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15101546-0320punkminutemenMinutemen – Double Nickels On The Dime – SST, 1984

 

 

펑크의 종말, 얼트의 탄생

1984년 미국. “펑크가 폭발한 해(The Year Punk Broke)”였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다소 어리벙벙할 정도의 걸작들이 미국 펑크 씬에서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허스커 두(Husker Du)의 [Zen Arcade], 블랙 플랙(Black Flag)의 [My War], 리플레이스먼츠(The Replacements)의 [Let It Be], 그리고 미니트멘(Minutemen, 마이뉴트멘이라고 발음하기도 한다)의 [Double Nickels On The Dime]이 바로 그 주역들.

하지만 1984년 미국에서의 ‘펑크 폭발’은, 1976년 영국 런던에서의 그 폭발과는 차원이 몹시 달랐다. 런던에 불어닥쳤던 펑크 무브먼트의 폭풍은, 말하자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의 ‘질풍노도(Strum Und Drang)’였다. “나라가 무엇을 해줄까 바라기 보다, 너희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지 먼저 유념하기 바란다”는 기성세대의 으름장에 머리카락을 닭 벼슬처럼 꼿꼿이 세운 뒷골목 양아치들은 전기 기타의 우뢰와 포고(Pogo)의 날벼락으로 중무장한 채 정면으로 엿을 먹이려 했다. 이러한 시도가 빛나는 성취를 얻어냈든 아니든 간에, 이렇게 두 눈 부릅뜨는 태도는 펑크라는 개념을 떠올릴 때 언제나 최전선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대명제로 자리매김되어 왔던 것이다.

반면 1984년 미국에서 폭발된 펑크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클리셰 중 클리셰로 확고한 위치를 굳히고 있었던 ‘질풍노도’를 과감히 으깨어 버리는, ‘백화난만(百花爛漫)’의 광경이었던 것이다. LA의 블랙 플랙은 갑자기 초기 블랙 사바쓰(Black Sabbath)에 경도되기 시작했다. 미니애폴리스의 리플레이스먼츠는 과격함보다는, 촌스러움이나 서정미 넘치는 진솔한 연가에 더욱 적성이 맞음을 자각했다. 역시 미니애폴리스를 대표하던 허스커 두는 우리가 비틀스보다 못할 게 뭐 있냐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듯 1980년대의 ‘화이트 앨범’을 만들어내려 했다. 그렇다면 캘리포니아 샌 페드로의 풍광을 잔뜩 품고 활동해오던 미니트멘의 경우는? 그들은 훵키(funky) 사운드의 당의정을 입힌 ‘장르 대백과사전’을 발간하고 싶어했다.

1980년대 미국 펑크 씬을 강력한 개성과 실력으로 누비던 이들 밴드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기존의 펑크 세계에서 탈피하여 일대 변화를 도모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시대적 흐름(= 시대 정신)’을 받아들이려는 발버둥이었을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머리 안의 혁명(Revolution In The Head)”이었던 것인가.

그것은 이제와 돌이켜보면, 한 시대의 종말을 준비하는 가장 화려한 불꽃놀이였다. 펑크의 공식과 강령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다양성’이라는 명제 아래 도저히 펑크와 어울리지 않는 장르들의 관습을 끌어들이는 것. 그러한 행동은 사실 이미 사망선고를 받고 고통없이 평화롭게 잠들고자, 스스로 자기 몸에 독극물과 모르핀이 섞인 주사를 놓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마지막 비상구(Final Exit)’를 찾아 헤맸던 것이다.

