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Flag – Damaged – SST, 1981 검은 깃발의 상처와 영광 하드코어(hardcore)라는 용어에 대해 ‘유일하게 올바른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도 안 되는 정의’를 옳다고 믿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블랙 플랙(Black Flag)을 들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드코어가 음악 장르이기 이전에 메이저의 세계에 대한 비타협적인 태도(attitude)를 말한다면, 블랙 플랙만큼 여기에 어울리는 밴드는 없기 때문이다. 기타 플레이어 그렉 진(Greg Ginn)을 주축으로 블랙 플랙은 ‘미국 언더그라운드 펑크’의 실체와 이미지 모두를 만들어낸 존재다. 이는 고물 밴(봉고차)을 직접 끌고 미국 전역을 누비면서, 이른바 ‘끊임없는 순회공연(relentless tour)’을 하면서 일군 것이었다. 밴드 결성과 거의 동시에 설립한 인디 레이블 SST가 워싱턴 D.C.의 디스코드(Dischord)와 더불어 1980년대 미국 언더그라운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라는 점은 이제는 상식이 되었다. 몇 장의 EP를 발표한 뒤 발표한 정식 데뷔 앨범인 [Damaged]는 하드코어 펑크를 ‘정의’한 작품이다. 특히 뒤늦게 밴드에 합류한 헨리 롤린스(Henry Rollins)의 보컬은 ‘격한 분노’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선 펑크는 다른 장르보다는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선입견(?)을 따라 가사를 추려보자. 어떻게 보면 이들의 메시지는 양면적이다. 한편으로는 “우리를 멈추려 해봐야 헛일이야(Try to stop us / It’s no use)”라는 비타협적 의지가 있고, “그들은 내가 X됐다고 늘 말하지(“They say I’m fucked up all the time)”(“Six Pack”)라는 자조적 체념이 있다. ‘자기부정’이라는 에토스는 섹스 피스톨스에게도 존재했던 요소지만, 이제 그건 지배적 성분으로 굳어진 기분이다. 타이틀곡 격인 “Damaged II”에서 “너한테 다치고, 나한테 다치고(Damaged by you, Damaged by me)”가 이 앨범의 메시지의 알파와 오메가일 것이다. 증세가 심해지면 “나는 나의 TV 없이는 하루도 못 살아… 1분도 못살아 / 나는 두뇌를 사용하려고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아 / 뇌 속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아”라는 자기혐오적 풍자까지 나온다(“TV Party”). 이런 가사가 나온 시점이 ‘MTV 탄생’과 일치한다는 점, 그리고 1990년대의 슬래커 제너레이션의 에토스를 예시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정작 음악은? 곡의 연주시간은 3분 안팎이며, 기타는 이펙트를 거의 입히지 않은 톤으로 리프를 긁어대고, 드럼은 별다른 강약이나 완급 변화 없이 내려치고, 보컬은 분노에 가득 차서 소리지른다. 상세히 분석하는 일은 가능하긴 하지만 무의미해 보인다, 자기풍자적인 “TV Party” 정도가 메탈 리프와 그래도 노래 같은 보컬이 나와서 오히려 흥미롭다. 그래서 처음 들으면 섬찟함과 낯선 충격을 던져 주지만, 여러 번 들으면 그쪽 평단 용어로 ‘지속적 인상(lasting influence)’이 남지 않는다. 물론 이건 1980년대 초의 험악했던 정세를 경험했던 사람에게는 ‘무례한’ 평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유 없이 세상에 대해 화가 날 때마다 이 음반을 들으면 묘한 향취를 느낄 수 있다. 정상적으로 살아갈 때는 그저 악취겠지만. 20011012 | 신현준 homey@orgio.net 8/10 * 사족 이 앨범은 본래 메이저 레이블인 MCA 산하의 유니콘(Unicorn)에서 발매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음반사 측에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발매를 기피했고, 그렉 진은 홧김에 SST에서 앨범을 발매했다. 음반사 측은 ‘계약 위반’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고소했고, 결국 법정 공방 끝에 밴드는 블랙 플랙(Black Flag)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었다. [Everything Went Black]이라는 앨범이 밴드 이름 없이 발매된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밴드가 이름을 되찾은 것은 1983년 유니콘이 망하면서다. 1986년 밴드를 해산한 이후 그렉 진은 SST의 경영에 전념하면서 미트 퍼피츠(Meat Puppets), 사운드가든(Soundgarden), 소닉 유쓰(Sonic Youth) 등 얼터너티브 록의 거물이 되는 밴드들의 음반을 발매했고, 헨리 롤린스는 롤린스 밴드(Rollins Band)를 결성하여 얼터너티브 록의 아이콘의 하나로 활동을 계속한다. 수록곡 1. Rise Above 2. Spray Paint 3. Six Pack 4. What I See 5. TV Party 6. Thirsty And Miserable 7. Police Story 8. Gimmie Gimmie Gimmie 9. Depression 10. Room 13 11. Damaged II 12. No More 13. Padded Cell 14. Life Of Pain 15. Damaged I 관련 글 왜 지금 펑크인가 – vol.3/no.19 [20011001] 펑크 25년: 1976 – 2001 (1) – vol.3/no.19 [20011001] 펑크 25년: 1976 – 2001 (2) – vol.3/no.20 [20011016] Punk Diary – vol.3/no.19 [20011001] Various Artists [No New York] 리뷰 – vol.3/no.20 [20011016] Pop Group [Y] 리뷰 – vol.3/no.20 [20011016] Public Image Ltd. [Second Edition] 리뷰 – vol.3/no.20 [20011016] Raincoats [Odyshape] 리뷰 – vol.3/no.20 [20011016] Crass [Penis Envy] 리뷰 – vol.3/no.20 [20011016] Husker Du [Zen Arcade] 리뷰 – vol.3/no.20 [20011016] Minutemen [Double Nickels On The Dime] 리뷰 – vol.3/no.20 [20011016] Dead Kennedys [Frankenchrist] 리뷰 – vol.3/no.20 [20011016] Big Black [Songs About Fucking] 리뷰 – vol.3/no.20 [20011016] 관련 사이트 Black Flag 공식 사이트 http://www.sstsuperstore.com/blackflag Black Flag 팬 사이트 http://www.geocities.com/SunsetStrip/3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