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1년 9월 25일 장소: 마포 한강변의 모 카페 인터뷰어 신현준 9월 15일 4집 앨범 [D]를 내고 9월 22일 단독 공연을 가진 델리 스파이스의 두 멤버 윤준호와 김민규를 만났다. 그날도 모 영화잡지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오느라 조금은 피곤한 모습이었다. 왠지 바쁜 사람들을 쓸데없이 불러냈다는 생각에 식사를 권하자 우리의 델리들은 치즈 그라탕과 오믈렛 라이스를 시켰다. 식사하는 도중 ‘튜브뮤직에서 델리 스파이스의 음반이 조성모 음반에 이어 2위’라는 미확인 정보를 전하자 속으로는 좋아하면서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윤준호가 식사를 마쳐서, 계속 꾸역꾸역 먹어대는 김민규를 옆에 방치(?)하고 윤준호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신현준: 새 앨범 발매된 것 축하합니다. 이번 앨범에서 특별히 의도한 게 있다면 어떤 건가요? 윤준호: 그런 건 특별히 없어요. 왜 괜히 알면서도 그러세요?(웃음) 마음으로 결속을 다지면서 그걸 가지고 곡을 어떻게 짜서, 어떤 색깔을 넣고 빼고는 이야기한 적 없고, 전체적인 컨셉트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백화점이잖아요(웃음). 단, 그런 건 있어요. 미리 정한 계획은 없었는데 해놓고 보면 아무래도 멤버들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같이 변화해 가는 모습을 느끼게 되더라구요. 신현준: 관현악이 많이 들어가서 ‘록 음악’에서 탈피해서 무언가 다른 걸 해보고 싶은 욕망이 느껴지던데… 윤준호: 그런 것도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거고. 3집 때도 재혁이 곡이나 공연 때는 관악이 들어갔었죠. 신현준: 윤준호씨의 곡에서는 “안녕 비밀의 계곡”, “동병상련”처럼 향수 어린 곡이 많은 것 같은데, 혹시 늙어가는 징후인지? 윤준호: 바로 맞추셨네요(웃음). “동병상련”은 나이 좀 드신 분들이 좋아해 주시더라구요. 하지만 홍대앞이라는 표현은 그냥 가사를 쓰다 보니까 그렇게 나온 것이고, 진짜 홍대앞을 말하는 건 아니었어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나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나 옛날에 있었는데 없어진 장소들을 포함해서 표현한 것이죠. 다들 아시겠지만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라는 가사는 어떤 날의 노래 제목이고, 모소모(하이텔 ‘모던 록 소모임’)의 모임을 항상 일요일 오후에 해서… 일요일 오후는 어딘가 마음이 센티멘털해지잖아요. 신현준: 그러고 보니 “천사의 자장가”도 어떤 날의 “그날”을 연상시키던데… 김민규: 저는 이상하게 가사를 쓰다보면 ‘새’라는 단어가 많이 나와요. 음악은 좀 거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고. 윤준호: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외국 아티스트의 어떤 곡을 참고하여 그런 스타일로 하려고 해보면 한국 사람 특유의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아요. 어디서 읽었는데 어떤 날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같은 프로그레시브한 느낌을 내려고 했다고 그러더군요. 잘은 모르겠지만 민규는 장중한 밴드 스타일로 하려고 했는데 ‘한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보니 어떤 날과 묘한 공통점이 나온 것 같아요. 김민규: 처음부터 새가 주인공인 노래를 만들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녹음기간 중에 읽은 책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천사의 제국]이었고… 흠 그리고 저는 ‘자장가’라는 제목의 노래를 꼭 만들고 싶었어요. 큐어(The Cure)의 “Lullaby”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웃음). 어떤 날의 곡은 특별히 참고한 건 아닌데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있었나 봐요. 어떤 날은 “나는 법을 배우는 작은 새”인데 저는 “나는 법을 알기도 전에 떨어지는 새”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네요(웃음). 신현준: 그러고 보면 이번 앨범에서는 윤준호씨의 비중이 커진 것 같네요. 작곡 스타일도 많이 달라졌고, 이전처럼 ‘댄스곡’도 없고..(웃음) 네 곡을 혼자 작곡했고, “Doxer”는 공작으로 되어 있는데… 윤준호: 아무래도 제가 오래 쉬었으니까요. 민규는 자기 레이블인 문라이즈(Moonrise) 일로 바빴으니까요. 댄스곡 없는 건 이전처럼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거죠. 