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01124939-strokes_isthisit_korea_ukStrokes – Is This It – RCA, 2001

 

 

21세기에 듣는 20세기 록 음악의 재활용품

음반 리뷰에 주관적 감상기 형식을 차용하는 점에 대해 독자의 양해를 구하고 싶다. ‘뉴욕 록의 새로운 자존심’ 스트록스(The Strokes)의 앨범은 풍문, 이른바 미디어 하이프(media hype)가 풍성했다. 대서양 건너 영국 평론가들로부터 선풍적인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시장의 열기가 서서히 달아올랐다. 게다가 정식 발매일인 9월 25일 이전에 한국에서 라이선스 음반이 먼저 발매되는 기괴한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렇지만 “21세기에 처음 등장한 대형 밴드”라는 스트록스의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얼굴이 붉어지며 혈압이 급상승하다가 울화가 치밀었다. 이것이 과연 “21세기를 책임질” 록 음악이란 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11곡의 수록곡 모두를 들은 뒤에는 마침내 탈진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1주일 뒤 똑같은 음반을 다시 들었을 때 처음 들었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상당히 들을 만한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음반이 다 끝나면 또 다시 듣기 시작하고, 그렇게 서너 번을 연달아 들었다. 신인 밴드의 첫 번째 앨범이라고 믿을 수 없게,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은 아주 능란하고 잘 만들어졌다. 고른 수준의 완성도가 느껴지는 ‘잘 만들어진(well-made)’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음반인 것이다. 어떻게 동일한 음반을 놓고 품은 감정이 이렇게 극과 극일 수 있단 말인가? 혹시 내가 분열증적 상황에 빠져있었거나, 지금도 빠져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정신적 공황에 빠지고 말았다. 이러한 모순과 분열에 대해 한참 동안 ‘정신분석’을 시도하다가 마침내 해답(또는 ‘진실’의 근사치)의 실마리를 찾았다. 해답은 CD 겉면에 붙어있는 스티커 선전 문구에 있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재래!”.

스트록스의 음악을 혐오했다가 열광했다가 하면서 오락가락한 첫 번째 이유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도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다는 점과 연관이 있다. 물론 대체로 좋은 경우가 많지만 간혹 끔찍하게 듣기 싫을 때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유를 말할 수 없다. ‘그냥..’이기 때문이다. ‘재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듯하다. 이들 역시 그쪽 평단에서 ‘좋아하든가 싫어하든가 둘 중 하나에 속하는 밴드(Love or Hate Band)’다.

두 번째 이유는 “이게 ‘새로운’ 음악인가? 잡탕(또는 짬뽕)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트록스의 음악은 ‘클리셰의 전체 집합’이다. 음반을 듣고 있으면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물론이고, 뉴욕 돌스(New York Dolls), 텔레비전(Television), 토킹 헤즈(Talking Heads), 카스(The Cars),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등 1970년대를 풍미한 영미 언더그라운드의 주요 거목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어디 그 뿐인가? 줄리언 카사블랑카스(Julian Casablancas)의 거칠고 호소력 있는 보컬은 U2 초기의 보노(Bono)의 목소리를 빼닮았다. 무엇이 신선하고 혁신적이란 말인가? ‘짜집기’도 상당한 재능에 속하는 지 모르지만, 이렇게 일관성 없이 이것 저것을 본뜨는 광경이 떠오른다면?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지만, 과거의 자산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여 참신한 전통을 세워나가는 게 ‘장르’의 진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름의 ‘진정성’과 ‘독창성’이 요구될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스트록스에게는 이런 두 가지 중요 항목이 결여되어 있다고 판단되었다.

그렇지만 너그러움을 발휘한다면 “다 즐기자고 만들고 듣는 음악에 진정성이나 독창성이 얼마나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보노를 흉내냈다고 하더라도 U2 스스로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이라고 노래했다면 삿대질 받을 이유는 아닐 것이다. 이들의 음악은 일단 듣기 좋고, 태도는 ‘쿨’하고, 연주도 무난하고, 보컬 음정 정확하고, 사진발도 괜찮다. 거기에 기특하게도 ‘정통성’을 인정받은 과거의 거장들의 에센스를 ‘오마주’로 가져다 쓰고 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스트록스에게 호의적 감정을 갖기로 했다. 지금은 록 음악이 순수한 고갱이를 품고 있는 참예술 분야로 간주되던 1960-70년대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이런 시대착오적 생각을 하면 결국 스스로 록을 저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왕 들어온 거 오래 오래 록과 함께 살아가려면 좋았던 옛 시절 것만 고집스럽게 듣던가, 그것도 싫다면 성에 차지 않더라도 요즘 음악들도 들으면서 적당히 추켜주는 등 외교적으로 살 필요도 있을 것이다. 내일 또 어떤 빌딩이 무너질 지 모르는 이 21세기에 이 정도의 ‘관용’은 사실 귀여운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 20010926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4/10

20011001124939-strokes_isthisit_us[Is This It]의 미국 발매반 재킷. 유럽 및 한국 발매반과 재킷이 다르다.
P.S.: 9월 24일 [Rolling Stone]의 보도에 따르면, 이 앨범의 수록곡 중 “New York City Cops”가 뉴욕 테러 사건의 여파로 미국 발매반에서 삭제되고, 그 대신 “When It Started”가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발매 날짜 또한 9월 25일에서 10월 9일로 연기되었다.

수록곡
1. Is This It
2. The Modern Age
3. Soma
4. Barely Legal
5. Someday
6. Alone, Together
7. Last Nite
8. Hard To Explain
9. New York City Cops
10. Trying Your Luck
11. Take It Or Leave It

관련 사이트
The Strokes 공식 사이트
http://www.thestrok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