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 Kennedys – Frankenchrist – Manifesto, 1985 펑크의 존재론적 고민 당연히, 데드 케네디스(Dead Kennedys) 하면 [Fresh Fruit For Rotting Vegetables](1980)를 대표작으로 다뤄야 옳다. 하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들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인 [Frankenchrist](1985)도 펑크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문제작이다. [Frankenchrist]는 앨범 자체보다는 이 작품을 둘러싼 법정 공방 때문에 입방아에 오른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사건의 발단은 이 앨범 재킷에 삽입된 스위스 출신의 예술가 H.R. 기거(H.R. Giger, 우리에겐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와 [스피시즈(Species)](1995)의 디자인 창조자로 잘 알려졌다. 데보라 해리(Deborah Harry)의 첫 솔로 앨범 [KooKoo](1981)의 엽기스러운 아트워크도 그의 작품이다)의 그림 “Penis Landscape”였다. 이 그림으로 인해 상황은 대대적인 외설 시비로 비화되어, 데드 케네디스는 공연장 대신 법원을 들락날락해야 하는 피곤한 신세가 되었다. 이 사건은 데드 케네디스의 음악 활동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동안 공권력을 조롱하며 강렬한 좌파적 신념을 풍자와 독설로 구사해왔던 이들이, 드디어 ‘외설 규제’와 ‘청소년 보호’를 강력한 무기로 내세운 기성 체제와 정면 충돌을 해야하는 시험대에 놓인 것이다. 물론 이들에겐 ‘사상의 자유’와, 무엇보다도 ‘수정 헌법 제 1조에 따른 표현의 자유’라는 방어 수단이 있었지만, 미국이라는 제국적 자본주의의 완고한 ‘벽’ 아래 놓인 이들의 존재는 결국 초라한 몰골로 자리매김될 수밖에 없었다(오늘날에도 수많은 대중 스타들이 법정에서 너무나도 나약하게 무너지는 광경을 보라). 문제는, 데드 케네디스가 반체제적인 증오를 아무리 맹렬하게 퍼부어 대도, 이러한 ‘불꽃’은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면 ‘불씨’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그때는 1970년대 중반의 런던은 아니었던 것이다. 때는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내며 ‘신제국주의’와 ‘천민자본주의’가 행복한 밀월을 누리던 1980년대 중반이었다. 연예계라고 예외일 수 있겠는가.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세계의 경찰 노릇을 자임하던 시절이었으며, 세카(Seka)와 진저 린(Ginger Lynn)이 전세계 안방극장에 ‘포르노 헤븐’을 설계하던 때였다. 1980년대 초부터 LA와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워싱턴을 중심으로 ‘국지전’을 펼치던 데드 케네디스는, 말하자면 ‘찻잔 속의 폭풍’이었던 것이다. 찻잔 밖의 기후가 온화하다 못해 마이애미의 한여름처럼 쾌청하다면, 이 폭풍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겠는가? 힘 빠지고 짜증나게 하는 법정 공방 이후, 데드 케네디스에게는 음악적 창의력이 급속도로 고갈된 것 같았다. 1986년의 [Bedtime For Democracy]를 끝으로, 이들은 결국 해산의 수순을 밟게 된다. 이들의 해체는 기성 세대에게는 매우 환영할 만한 사건이었다. 필자의 기억으로, 당시 MBC FM에서 팝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박원웅이 발간하던 팜플렛 [Pops Pops]에 이들을 “사상 최악의 밴드”로 일컬으며 “이 팀이 해산된 게 얼마나 바람직한지 모르겠다.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라고 쓴 기사가 생각난다(펑크가 당시 한국에 얼마나 왜곡된 형태로 소개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오늘날 마음을 비운 채 [Frankenchrist]를 다시 들어보면, 데드 케네디스가 느껴야 했던 무기력과 피곤함이 비단 음악 외적인 상황에서만 비롯된 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반체제적 독기가 서린 풍자 정신마저 바랜 것은 아니다. 맹렬한 연주와 젤로 비아프라(Jello Biafra)이 텁텁하지만 떨림이 심한 보컬도 여전하다. “Hellnation”과 “Jock-O-Rama”, “MTV-Get Off The Air” 등은 이러한 데드 케네디스의 ‘전형성’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트랙들이다. 하지만, [Fresh Fruit For Rotting Vegetables]에서 찬란한 빛을 발했던 이들의 싱싱한 민첩성과 날렵함은 사라지고 없다. 