공연 때도 댄스곡은 안 했잖아요. “Doxer”는 제가 멜로디를 쓰고 민규에게 가사를 써달라고 부탁했고 나중에는 노래까지 해달라고 했죠. 신현준: 촌스러운 질문이지만 ‘Doxer’는 ‘Boxer’의 오타 아닌가요. 김민규: 의도된 오타였죠(웃음) 신현준: 두 명은 사이좋은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에는 혹시 트러블 같은 건 없었나요? 예를 들어 “낯선 아침” 같은 곡은 델리로서는 예외적인 곡인데 혹시 민규가 하기 싫다고 그러지는 않았는지?(웃음) 윤준호: 트러블은 없었어요. 사실 “낯선 아침”도 저는 걱정을 많이 하고 가져왔는데 의외로 잼 연주도 해서 빨리 만들어졌어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도 예전에는 아트 록을 좋아해서 이 곡은 킹 크림슨(King Crimson) 같은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희에게 멜로트론도 없고, 밴드 색깔도 그런 건 아니고, 그래서 작업하는 중간에 색깔이 바뀌었어요.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어요. 이후 레코딩 과정에 대한 ‘질의 응답’이 있었다. 델리는 이번에 틴 팬 앨리(Tin Pan Alley)와 새롭게 계약하고 지난 여름 서울스튜디오에서 레코딩을 했다. 서울스튜디오는 1980년대 동아기획 소속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의 대부분의 음반을 레코딩한 유서 깊은 곳으로서 음반사가 소유하고 있지 않은 정식 스튜디오로서는 최초의 스튜디오이기도 하다. 신현준: 자연스럽게 레코딩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게 되었네요. 이번에는 광화문스튜디오(주” 음반사인 뮤직디자인 소유)를 떠나서 이촌동의 서울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는데 뭐가 특히 달랐나요? 윤준호: 재미있었어요. 많이 달랐죠. 특히 시스템 자체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실제(리얼) 악기를 연주하기에 좋은 곳이었어요. 시스템 자체가 연주자에게 가까이 있다고나 할까요. 신현준: 아까 잠시 한 이야기지만 스트링이나 브라스를 넣으면 아무래도 밴드가 콘트롤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 않았나요? 윤준호: 그럴 경우에는 수정해 달라고 요구를 했어요. 레코딩 들어가기 전에 시험적으로 한 번 해보고, 프로그래밍을 해서 이런 느낌으로 해달라고 요구하고 레코딩 당일에도 수정을 했어요. 한 세 번쯤 수정했고 비교적 원만히 이루어졌어요. 신현준: 부클릿에는 문라이즈 스튜디오도 적혀 있던데…이건 뭔가요. 김민규: 문라이즈 스튜디오는 저희 집이고(웃음), 이문기라는 친구가 ‘하우스 엔지니어’에요. 기타, 특히 어쿠스틱 기타와 몇몇 보컬 트랙들은 집에서 많이 작업했어요. 스위트피 작업하다가 그게 익숙해져 버려서…. 신현준: 씨임(Seam)의 박수영에게 감사한다는 메시지도 적혀 있던데… 김민규: 그때 마침 박수영이 직장에서 휴가를 받아 한국에 놀러 왔고 거처도 스튜디오에서 가까운 곳이었어요. 레코딩할 때는 드럼 레코딩할 때 마이킹(micing) 잡아주는 것 등에 조언을 해 주었고, 개별 곡에 대해서 이건 어떤 풍이니까 어떻게 하라든가 등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면서 작업했어요. 더욱 결정적인 것은 미국에 가서 매스터링할 때 장소를 섭외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죠. 신현준: 어쨌든 이번 레코딩은 충분한 자율성을 가지고 했다는 뜻이네요. 김민규: 예, 이번 레코딩은 옛날처럼 정해진 시간 내에 빨리 끝내고 가야되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마음 편하게 했어요. 윤준호: 마음이 편하니까 연주도 금방 OK가 나더군요. 베이스는 이틀만에 다 녹음을 끝냈고 전체 레코딩 시간도 오히려 이전보다 적었어요. 사실 예전에도 레코딩 과정에 대한 간섭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광화문 스튜디오에서는 저희가 레코딩하는 도중에 밖에서 댄스그룹들이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서있던 적도 가끔 있었고 그러다 보니 한참 연주하다가도 중간에 접고 가야 했는데 여기서는 저희가 하고 싶을 때까지 할 수 있었어요. 서울 스튜디오가 요즘은 예전의 영화를 누리고 있지는 못하지만 기계보다는 방이 좋은 것 같아요. 이때 서빙을 하던 언니가 델리를 안다고 그러면서 싸인을 부탁해 왔다. 그러면서 메론 등의 과일도 갖다 주었고, 틀어주던 음악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분위기’에서 ‘스웨이드 분위기’로 바뀌었다. 서빙하는 언니는 “챠우챠우”를 좋아한다고 그랬고, 김민규는 “신곡을 좋아해 주세요”라고 ‘비굴하게’ 말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의 ‘미는 곡’인 “항상 엔진을 켜둘께”에 대해 물어 보았다. 