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판(版) 로미오와 줄리엣의 출구 없는 삶과 사랑 Sid And Nancy: Love Kills 감독: Alex Cox 시간: 111분 연도: 1986 “미래는 없어, 미래는 없어, 미래는 없어”(“God Save The Queen”). 1977년, 섹스 피스톨스는 그렇게 노래했다. 영국의 여왕을 조롱하고, ‘희망 없는 내일’을 기약할 뿐인 군주제를 비판하면서. 하지만 그로부터 몇 달 뒤 여왕과 군주제 대신 섹스 피스톨스가 활동을 멈췄고, 다시 그로부터 1년 뒤 베이시스트 시드 비셔스(Sid Vicious)가 숨을 거뒀다. 펑크가 대중음악을 뒤흔든 폭풍의 눈에서 로큰롤 신화로 바뀌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영국 감독 알렉스 콕스(Alex Cox)의 1986년작 [Sid And Nancy]는 펑크 반영웅(anti-hero)이자 펑크 신화의 제물인 시드 비셔스와 그의 미국인 여자친구인 낸시 스펀겐(Nancy Spungen)을 다룬 영화이다. 시드 비셔스는 원래 섹스 피스톨스의 팬이었으나, 베이시스트가 폴 매카트니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해고된 후 정규 멤버로 발탁되어 활동했다. 시드는 ‘어제는 청중으로 열광하다 오늘은 기타를 잡고 무대에 서는’ 펑크의 ‘누구나 할 수 있다(anyone can do it)’는 명제를 입증하는 보기(신화?) 중 하나였다. 처음엔 베이스 기타를 칠 줄도 몰랐지만 큰 키에 잘생긴 용모를 지니고 있어서 ‘그림이 되었던’ 그는 (자기)파괴적이고 무절제한 행태로 밴드에게는 늘 시한폭탄 같은 존재, 매스 미디어에게는 좋은 기사거리, 팬들에게는 펑크의 아이콘이었다.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한 그의 때 이른 죽음(21살에 요절)은 시드 비셔스 신화의 화룡점정일 수밖에 없었다. [Sid And Nancy]는 시드가 낸시의 주검을 앞두고 경찰을 맞는 장면에서 시작해 시드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 사이 회상 장면은 그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시드가 뉴욕에서 온 그루피 낸시를 보고 연민을 느끼며 사랑에 빠져들고, 약물에 중독되면서 시드와 낸시의 생활이 망가지고, 결국 혼자서도 그리고 서로 의존해서도 추스릴 수 없던 이들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펼쳐진다. 이 펑크판(版)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사랑은 출구 없는 삶을 지탱해주는 마약이었다. 이들은 부모의 반대가 아니라(낸시는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시드는 아예 가족이 나오지 않는다), 약물과 자기파괴욕과 자포자기에 의해 죽음에 이른다. 감독 알렉스 콕스는 1970년대 후반 펑크의 폭발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적 코드와 현상들을 재현한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재현이 아니라, 당시 청년들의 펑크 패션과 행동 양식, 펑크 음악과 공연 및 약물 문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섹스 피스톨스의 보컬리스트 조니 로튼(Johnny Rotten)처럼 이 영화가 “모두 엉터리이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세부적으로는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점, 즉 모든 사건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점은 영화에 대한 ‘일러두기’ 정도로 생각해두면 될 듯하다. 이 영화는 완전한 전기 영화도, 완전한 허구의 드라마도 아닌, 다큐멘터리’적’이고 멜로 드라마’적’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싶은 사람은 낸시의 어머니가 쓴 책 [And I Don’t Want To Live This Life]를 보면 된다. 그래서 알렉스 콕스가 강조하려는 것은 한 연인의 사랑을 통해 바라본 1970년대 후반 펑크와 청년 문화에 관한 판화, 그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해진 불멸의 사랑 이야기, 그 모두이거나 그 사이 어딘가이다. 죽음을 얼마 앞둔 시드와 낸시가 뉴욕 뒷골목에서 쓰레기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가운데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란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 영화가 미화와 낭만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 것임을 알려준다. 시드 역을 맡은 게리 올드만(Gary Oldman)과 낸시 역을 맡은 클로에 웹(Chloe Webb)의 놀라운 연기에도 불구하고(아니 어쩌면 그 때문에), 시드와 낸시의 사랑은 동일시하고 싶지 않은 쓰디쓴 느낌을 준다. 게리 올드만은 이 장편 영화 데뷔작에서 광기어린 구제불능의 펑크 로커를 신들린 듯 연기했다. 파리에서 관객들을 조롱하며 “My Way”를 펑크 버전으로 노래하고 객석에 총을 난사한 뒤 사라지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일 것이다(섹스 피스톨스 다큐멘터리 [Great Rock & Roll Swindle](1979)의 한 장면과 거의 동일하다). 그루피 중 하나에서 시드의 연인이 되어 파멸의 늪으로 천천히 끌고 들어가는 클로에 웹의 연기는 실제 (모두가 싫어했던) 낸시의 짜증나는 성격을 잘 묘사했다. 꽤 많이 등장하는 펑크 뮤지션들의 까메오 혹은 단역 캐스팅은 숨은 그림 찾기의 재미도 주는데, 낸시의 친구 그레첸(Gretchen) 역으로 잠시 나오는 커트니 러브(Courtney Love)의 캐스팅은 이후 커트 코베인(Kurt Cobain)과 커트니 러브 커플을 시드와 낸시 커플과 연결 짓게 하는 한 계기가 된 씁쓸한 예이다. 알렉스 콕스는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Sid And Nancy]는 펑크 문화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긴 힘들다. 펑크족들은 대안적인 문화를 제시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이지만, 시드는 호화호텔에 묵으며 마약에 탐닉하는 등 자기에게 몰입하고 안주한다. 이 영화는 어떻게 시드가 펑크 그룹을 배반했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조니 로튼, 섹스 피스톨스의 일부 골수 팬들은 오류와 거짓말로 가득한 영화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어떤 평론가는 관계에 관한 영화라고 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내 생각엔 ‘그때 거기’의 ‘미래는 없다’는 가치관과 ‘짧고 굵게(live fast and die young)’란 인생관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울림을 준다는 걸 치명적 사랑의 드라마로 보여준 영화 같다. 아니어도 그만이고. 20011010 | 이용우 pink72@nownuri.net 관련 글 왜 지금 펑크인가 – vol.3/no.19 [20011001] 펑크 25년: 1976 – 2001 (1) – vol.3/no.19 [20011001] 펑크 25년: 1976 – 2001 (2) – vol.3/no.20 [20011016] Punk Diary – vol.3/no.19 [20011001] Sex Pistols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리뷰 – vol.3/no.19 [20011001] 영화 [History of Rock ‘n’ Roll Vol. 9: Punk] 리뷰 – vol.3/no.20 [20011016] 영화 [The Filth And The Fury: A Sex Pistols Film] 리뷰 – vol.3/no.20 [20011016] 영화 [Rude Boy] 리뷰 – vol.3/no.20 [20011016] 영화 [Lifestyles Of The Ramones] 리뷰 – vol.3/no.20 [20011016] 영화 [The Decline Of Western Civilization] 리뷰 – vol.3/no.20 [20011016] 영화 [Our Nation: A Korean Punk Rock Community] 리뷰 – vol.3/no.20 [2001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