물론 [Frankenchrist]의 사운드도 고저와 강약이 능란하게 전개되는 이들의 장기가 십분 발휘되어 있지만, 이상하도록 둔중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즉 앞뒤 가리지 않는 무모한 젊음이 발산하는 긴장과 스피드는 사그러져가고, 그 맹렬하던 속도감에 점차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다는 의혹을 짙게 풍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상은, 수록곡의 상당수(“This Could Be Anywhere”, “A Growing Boy Needs His Lunch”, “Chicken Farm”, “Stars And Stripes Of Corruption”)가 5분을 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결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패티 스미쓰(Patti Smith)나 텔레비전(Television) 같은 아트 펑크나 토킹 헤즈(Talking Heads) 같은 아방가르드 팝을 지향하는 게 아닌 이상,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 강렬한 임팩트를 쏘는 ‘촌철살인’의 미학이야말로 펑크의 핵심 요소 중 하나 아닌가? 1980년대 초반 미국의 하드코어 밴드들 대다수는 이러한 방법론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여기에 ‘매너리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즉 ‘그게 그거’인 것. 이러한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밴드가 택해야 했던 길은 대략 두 가지 중 하나. 하나는 음악적 변화를 꾀하는 방법.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생명을 내던지는 파멸의 길을 질주하는 것. 전자의 방법으로부터 탄생한 산물이 블랙 플랙(Black Flag)의 [My War] (1984), 허스커 두(Husker Du)의 [Zen Arcade](1984), 미니트멘(Minutemen)의 [Double Nickels On The Dime](1984), 리플레이스먼츠(The Replacements)의 [Let It Be] (1984) 등이었다(이 앨범들이 1984년에 일제히 등장하였음에 유의). 후자의 경우로는 점스(The Germs)의 리드 싱어 다비 그래쉬(Darby Crash)의 죽음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음악적 변화를 모색한 밴드들도 결국엔 해산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이 궁리해 낸 음악적 변모가, 기존의 록 음악과 확실하게 구별되는 점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쉽게 말해, 그들이 꾀한 음악적 다양성이란, 사실은 기존 체제와의 ‘타협’의 다른 명칭일수도 있는 것. 이것은 결국 ‘존재론’적인 한계 상황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고, 더 이상 밴드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고통의 지경에 다다르고 마는 것이다. 영국에서나 미국에서나 펑크 무브먼트가 길어야 5~6년을 넘기지 못했다는 사실엔, 그만한 이유와 사연이 있는 것이다. 물론 [Frankenchrist]는 막바지에 다다랐던 미국 하드코어 펑크의 존재론적 고민을 안팎으로 발산하는 ‘기념비’적인 앨범임에는 틀림없다. 20011009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7/10 * 여담 : 2001년 재발매된 [Frankenchrist] CD에는 문제의 “Penis Landscape”(정확한 작품명은 “Landscape No.XX “Where Are We Coming From””)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수록곡 1. Soup Is Good Food 2. Hellnation 3. This Could Be Anywhere 4. A Growing Boy Needs His Lunch 5. Chicken Farm 6. Jock-O-Rama 7. Goons Of Hazzard 8. MTV-Get Off The Air 9. At My Job 10. Stars And Stripes Of Corruption 관련 글 왜 지금 펑크인가 – vol.3/no.19 [20011001] 펑크 25년: 1976 – 2001 (1) – vol.3/no.19 [20011001] 펑크 25년: 1976 – 2001 (2) – vol.3/no.20 [20011016] Punk Diary – vol.3/no.19 [20011001] Various Artists [No New York] 리뷰 – vol.3/no.20 [20011016] Pop Group [Y] 리뷰 – vol.3/no.20 [20011016] Public Image Ltd. [Second Edition] 리뷰 – vol.3/no.20 [20011016] Black Flag [Damaged] 리뷰 – vol.3/no.20 [20011016] Raincoats [Odyshape] 리뷰 – vol.3/no.20 [20011016] Crass [Penis Envy] 리뷰 – vol.3/no.20 [20011016] Husker Du [Zen Arcade] 리뷰 – vol.3/no.20 [20011016] Minutemen [Double Nickels On The Dime] 리뷰 – vol.3/no.20 [20011016] Big Black [Songs About Fucking] 리뷰 – vol.3/no.20 [20011016] 관련 사이트 Dead Kennedys 팬 사이트 http://www.geocities.com/SunsetStrip/6558/DKPAGE.HTM http://www.geocities.com/SunsetStrip/Palms/3520/othe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