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15102141-0320punkhuskerduHusker Du – Zen Arcade – SST, 1984

 

 

펑크를 배반한 펑크 혹은 하드코어 펑크의 ‘화이트 앨범’

커트 코베인은 “허스커 두는 오래 전부터 얼터너티브 록을 추구해 왔다. 그들은 얼터너티브의 선구자다”라고 말했다. 미국 중서부 미니애폴리스의 ‘로컬 밴드’의 음악이 어떤 것이었길래? ‘권위’에 호소하는 비겁함이 용서된다면 아래와 같은 인용을 열거할 수 있다. “곡조(tune)를 해체하여 삐걱거리는 노이즈로 전화시키는 사운드”(Simon Frith), “문질러 대는 듯하면서도 멜로딕한 사운드, 그리고 강렬하고 신랄한 가사”(Katherine Yeske), “팝의 조화로움(symmetry)과 디스토션의 격노한 분출을 모두 갖춘 사운드”([Chicago Tribune])” 등등.

평자에 따라서는 개별 곡의 대중성과 완성도 면에서 [New Day Rising](1985)에 더 후한 점수를 줄지 모르지만 앨범 전체의 구성과 짜임새에서는 이 앨범에 미치지 못한다. 본래 더블 LP로 발표된 이 음반은 밥 물드(Bob Mould)가 직접 밝혔듯이 비틀스의 [The Beatles(White Album)]에 비견할 만하다. 이는 무엇보다도 ‘다채롭다’는 뜻이다. 혹시라도 이들의 초기작 [Land Speed Record]를 구매했다가 ‘버즈콕스의 노래를 회전속도를 빨리 해서 틀어놓은 것 같다’고 느낀 사람이라도 이 음반의 다채로움은 인정할 것이다. 하드코어 펑크의 ‘일차원적 절규’는 ‘다차원적 기습’으로, 전격전(Blitzkrieg)은 산개전(skirmishing)으로 전화된다. 만약 ‘다채롭지만 초점이 없고 다소 산만하다’고 느낀다면, 거기에는 [White Album]처럼 멤버들 사이의 알력 때문이 아니라, 레코딩 기간이 85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유가 더 클 것이다.

처음 들을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밥 물드의 기타 사운드다. 그의 기타 연주가 ‘서너 개의 코드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는 펑크의 신조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디스토션을 강하게 걸어서 만들어지는 불협화음들에서 나름의 조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는 찬사가 무색하지 않다. 물드와 함께 또 한 명의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인 그랜트 하트(Grant Hart)의 드러밍도 ‘빠르고 거칠고 시끄럽게’라는 하드코어의 슬로건을 너끈히 따라잡으면서도 기타 및 보컬과 ‘경쾌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렇지만 더욱 절묘한 것은 이들의 ‘작곡’ 솜씨다. 시끄러운 기타 사운드가 신경을 벅벅 긁어대면서도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는 이들을 ‘얼터너티브 록의 불운한 선구자’로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다. 더구나 팝적 멜로디는 어쿠스틱 포크인 “Never Talking To You Again” 뿐만 아니라 직선적인 “Something I Learned Today”나 신경질적인 “What’s Going On?”, 괴기스러운 “Pink Turns Blue” 등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노래로서는 마지막 트랙인 송가 풍의 “Turn On The News”도 마찬가지다(이 곡은 웬걸 이기 팝(Iggy Pop)이나 키스(Kiss)를 연상시킨다). 여기에 기타 피드백이 섬광처럼 번뜩이는 “Dreams Reoccurring”, ‘펑크식 명상음악(?)’ “Hare Krsna”, 전기 기타와 피아노의 협주곡 “One Step At A Time”, 아름다운 피아노 간주곡 “Monday Will Never Be The Same”, 14분 동안의 싸이키델리아 “Reoccuring Dreams” 등의 기악곡들이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긴장과 활력을 부여한다.

펄 잼의 “Spin The Black Circle”의 인트로가 “Beyond The Threshold”와 비슷하다거나, 스매싱 펌킨스의 “1979”의 인트로 첫 마디가 “What’s Going On?”에서 슬쩍 빌어온 것 같다는 인상은 그저 우연일 지도 모른다. “그린 데이는 허스커 두의 거칠지만 매력 있는 곡조를 빌려왔고, 너바나는 우울증적인 분노를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포맷을 발견했고,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은 그들의 피드백을 연구했다”는 [Spin]의 평가도 다소 과장된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당시가 메인스트림 음악계에서 마이클 잭슨, 마돈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거창하고 화려한 쇼가 절정을 이루고, 언더그라운드에서는 하드코어 펑크가 막다른 골목에서 ‘발악’만 하고 있을 때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앨범의 가치는 더욱 소중하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점은 [Zen Arcade]가 일관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컨셉트 앨범’이라는 점이다. 스토리 라인은 ‘결손가정 출신의 청년이 컴퓨터 해커가 되고, 여자친구가 약물을 과다복용하는 사건을 접하는 등 방황 끝에 자살까지 고려하다가, 나중에는 컴퓨터 회사의 사장을 만나서 비디오 게임을 프로그래밍하는 일자리를 얻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주어들은 이야기일 뿐 가사를 보아서는 이런 스토리가 선명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주어들은 이야기가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1990년대 이후 ‘인디 록 스노브(snob)’들의 인생유전을 예시하는 것 같아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20011008 | 신현준 homey@orgio.net

10/10

수록곡
1. Something I Learned Today
2. Broken Home, Broken Heart
3. Never Talking To You Again
4. Chartered Trips
5. Dreams Reoccurring
6. Indecision Time
7. Hare Krsna
8. Beyond The Threshold
9. Pride
10. I’ll Never Forget You
11. The Biggest Lie
12. What’s Going On?
13. Masochism World
14. Standing By The Sea
15. Somewhere
16. One Step At A Time
17. Pink Turns To Blue
18. Newest Industry
19. Monday Will Never Be The Same
20. Whatever
21. The Tooth Fairy And The Princess
22. Turn On The News
23. Reoccurring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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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Husker Du 데이타베이스
http://world.std.com/~thirdave/hd.html
Bob Mould 공식 사이트
http://www.granarymus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