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비 앙 로즈(La Vie En Rose) – La Vie En Rose – Imstation/드림비트, 2001 빠리·동경·서울, 슈게이징·신쓰 팝·제이 팝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의 낭만적인 발라드의 곡명이기도한 라 비 앙 로즈(La Vie En Rose)는, 사실 (말뜻으로든 노래로든) ‘장미 빛 인생’이란 의미를 무시해버리면 그저 발음이 ‘예쁜’ 말(단어)일 뿐이다. 한 여가수의 기구찬란한 ‘인생’과 ‘삶의 녹록한 철학’이 깃들어 있거나, ‘빠리적 정서’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한 이 단어는, 그래서 빠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동아시아 개도국의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까페 이름으로도, 어느 혼성 4인조 밴드의 이름으로도 사용되는 듯하다. 손금원(보컬, 기타), 손수연(베이스), 이종민(드럼), 이종석(기타)으로 구성된 라 비 앙 로즈의 데뷔 앨범은 넬(Nell)의 음반을 제작하며 음반시장에 뛰어든 아임스테이션의 입장에서는 네 번째 제작앨범이고, 심야 FM 프로그램의 프로듀서 겸 디제이였던 조경서의 입장에서는 세 번째 프로듀싱 앨범이다. 앨범은 대중적인 팝 멜로디를 중심으로 이펙트에 의한 노이즈가 첨가된, 이를테면 노이즈 친화적(?)인 앨범이라는 느낌을 주지만, 이런 느낌만으로 섣불리 아랍 스트랩(Arab Strap)이나 모과이(Mogwai) 등과 연관시키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공연장에서 ‘슈게이징’하기에 좋을 곡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사운드가 전체적으로 너무 말끔하고 다듬어진 것처럼 들린다는 말이다. 물론 “Sheep”과 같은 곡에서의 일그러진 기타음을 듣다보면 모과이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곧이어 등장하는 ‘밍밍한’ 보컬과 멜로디가 ‘감정의 고조’를 급랭시키는 효과도 준다. 무겁게 가라앉은 사운드에 비해 보컬의 미성(微聲)이 너무 튀는 느낌이라는 말이다. “Leave”의 경우는 지나치게 멜로디에 집착한 탓에 앨범의 전체적인 균형을 깨뜨리는 경우다. 물론 이러한 상이한 충돌을 매력적인 요소로 전환시키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일인지, 아니면 거기엔 별도의 재능이 더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서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앨범을 통틀어 ‘무언가 빈 듯한’ 허전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네 번째 곡 “No More Dance”와 같이 둥둥거리는 베이스 라인과 중간에 선명하게 퍼지는 신서사이저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도 있고, 이어지는 “Walts”처럼 따뜻한 멜로디가 귀에 감기는, 아득하게 멀어지는 듯 리버브된 기타 음이 매력적인(하지만 어딘지 귀에 익은) 느낌의 곡도 있다. 특이하게 일곱 번째 곡 “Good Bye”의 경우는 기타 없이 신서사이저 연주(시퀀싱)만으로 만드는 경쾌한 그루브가 오히려 보컬의 음색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이런 말이 밴드에게는 칭찬일지 아닐지 궁금하(고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지배적인 이유는 밴드의 지향점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슈게이징, 신쓰 팝, 제이 팝 등의 요소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섞여있는 듯한 느낌 말이다. 이것은 데뷔 앨범에 대한 밴드의 욕심이 과한 까닭인 것도 같지만, 아직 멤버들이 모두 이십대 초반이라는 점을 ‘배려’한다면 이해할 만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음악에 대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꼭 그 만큼’만’ 만족해야 할 듯. 20010927 | 차우진 djcat@orgio.net 5/10 P.S. 1. 에디뜨 삐아프 얘기로 ‘있는 척’ 폼잡았던 ‘인생’얘기는 다음 앨범이 나온다면 그때 해도 좋을 듯하다. 대신 어깨에 힘은 빼고. P.S. 2. 라 비 앙 로즈라는 말은 장밋빛 인생이라는 그 의미대로 우울증, 애수, 멜랑콜리와 같은 감성들을 ‘빠리의 감수성’으로 낭만화하는데 종종 기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유럽에 대한 동경(혹은 경외)의 정도가 비교적 강하다고 생각되는 일본의 문화상품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라 비 앙 로즈’란 말이 오타쿠를 대상으로 했던 애니메이션 [디지캐럿]에 등장하는 ‘주사위소녀’ 우사다 히카루(우타다 히카루와 닮은 이름을 끔찍이 싫어하는)의 예명으로도, [기동전사 건담]에 등장하는 스페이스 콜로니의 이름으로도 쓰였다는 점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라 비 앙 로즈라는 말은, 그래서 빠리가 아닌 ‘동경’을 떠올리게 한다(물론, 일본식 억양으로). 수록곡 1. Hi 2. Sheep 3. 내 방 위의 천정 4. No More Dance 5. Waltz (37개의 슬픈 내 얼굴) 6. Leave 7. Good Bye 8. Hi (Demo Version) – Bonus Track 9. Bloody Sun (Demo Version) – Bonus Track 관련 사이트 제작사 Imstation에 있는 라 비 앙 로즈 페이지 http://www.imstation.com/artist/artist/default.jsp?seq_id=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