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 스파이스 – D – Tin Pan Alley, 2001 네 번째부터 다시 시작! ‘대중적인 인디 밴드’ 델리 스파이스(Deli Spice)의 네 번째 앨범에는 [D]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타이틀곡의 제목이 곧 앨범의 제목이 아닌 경우에,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특히 이 밴드의 세 번째 앨범 제목이, 음반제작사와의 마찰로부터 얻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밴드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자기성찰([슬프지만 진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어쨌든, 이 ‘D’라는 문자는 델리 스파이스의 이니셜이면서 알파벳의 네 번째 기호인데, 이른바 ‘델리 스파이스의 네 번째 앨범’이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의미로 보인다. 혹시 이것은 델리 스파이스의 새로운 다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전작들과 달리 이 앨범은 김민규와 윤준호가 양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3집 [슬프지만 진실…]의 타이틀곡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에서처럼 우울한 감성을 ‘쿨’하게 표현하는 김민규의 작사·작곡 솜씨는 첫 곡 “뚜빠뚜빠띠”에서 다시 빛을 발하며, 예전에 써둔 곡이라는 “항상 엔진을 켜둘께”에서 깔끔한 사운드에 실린 ‘말랑말랑’한 가사는 ‘언니들’에게 휠잇(feel it)할 만한 곡이다(‘항상 엔진을 켜’두겠다는 남자가 어디 흔할까). “악몽”이나 “천사의 자장가” 같은 곡은 스위트피(Sweetpea)에서 보여준 그의 멜랑콜리한 감수성을 잘 ‘변용’한 경우다. 이처럼 김민규의 감수성이 실험적인 것과 대중적인 것을 결합하는 시도로 보이는 반면, 윤준호의 곡들은 상대적으로 ‘더’ 대중적인 느낌이다. “안녕 비밀의 계곡”, “동병상련”, “한길”, “낯선 아침” 같은 곡들에는 전반적으로 향수(노스탤지어)와 낭만주의(로맨티시즘)의 감수성이 흐른다. 브라스 연주(“안녕 비밀의 계곡”)와 오케스트레이션(“동병상련”)으로 다층적인 멜로디를 만들어 내거나, 키보드와 무그 신서사이저(“낯선 아침”)로 사운드에 질량과 공간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컴필레이션 [희노애락]에 이미 수록된 바 있는 “한길”은 류한길(Day Tripper)을 모델로 삼은 곡으로 단지 리프(riff)와 훅(hook)만으로 매력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이렇듯 윤준호의 곡들에서는 ‘대곡'(혹은 아트 록) 스타일과 대중적인 기타 팝의 감수성이 돋보인다(밴드의 드러머 최재혁이 만들고 부른 “Y.A.T.C”의 그루브감은 뜻밖의 발견일 듯하고). 이렇게 다르거나 비슷한 두 사람의 감수성은 “Doxer”(원래 Boxer인데, [D] 앨범이라 철자를 바꿔 장난쳤다 한다)에서 만나지만, 사실 베이스가 강조되며 나른하게 울리는 기타음과 중간에 등장하는 트럼펫의 음색이 묘하게 충돌하는 느낌을 주는 이 곡을 두 사람의 ‘절묘한 결합’이라고 말하기엔 어려울 듯하다. 그밖에 데뷔전에 제작한 데모 앨범에 수록되었던 (스위트피의 감수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Still Falls The Rain”과 킴 칸스(Kim Carnes)의 곡을 ‘노이즈의 감수성’으로 커버한 “Bette Davis Eyes” 역시, 매력적인 곡들임에도 불구하고 앨범의 전체적인 ‘조화’의 측면에서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앨범의 일관성(컨셉트)보다 다양성(백화점식)에 주목한 것 같다는 말이다(이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어쨌든 이 앨범은 델리 스파이스의 ‘어떤’ 전환점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키보드를 연주하던 양용준이 탈퇴해 비어버린 자리를 각종 관현악기들이 메우고 있고 이것은 멜로디를 겹겹이 쌓아 보다 풍부한 사운드감을 제공한다(덕분에 4집은 다른 앨범들에 비해 더 화려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런 ‘전환’은 멤버의 탈퇴에 의한 궁여지책일 수도 있지만, (대중적으로) 아직까지 “챠우챠우”의 ‘단순하지만 매력적인 감수성’의 밴드로 설명되는 것에 대한 ‘자기부정’으로서, 무엇보다 시장(market)이라는 정글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진 자리에서 ‘밴드’로서 ‘다시 시작’하기를 다짐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꾸준히 변화/발전해온 밴드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산업적인 측면에서건 문화적인 측면에서건) 열악하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한국 대중가요 시장에서 델리 스파이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이번 앨범 제목인 ‘D’가 ‘네 번째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다짐과 ‘항상 엔진을 켜둘께’라는 약속으로 들리는 까닭은 그런 의미에서이다. 20010927 | 차우진 djcat@orgio.net 7/10 수록곡 1. 뚜빠뚜바띠 2. 항상 엔진을 켜둘께 3. 안녕 비밀의 계곡 4. Y.A.T.C. 5. 동병상련 6. Still Falls The Rain 7. 악몽 8. 화성으로 가는 로케트 9. 한길 10. 낯선 아침 11. Doxer 12. Bette Davis Eyes 13. 천사의 자장가 관련 글 델리 스파이스 [Deli Spice] 리뷰 – vol.2/no.23 [20001201] 델리 스파이스 [Welcome to the Delihouse] 리뷰 – vol.1/no.1 [19990816] 델리 스파이스 [슬프지만 진실…] 리뷰 – vol.2/no.6 [20000316] 스위트피 [결코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 리뷰 – vol.2/no.18 [20000916] Welcome To the Delihouse: 델리 스파이스 인터뷰 – vol.1/no.1 [19990816] 델리 스파이스와의 방담 – vol.3/no.19 [20011001] 관련 사이트 델리 스파이스 공식 사이트 http://www.delispic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