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요비 – Nineteen Plus One – 신촌뮤직, 2001 특별한 목소리, 평범한 음악 어느새 R&B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흑인의 정서와 한국의 한의 정서가 맞닿기 때문에 한국에서 R&B가 먹힌다’는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이제 그만 하자. 지금까지 한국에 R&B가 ‘제대로’ 수입된 적이라도 있었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R&B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R&B 붐’이라는 건 가을이라는 계절적 요인, 댄스 음악 일변도에 대한 염증, 미국에서 R&B에 영향받은 틴 팝(teen pop)의 유행, 일본에서 ‘자기네식’ R&B의 만개, 그리고 한국에 바로 그 일본식 R&B의 보급 등의 현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보다 거칠게 말하면 R&B는 한국에서 말하는 이른바 ‘발라드’의 현재적 모습이다. ‘별로 맘에 안 든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꺼낸 얘기는 아니다. 다만 ‘착각’과 ‘오해’는 피하자는 말이다. 한편 R&B가 가미된 발라드가 부상하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낳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가창력’ 자체가 다시 중요한 평가의 기준이 되고, 가수가 ‘가수’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된다는 점이다. 실은 지금까지 늘상 간과되어 온 것이 실은 가창력 아닌가(물론 ‘어떤’ 가창력인가 하는 건 다른 문제다). ‘놀라운 가창력’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은 가창력을 가진 ‘R&B의 요정’ 박화요비가 두 번째 앨범을 들고 나왔다. “Lie”, “첫사랑” 같은 빼어난 곡으로 데뷔 즉시 성공을 거두었던지라 두 번째 앨범이 꽤 궁금했던 게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 내세운 곡 “눈물”은 어쿠스틱 기타가 이끄는 고즈넉한 곡으로, 박화요비의 목소리는 리듬을 타고 물 흐르듯이 흐르다가 감정이 고조되는 곳에서는 적당하게 다잡으면서 폭발한다.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목소리’라는 표현이 걸맞는 곡이다. “아침이 온 것처럼”, “난(難)”, “다짐”, “Forever”, “Fly, Fly…”, “Seraphy” 같은 곡들이 데뷔 앨범의 전반적인 기조와 궤를 같이 하는 ‘발라드 계열’의 곡들이다. 박화요비의 목소리에서 풋풋한 떨림 대신 (좀 이른 표현이긴 하지만) 노련함과 여유가 살짝 엿보인다. 무작정 내지르지도 않고 기교에만 기대지도 않았다는 게 그 반증이다. “눈물”의 경우 “Lie”와 분위가가 흡사하다는 점이 아쉽고, 다른 곡들은 너무 평범하다는 점이 불만(혹자에게는 실망)이다. 두 번째 앨범은 팝 R&B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듯, 힙합과 댄스 경향을 강화했다. 그렇지만 이런 곡들에서는 간간이 선보이는 랩 스타일이 진부하고, 힙합 비트과 댄스 리듬이 천편일률적이며, 곡 구성이 너무 안이하다는 ‘한국식’ R&B의 고질적인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다음 번으로 ‘미는 곡’이 될 것 같은, 윤상이 작곡한 “고백”은 디스코라는 장르적인 특징 이외에 아무런 특징이 보이지 않고, 정연준이 작사/작곡한 “자존심”과 황성제가 작사/작곡한 훵크 색채의 “All For Your Love”는 구성과 편곡이 특히 산만하다. 눈여겨보게 되는 건 박화요비가 직접 만든 곡이 다섯 곡이나 된다는 점이다. 장르/스타일적 ‘전형’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제 습작을 갓 벗어난 정도의 곡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유명’ 작곡가들의 곡들도 대부분 그리 대단할 것은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내심 기대하게 하는 부분이다. 전체적인 느낌을 정리하면, 데뷔 앨범에 비해 보컬은 한 걸음 나갔지만 곡은 두 걸음 뒤로 갔다는 것이다. “Lie” 같이 귀를 확 잡아끄는 곡이 없다는 것도 아쉬움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건 박화요비의 잘못이 아닌 것을. ‘가수’로서 나아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는 그이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20010928 | 이정엽 evol21@weppy.com 6/10 수록곡 1. 운명 2. 눈물 3. 아침이 온 것처럼 4. 난(難) 5. 고백 6. I Need Your Love 7. 다짐 8. 자존심 9. Forever 10. Fly, Fly… 11. All For Your Love 12. Seraphy 관련 사이트 신촌뮤직 사이트에 있는 박화요비 페이지 http://www.sinchonmusic.com/yo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