 시대를 누린 세대의 뮤지션은 장수하는 반면, ‘과거에 반항했던 세대’에 대해 반항하는 다음 세대는 이른바 ‘블랭크 제너레이션(blank generation)’이 되는가 보다. 자신의 소외와 분노의 감정을 기성의 어법으로는 또렷하게 표현할 수 없는 세대 말이다. 20011015 | 신현준 homey@orgio.net 8/10 * 위 사진은 앨범 커버가 아닙니다. 음반을 입수하는대로 올리겠습니다. 수록곡 1. Deti Ukhodyat(Children Leaves) 2. Vera(Belief) 3. Tvoi Papa-Fashist(Yor Papa-Fascist) 4. Tri-Chetiyre Gada(Three Or Four Villain) 5. Riyba Gniet S Goloviy(Fish is Rotten From Head) 6. Potrebitel'(Consumer) 7. Kholod(Cold) 8. Muziyka Dliya Myortviykh(Music For The Dead) 9. Ne Plach'(Don’t Cry) 10. Otechestvo Illyuzii(The Motherland Of Illusion) 11. Plastmassa(Plastic Goods) 관련 글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1): 빅또르 쪼이(Viktor Tsoi):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아니, 쌍뜨 뻬제르부르그의 마지막 영웅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2): 구 소비에트 사회에서 예술음악, 민속음악, 대중음악 – vol.3/no.17 [20010901]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3): 소비에트 체제의 기생충들의 역사 – vol.3/no.18 [20010916]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4): 1980년대 록 뚜소브까의 시대 – vol.3/no.20 [20011016] D.D.T. [Ya Polichil Etu Rol(Now That’s My Role)] – vol.3/no.20 [20011016] Alisa [Energia(Energy)] – vol.3/no.20 [20011016] 관련 사이트 Televizor 공식 사이트 http://www.televizor.spb.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