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topunk ‘펑크 바이러스’의 발원 바이러스 명 : 펑크 발원시기 : 1960년대 중반? 발원지 : 감옥? 그리고 거라지 록큰롤이 흑인 ‘남자’의 성행위를 지칭하는 말이었던 반면, 펑크는 원래 감옥에서 동성애의 ‘여자’ 역할을 하는 호모섹슈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이 용어는 1960년대 중반, 비틀스 이후 영국음악과 초기 싸이키델릭의 영향으로 실험을 일삼던 미국의 거라지 밴드들의 청소년 문화를 지칭하는 말로 변이. 1972. 10, 편집 앨범 [Nuggets] 거라지 밴드들의 음악을 모아 레니 케이(Lenny Kaye)가 편집한 두 장 짜리 편집 앨범. 운이 없었던 일단의 거라지 싸이키델릭 ‘펑크 록’ 밴드들이 생산해낸 곡들. 1973. 2, 이기 앤 더 스투지스(Iggy & The Stooges), [Raw Power] 앨범 [롤링 스톤] : “최초의 위대한 펑크-기타 앨범. 이는 3년 후 뒤따르게 될 전세계적 펑크의 폭발을 위한 전조를 마련한 레코드.” New York Punk 1973. 1, 뉴욕 돌즈(New York Dolls), 데뷔 앨범 발표 셀프타이틀 앨범의 커버에서 멤버들이 호모섹슈얼의 여성복장으로 등장. 보위의 글램 스타일의 극단과 롤링 스톤스의 리프가 강한 에너지를 통해 결합.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가 해체된 후 뉴욕 언더그라운드 씬의 중심은 머서 아트 센터(Mercer Arts Center)로 이동. 돌즈의 아지트. 1973-74, ‘미국 뉴웨이브’ 밴드 결성 텔레비전(Television), 레이먼즈(The Ramones), 토킹 헤즈(Talking Heads), 패티 스미쓰 그룹(The Patti Smith Group), 블론디(Blondie) 잇따라 결성. CBGB’s : Country, Blue Grass and Blues의 약자. 머서 아트 센터가 사라진 후, 텔레비전의 리더 톰 벌레인(Tom Verlaine)이 힐리 크리스탈(Hilly Kristal)이라는 작자를 꼬셔서 새로운 밴드들이 연주할 공간을 마련. 이글스나 핑크 플로이드 같은 ‘공룡’ 록 밴드의 헤게모니에 대한 펑크 록의 최초의 공격 진지. 1975. 11, 패티 스미쓰, 데뷔 앨범 [Horses] 발표 패티는 CBGB’s의 첫 스타. 그녀와 레니 케인이 중심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존 케일(John Cale)이 프로듀스하고 톰 벌레인이 참여. “예수는 누구가의 죄를 대속했지만 그게 내 죄는 아냐”라고 시작하는 이 앨범은 남자 같은 외모를 한 패티가 커버에 등장. London Punk 1972. 10, 맬컴 매클레런(Malcolm McLaren), 뉴욕 돌즈와의 만남 돌즈의 첫 영국 방문 때, ‘렛 잇 록(Let It Rock)’이라는 옷가게에서. 말콤은 돌즈를 따라 미국에 와서 그들의 매니저 일을 하면서 맨해튼의 언더그라운드를 기웃기웃. 1975. 8,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 탄생 맬컴의 일을 돕던 버니 로즈(Bernie Rhodes)가 녹색 머리에 “나는 증오해”라고 덧쓴 핑크 플로이드의 티셔츠를 입은 존 라이든(John Lydon)을 한 허름한 펍으로 끌고 옴. 조니와 맬컴, 글렌 매틀록(Glenn Matlock), 스티브 존스(Steve Jones), 폴 쿡(Paul Cook)과의 우연찮은 첫 만남. 멤버들은 조니의 썩은 이빨을 보고 ‘로튼(Rotten)’이라는 별명을 지어줌. 1976. 6, 클래쉬(The Clash) 결성 조 스트러머(Joe Strummer)가 원헌드레드워너스(The 101’ers)를 해산하고 폴 시머넌 (Paul Simonon), 믹 존스(Mick Jones) 등과 함께 결성. 1975-76년 양해에 걸쳐 슬리츠(The Slits), 와이어(Wire), 엑스 레이 스펙스(X-ray Spex), 버즈콕스(The Buzzcocks), 수지 앤 더 밴쉬스(Siouxsie & The Banshees), 스트랭글러즈(Stranglers) 등의 밴드가 쇄도. 1976. 9, 100 클럽 펑크 페스티벌 섹스 피스톨스, 클래쉬, 수지 앤 더 밴쉬스, 댐드(The Damned), 버즈콕스 등의 펑크 밴드들이 이틀간 공연. 펑크 영년을 이루는 기점으로 간주. 