하나의 장르와 사조가 태어난다. 처음엔 모든 게 날렵하고 싱싱하기만 하다. 모든 것을 굴복시킬 만큼 엄청난 정열로 똘똘 뭉쳐 있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이 세월의 속도감은 장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10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있고, 불과 2, 3년만에 끝장나는 경우도 있다) ‘관성’이라는 군살이 붙기 시작하고, 손닿는 곳마다 모든 게 신기하게도 ‘매너리즘’으로 변해버리게 만드는 재주가 생겨난다. 이렇게 불안한 공기가 대기에 가득할 때, 누군가 거기에 불을 붙여본다. 돌연 사방엔 무작위적으로 뻗어나가는 불꽃의 어지러움으로 가득하고, 그 장관을 바라보는 이들은 입을 다물 겨를이 없다. 그리고 나서는? 돌연 매캐한 연기로 자욱하고, 그 다음엔, 모든 게 끝장나 버린다. 꺼지기 전의 촛불이 가장 환하게 타오른다. 이른바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비틀즈의 [The Beatles(White Album)]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Electric Ladyland]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터져 나왔던 1968년이 기억나는가? 1970년대 영국 펑크에서 백조의 노래는 클래쉬(The Clash)의 [London Calling] (1979)이 떠맡았다. 1990년대 화장터에 들어간 얼트 록의 시신이 담긴 관 겉면에는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스매슁 펌킨스(Smashing Pumpkins), 1995)라고 쓰여진 금빛 화려한 문양이 정성스럽게 새겨져 있었다.

그렇다면 1980년대 초반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던 아메리칸 하드코어 펑크의 오색찬란한 만가는 과연 무엇일까? [Zen Arcade]와 [Double Nickels On The Dime]이 서로 죽음의 왕관을 먼저 쓰겠노라고 아웅다웅한다. 앨범 전체에 싸이키델릭한 긴장과 우수가 끊일 새 없는 [Zen Arcade]도 ‘화려한 소멸’을 기념하기에 훌륭한 도구이겠지만, 훵키 그루브를 근간으로 여유만만하면서도 자유자재로 컨트리, 재즈, 블루스, AOR, 거라지 록, 스페니쉬, 뉴 웨이브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Double Nickels On The Dime]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앨범의 사운드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중심에 단단히 터전을 잡은 채 도저히 어떻게 전개될 지 예측을 거부하는 중구난방이면서도 유연한 놀림의 베이스, 왼쪽 채널에 다소 기울어진 듯 음량이 다른 악기나 보컬에 비해 작은 듯하면서 극도로 미니멀한 어프로치를 꾀하는 카랑카랑한 기타, 기본 박자만 맞추는 듯 해도 은근슬쩍 변박을 넘나드는 탄탄한 드럼. 이건 얼터너티브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전조 중 하나인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걸작 [Blood Sugar Sex Magik](1991)의 사운드와 바로 일치하지 않은가(하긴 [Blood Sugar Sex Magik] 자체가 미니트멘의 리더이자 베이시스트 마이크 왓(Mike Watt)에게 바치는 앨범이다). 한 장르의 죽음을 알리는 증거가 또 다른 장르의 탄생을 이루는 밑바탕으로 작용되는 것은, 운명의 아이러니인가 아니면 패러독스인가. 20011009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10/10

* 여담 : 이 앨범이 발매되고 이듬해 12월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인 D. 분(D. Boon)의 비극적인 사망(교통사고)으로, [Double Nickels On The Dime]은 명실상부하게 ‘마지막을 장식하는 걸작’이 되었다.

수록곡
1. D’s Car Jam / Anxious Mo-Fo
2. Theatre Is The Life Of You
3. Viet Nam
4. Cohesion
5. It’s Expected I’m Gone
6. # 1 Hit Song
7. Two Beads At The End
8. Do You Want New Wave Or Do You Want The Truth?
9. Don’t Look Now
10. Shit From An Old Notebook
11. Nature Without Man
12. One Reporter’s Opinion
13. Political Song For Michael Jackson To Sing
14. Maybe Partying Will Help
15. Toadies
16. Retreat
17. The Big Foist
18. God Bows To Math
19. Corona
20. The Glory Of Man
21. Take 5, D.
22. My Heart And The Real World
23. History Lesson – Part II
24. You Need The Glory
25. The Roar Of The Masses Could Be Farts
26. West Germany
27. The Politics Of Time
28. Themselves
29. Please Don’t Be Gentle With Me
30. Nothing Indeed
31. No Exchange
32. There Ain’t Shit On T.V. Tonight
33. This Ain’t No Picnic
34. Spillage
35. Untitled Song For Latin America
36. Jesus And Tequila
37. June 16th
38. Storm In My House
39. Martin’s Story
40. Dr Wu
41. The World According To Nouns
42. Love Dance
43. Three Car J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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