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01125800-macygray_idMacy Gray – The Id – Epic, 2001

 

 

다양한 흑인 음악 어법 응용, 다채로운 사운드 실험을 통한 자기 스타일 정립

2년 전 메이시 그레이(Macy Gray)의 데뷔앨범 [On How Life Is](1999)가 세상에 나왔을 때, 이 음반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 거리를 제공했다. 첫째는 그녀의 목소리에 관한 것인데, 거칠고 탁한 듯하면서도 매끄럽게 흘러가는 소울풀한 보컬은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나 니나 사이몬(Nina Simone), 심지어 티나 터너(Tina Turner)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들과 즐겨 비교되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보컬 스타일은 고전적인 격식과 절제의 미덕을 순순히 따르기보다는 힙합 세대의 자유로운 감성을 표현하는데 더욱 이끌린다는 점에서, 예상 밖으로 당대의 모던 R&B/소울 사운드에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두 번째는 이 앨범의 프로덕션에 관한 것인데, 프로듀서인 앤디 슬레이터(Andy Slater)는 [On How Life Is]에서 메이시 그레이가 선호하는 훵크, 힙합, 재즈의 요소들은 유지하되 이를 백인 록 음악의 감성에 녹여내고자 많은 노력을 투여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앤디 슬레이터의 적자인 월플라워스(Wallflower)나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의 사운드를 답습하기 보다 오히려 메이시 그레이가 동경하는 조 카커(Joe Cocker)의 감성에 더욱 가까웠고, 결국 그녀는 분명한 자기 색깔을 지닌 R&B/소울 싱어이자 ‘뮤지션’으로 자리 매김 하게 된다.

[The Id]는 전체적으로 전작 [On How Life Is]의 주된 성공 요인이었던 백인 록의 감성과 흑인 음악 장르들의 절충적이면서 창조적인 결합이라는 기본 전략을 고수한다. 하지만, 앤디 슬레이터가 떠난 사운드 감독관의 자리를 릭 루빈(Rick Rubin)이 맡으면서 이 앨범은 훵크, 소울, 힙합, 레게 등 흑인 음악의 요소들을 보다 많이 채용하여 훨씬 다채로운 사운드스케이프를 과시한다. 메이시 그레이의 보컬이 개성은 강하되 저음과 고음을 자유롭게 넘나들기에는 음역이 상대적으로 좁다는 점에서, 화려한 악기 편성과 다양한 비트 실험은 전작과의 변별성을 드러내기 위한 최선의 전술이 아니었나 싶다.

최상의 트랙은 앨범의 포문을 여는 “Relating To A Psychopath”다. 윙윙거리며 밀려오는 기타, 라가(ragga)의 영향이 느껴지는 베이스라인과 건반, 퍼커션, 백보컬 화음의 든든한 뒷받침 속에 메이시 그레이의 목소리는 마치 신나는 블록 파티를 주도하는 듯 하다(물론 이 곡의 기타 연주는 전작에 이어 다시 참여한 LA의 한국계 기타리스트 임진수가 담당했다). 싸이키델릭한 디스코 소울 “Sexual Revolution”을 지나면, 앨범의 곳곳에서 R&B와 힙합의 거물들이 메이시 그레이를 돕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전설적인 래퍼 슬릭 릭(Slick Rick)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Hey Young World Part 2”, 모스 데프(Mos Def)와 앤지 스톤(Angie Stone)의 협업이 돋보이는 “My Nutmeg Phantasy”는 메이시 그레이 식으로 해석한 힙합/소울의 모범이다. 물론 그녀의 보컬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고 싶다면, 당대 최고의 여성 소울 뮤지션 에리카 바두(Erykah Badu)가 함께 한 1970년대 스타일의 업템포 발라드 “Sweet Baby”, 메이시 그레이의 적자 선샤인 앤더슨(Sunshine Anderson)이 그녀와 듀엣으로 부른 블루지한 감성의 “Don’t Come Around”가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트랙들이다.

사운드에서 드러나는 다채로운 실험은 그녀의 광기 넘치는 시적 감수성과 절묘하게 결합한다. 섹슈얼리티와 폭력에 대한 메타포를 거침없이 다루었던 전작을 넘어, [The Id]에서 메이시 그레이는 이제 사회적, 정신적 일탈을 통해 억압된 개인의 욕구들을 해방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타진한다. 좋아하는 남자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위협해서라도 사랑을 쟁취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큰소리치고(“Gimme All Your Lovin’ Or I Will Kill You”), 한편으로 ‘사이코적’ 삶의 즐거움에 대해 자화자찬하며 함께 동반하기를 권하기도 한다(“Relating To A Psychopath”). 의도적인 것이든 자연스러운 것이든, 메이시 그레이의 노래에서 뿜어 나오는 이러한 광기는 다른 여성 R&B/소울 뮤지션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그녀만의 소중한 음악적 자산임에 틀림없다.

메이시 그레이는 로린 힐(Lauryn Hill)의 음악적 창조력,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의 화이트 소울(white soul) 감성, 톰 웨이츠(Tom Waits)의 광기를 겸비한 독특한 뮤지션이다. 물론 그녀는 단순히 그들의 아류로 머무르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오히려 메이시 그레이는 겨우 두 장의 정규 앨범으로 이미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한 듯하다. 다양한 흑인 음악의 어법들을 응용한 다채로운 사운드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내적 욕구(혹은 광기) 또한 제대로 표현해낼 수 있는 20대의 젊은 뮤지션이 지금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녀가 반짝하고 사라지는 ‘원 힛 원더(one-hit wonder)’가 아니라, 장차 미국 흑인 음악을 대표하는 여성 뮤지션이 되리라고 낙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20010929 | 양재영 cocto@hotmail.com

8/10

수록곡
1. Related To A Psychopath
2. Boo
3. Sexual Revolution
4. Hey Young World II (feat. Slick Rick)
5. Sweet Baby (feat. Erykah Badu)
6. Harry
7. Gimmie All Your Lovin’ Or I Will Kill You
8. Don’t Come Around (feat. Sunshine Anderson)
9. My Nutmeg Fantasy (feat. Angie Stone & Mos Def)
10. Freak Like Me
11. Oblivion
12. Forgiveness
13. Blowin’ Up Your Speakers
14. Shed (hidden track)

관련 글
Macy Gray [On How Life Is] – vol.3/no.1 [20010101]

관련 사이트
Macy Gray 공식 사이트
http://www.macyg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