신현준: 사실 저는 이번 앨범에 대해서 좀 걱정을 많이 했어요. ‘비슷한 스타일’이 네 번 정도 반복되어도 계속 반응이 좋을까하고. 사실 델리의 곡, 특히 민규의 곡은 코드 진행이 비슷해서 이런 작곡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계속 신선한 느낌을 주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또 델리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일반 ‘가요 음반’과는 좀 다르게 ‘특별히 뛰어난 곡’이 없다는 것도 한국에서는 불리한 점이죠. 다행히 “항상 엔진을 켜둘께”가 반응이 좋다고 들었는데… 윤준호: 팬클럽 통해 모니터 회의를 했어요. 다섯 곡을 추려서 한번만 압축해서 순위를 매겨서 결정된 것이죠. 김민규: 모 음악사이트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그러던데요. 신현준: 김민규씨 곡으로는 드물게 곡 전반부에는 단조던데 한국에서는 단조 노래가 히트하는 건 지도 모르겠네요(웃음). 김민규: 그것보다는 가사 문제가 더 큰 거 같아요. “챠우챠우”도 그 곡이 연가로 들리는 사람에게 어필했던 것이고, “달려라 자전거”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만약 제 의도대로 “챠우챠우”를 들었다면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을 거예요. “기다릴께 언제라도…” 이런 가사는 저희가 잘 하지 않았던 가사라서, 그런 점이 어필했던 것 같네요. 특히 여성 팬들은 노래하는 사람이 그런 가사를 읊어주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윤준호: 제가 보기에 그건 ‘시대와 맞아떨어진 집단적인 감정의 우연적 발생’ 아닌가 싶어요(이때 나머지 두 사람은 윤준호의 ‘문자 쓰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신현준: “항상 엔진을 켜둘께”는 ‘R.E.M. 클래식’ 같은 느낌이 나던데… 김민규: 예전에 만들어둔 것이라서 그래요. 원래는 다른 노래가 있었고 저 노래는 넣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예정했던 곡이 합주가 잘 안 돼서 빼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문라이즈의 후배인 김동영에게 가사 좀 고쳐 달라고 부탁해서 이 곡이 만들어진 거죠. 원래는 그 노래가 “콘플레이크”였어요. “콘플레이크”에 이 곡조를 붙였던 거죠(웃음). 신현준: 대중음악의 역사를 보면 그렇게 급조된 곡이 히트하는 경우가 많더군요(웃음) 김민규: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 저는 다른 스타일을 해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아요. 작곡 스타일을 갑자기 바꾸기는 힘들고, 다르게 해보려고 노력했는데도 나오는 것은 똑같아요.(웃음). 신현준: 비행기가 그려 있는 앨범 커버는 ‘미는 곡’이 결정된 다음에 만든 모양이네요. 참, 일각에서는 이번 커버가 ‘표절에 가깝다’는 의견이 있던데… 윤준호: 비행기가 들어간 것은 ‘엔진’이라는 단어 때문이죠. 시안 중에 자동차랑 비행기 두 개가 있었는데 비행기가 마음에 들어서 저희가 골랐어요. 디자이너에게는 ‘팝 아트같이 해달라’라고 요구했고, 어차피 ‘팝 아트’라는 게 복제 이미지가 있는 거니까 표절이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어요. 단, 하나만 해명 하자면 표지는 아무리 요구를 한다고 해도 실제로 만드는 사람은 저희가 아니라 디자이너라서 100% 컨트롤할 수가 없어요. 책임 회피라고 할 지는 몰라도 저희 머리 속에 있는 것을 아무리 설명해도 막상 나오는 것은 많이 달라지니까. 앞으로의 활동계획이 궁금해졌다. 사실 지난 3집까지의 활동은 무언가 미진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은 지난 여름 예술의전당 콘서트 후 예정되었던 전국순회공연이 취소되었던 것. 이른바 ‘미디어 커버리지(media coverage)’나 ‘프로모션 투어(promotion tour)’ 같은 개념이 별로 없는 한국이라서 이번에도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에게도 무언가 ‘전범’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몇 가지를 물어 보았다. 신현준: 이번 앨범 발매 이후 가장 하고 싶은 활동은 어떤 건가요? 윤준호: 제일 하고 싶은 건 지방공연이에요. 추진 중인데 아직 잡힌 건 없어요. 특히 델리는 서울과 지방에서의 반응이 많이 다르대요. 저희가 진행을 맡았던 방송도 지방에서는 수신이 되지 않아서 더 그런 것 같아요. 11월 9일부터 3일간 동숭동의 라이브극장에서 공연이 잡혀 있고 크리스마스 같은 때도 이벤트성 공연을 할 지도 모르겠어요. 신현준: 델리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클럽 공연은 이제는 하지 않을 건가요? 