영국의 온갖 펑크족이 몰려든 공연은 언론에 의해 폭력과 무질서가 부각되었고, 섹스 피스톨스가 그 표적. 이 후 펑크 밴드들의 100 클럽 공연은 금지. 1976. 10, 섹스 피스톨스, EMI와 계약 진보적 이미지를 갖추려던 레코드사와 매클래런의 음모가 조우. 데뷔 싱글 “Arnarchy In The U.K.”를 만드는 데까지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고. 1976. 12, 조니 로튼, 템즈 텔레비전 출연 생방송에 출연, 평화로운 수요일 저녁 영국 온 가정에 ‘FUCK’이라는 욕설을 선사. EMI 섹스 피스톨스와의 계약 파기. 섹스 피스톨스는 A&M과의 계략했다 다시 파기당하고, 버진(Virgin)과 계약. 1977. 2, 섹스 피스톨스, 베이시스트 글렌 매트록 해고 해고 이유는 그가 “폴 매카트니와 같은” 수정주의를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 수지 앤 더 밴쉬스의 멤버였으며 어쩡쩡한 위치에서 함께 활동하던 시드 비셔스(Sid Vicious)가 자리를 대신. 1977. 3-4, 클래쉬, 데뷔 싱글 “White Riot”과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 발표 믹 존스 : “이건 펑크도 아니고 뉴 웨이브도 아니다. 이건 그룹들이 이동해야 할 논리적 수순이다. 온갖 쓰레기 같은 말로 당신 맘대로 부르든 말든. 이건 단지 로큰롤일 뿐이다.” 1977. 10, 섹스 피스톨스, 데뷔 앨범 발표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라는 제목. 1978. 1, 섹스 피스톨스 해산 조니 로큰은 “2년 동안 연주해온 똑같은 음악과 시드 비셔스의 어린애 같은 행동에 질렸다”고 말하며 밴드를 탈퇴. 시드는 약물과용으로 삶과 죽음을 오락가락. * 포스트-피스톨스: 펑크의 자기분열(77년 이후). 1979. 12, 클래쉬, 두 번째 앨범 [London Calling] 발표 정치적 메시지와 재치, 록큰롤과 레게가 융합된 더블 앨범. 70년대의 종언과 함께 펑크의 전성기도 종언. * 이 글은 1996년에 쓰여진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20010930 | [weiv] 관련 글 왜 지금 펑크인가 – vol.3/no.19 [20011001] 펑크 25년: 1976 – 2001 (1) – vol.3/no.19 [20011001] Ramones [Ramones] 리뷰 – vol.3/no.19 [20011001] Television [Marquee Moon] 리뷰 – vol.3/no.19 [20011001] Sex Pistols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리뷰 – vol.3/no.19 [20011001] Wire [Pink Flag] 리뷰 – vol.3/no.19 [20011001] The Clash [The Clash] 리뷰 – vol.3/no.19 [20011001] Gang Of Four [Entertainment!] 리뷰 – vol.3/no.19 [20011001] Buzzcocks [Singles Going Steady] 리뷰 – vol.3/no.19 [20011001] Slits [Cut] 리뷰 – vol.3/no.19 [20011001] 관련 사이트 From Dada to Wave http://www.mital-u.ch/Dada 쮜리히의 카바레 볼테르와 다다 운동에 관한 사이트. 20세기 아방가르드 운동과 펑크/웨이브 음악과의 관련성에 관해 나와 있다. “We Created It; Let’s Take It Over!”: The Emergence of Punk in America http://www.inch.com/~jessamin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뉴욕 씬에 초점을 맞춘 사이트. Punk Chronology http://www.emplive.com/explore/punk_chron 1960년대 뿌리부터 1980년대 초까지 펑크의 연대기. Ray Stevenson – Punk Photos 1976-1979 http://www.photos.fsbusiness.co.uk 사진작가의 펑크 사진들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