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LA 펑크 씬과의 근접 조우 The Decline Of Western Civilization 감독: Penelope Spheeris 시간: 100분 연도: 1981 [The Decline Of Western Civilization]은 여성 감독 페넬로프 스피어리스(Penelope Spheeris, [Z]와 [계엄령], [실종] 등으로 유명한 정치영화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Costa Gavras)의 친척이다)의 데뷔작이자 장편 다큐멘터리이다. 그녀의 영화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으로 마이크 마이어스(Mikes Meyers)의 출세작인 [웨인스 월드(Wayne’s World)](1992)를 꼽을 수 있겠는데, [서양 문명의 몰락]과 [웨인스 월드]에서 알 수 있듯 페넬로프 스피어리스의 일관된 관심사가 록 음악임을 눈치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The Decline Of Western Civilization]은 1980년대 초반 LA의 펑크 뮤직 씬을 생생한 핸드 헬드 촬영으로 포착해낸 귀중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쟁쟁한 LA 하드코어 펑크 밴드의 클럽 공연을 중심으로, 뮤지션들, 클럽 주인과 매니저, 펑크 족과의 인터뷰가 사이사이 들어가 있는 구성으로 진행된다.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밴드들은 그야말로 ‘책에서나 보던’ 전설적인 팀들이 대다수다. 1980년대 하드코어의 대부격인 블랙 플랙(Black Flag, 더구나 보컬리스트는 헨리 롤린스(Henry Rolins)도 아니고 초창기 멤버였던 론 레이스(Ron Reyes)다!), ‘하드코어의 이기 팝’ 다비 크래쉬(Darby Crash)가 온 몸을 불살랐던 밴드 점스(Germs), 강경 하드코어 노선을 대변하는 서클 적스(Circle Jerks)와 피어(Fear) 등의 폭발적인 라이브와 인터뷰를 볼 수 있는 결코 흔하지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 강경 노선 밴드 외에도, 초기 로큰롤 사운드에 친화성을 보이는 엑스(X)나(존 도(John Doe)의 새파랗게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캐톨릭 디시플린(Catholic Discipline)의 라이브 공연도 충분히 색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위 밴드들의 연주 장면과 더불어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는 바로 클럽 관중들의 광란으로 가득 찬 난투극. 우리에게는 1990년대 중반에서야 본격적으로 도입된 펑크 관련 춤(포고, 슬램, 모싱)이 까마득한 옛날에 이미 확고한 클럽 문화의 ‘클리셰’로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들 클럽 고어(Club Goer)들의 인터뷰를 보면, 이들의 폭력 행위는 다 ‘재미’를 위한 것이고, 신나게 즐기자는 취지에서 나오는 행동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동기의 저변에는 기성 체제를 거부하는 무정부주의적 청년 문화의 정서가 짙게 깔려있지만, 사실 따져보면 이들의 행동은 디스코 클럽에 드나드는 삐까번쩍한 이들과 과연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과격성만 거세되었을 뿐이지 ‘다함께 신나게 놀아보자’라는 마음가짐은, 저항심으로 충만한 록이든 쾌락에 물든 댄스든 근본적으로 공통된 포인트가 아닌가? 감독은 여기서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된 서양 문명의 일종의 정신적인 몰락(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 의미든 간에)을 간파해 냈는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는 광란의 몸부림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존의 질서 체계를 비록 찰나의 순간이라도 간단하게 무너뜨리는 것. 뮤지션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연주와 이들보다 더욱 몸을 사리지 않는 관객들 사이에 펼쳐지는 일대 광란을 보며, 이런 허망한(?) 생각이 드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진 전설의 펑크 로커들의 그 옛날 생생한 모습을 다시 보며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점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20011009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 여담 : [The Decline Of Western Civilization]은 헤비 메탈의 세계를 다룬 2편(1988), LA의 집 없는 아이들을 다룬 3편(1998) 등 ‘속편’이 계속해서 양산되었다. 관련 글 왜 지금 펑크인가 – vol.3/no.19 [20011001] 펑크 25년: 1976 – 2001 (1) – vol.3/no.19 [20011001] 펑크 25년: 1976 – 2001 (2) – vol.3/no.20 [20011016] Punk Diary – vol.3/no.19 [20011001] 영화 [History of Rock ‘n’ Roll Vol. 9: Punk] 리뷰 – vol.3/no.20 [20011016] 영화 [The Filth And The Fury: A Sex Pistols Film] 리뷰 – vol.3/no.20 [20011016] 영화 [Sid And Nancy: Love Kills] 리뷰 – vol.3/no.20 [20011016] 영화 [Rude Boy] 리뷰 – vol.3/no.20 [20011016] 영화 [Lifestyles Of The Ramones] 리뷰 – vol.3/no.20 [20011016] 영화 [Our Nation: A Korean Punk Rock Community] 리뷰 – vol.3/no.20 [2001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