윤준호: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데 할 데가 없어졌어요. 피드백도 감자탕집이 되어버리고. 사실 멤버들한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클럽 공연이 대형 공연보다 나을 때도 있어요. 드럭은 펑크, 마스터플랜은 힙합에 전문화한 상태니까 저희는 이제 마땅히 설 클럽 무대가 없는 거죠. 신현준: 이런 상황에서 음악 활동하려는 후배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어떤 게 있을까요? 윤준호: 저희가 잘 한다고 볼 수는 없는데 누구한테 말을 하겠어요. 하지만 저희는 이제 ‘전업’이 되었고 밴드 활동에 전념하고 있어요. 사실 지금 정도면 큰 어려움은 없는데, 계속 하다보면 어려울 때가 오겠죠. 운 좋게 일이 잘 풀리면 그런 문제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주 안정된 건 아니죠. 김민규: 저는 후배들을 보면 일단 좋아요. 조금 부담스러운 건 있지만. 이번에 문라이즈에서 음반을 발매한 전자양 같은 경우는 군대 가면서 선물을 하고 가더라구요. 사실 한 달도 안 돼서 군대 가는 사람 음반을 누가 내 주냐고 다들 말렸지만 음악이 괜찮아서 결국 발매했죠. 군대 가는 날까지 신곡 가져와서 들어보라고 하던 친구였는데… 신현준: 델리와 비슷한 연배의 전업 뮤지션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요? 젊은 사람들이 이런 말 들으면 실망할 지 모르지만, 사실은 밴드하는 것보다는 다른 일하는 게 생계를 해결하는 데는 더 좋을 텐데 말이에요. 윤준호: 저희와는 세계가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모던 록 밴드’ 출신의 뮤지션 한 명 같은 경우는 곡 써주는 일(작곡하는 일)을 전업으로 하고 있어요. 그게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대우받는 급에 오르기도 쉽지는 않죠. 실제로 지금도 밴드를 하는 친구들보다는 작곡가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더 많아요. 그런 친구들이 저희들보다 장비가 훨씬 좋아요. 아직 뜨지 않았더라도 어떻게든 장만해서 준비하고 있더군요. CF 음악, 드라마 음악, 방송음악 같은 거 하면서 수련을 쌓고 있죠. 신현준: 그런 한국의 주류 시스템을 보면 밴드에 전념한다는 것에 다소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을 텐데… 김민규: 저희가 그런 걸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에요. 단지, 편곡도 해주고, 레코딩 세션도 해주고, 공연 뛰어주고 그러다가 결국에는 하고 싶은 것이 사라지는 경우를 보게 되고 그건 좀 아니다 싶은 거죠. 윤준호: 한번은 케이블TV에서 진행을 맡아달라고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는데 이미지가 별로 좋은 것이 아니라서 거절했어요. 가요 프로그램의 VJ를 해달라는 제안이었는데, 델리 스파이스도 못 나오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달라는 건… 신현준: ‘방송에 나가서 세 곡을 연주한다’면 무얼 할 건가요? 김민규: 사실은 “Bette Davis Eyes”가 저희 나름대로는 카피곡으로도 사용하려고 한답시고 한 건데, 노래가 암울하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한국에서는 원곡이랑 똑같이해야 ‘잘 한다’고 그래요(웃음). 신현준: 그 외에 방송 나갈 때 특별히 불편한 건 어떤 건가요? 윤준호: 다른 건 괜찮은데 TV에서 라이브하는 건 말만 라이브 프로그램이지 라이브 느낌을 내기 어렵고 제약이 많아요. 저희가 특히 분위기에 민감해서 그런 건지 편한 분위기가 아니면 어색해요. 나중에 TV 나온 거 보면 우리가 아닌 것 같고… 라디오에서 말을 많이 하는 건 상관없는데 TV에서는 ‘볼거리’를 원하니까 저희가 그런 걸 싫어하니까…. [이소라의 프로포즈] 같은 프로그램도 ‘개인기’를 많이 하는 프로그램은 아닌데도 즉흥 잼을 해달라거나 그런 걸 원하더라구요. 그런 거 못하겠다고 그러면 비협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 뒤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뮤지션 입장에서 mp3에 대한 생각이라든가, 음악을 듣는 경험의 변화라든가, 음악 팬들의 문화라든가 등등에 대해 오후의 석양을 받으면서 ‘늘어진 자세로’ 방담을 나누었다. 겸손하고, 유별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원칙은 확고하게 고수하는 델리의 모습은 그날도 변함없었다. 그래, 뭐 이 정도면 델리는 자기 몫을 다하고 있는 것 같다. ‘음악 소비자에서 출발하여 음악 생산자가 되는’ 길을 개척했다는 의미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지만 쉽게 무시할 것도 아니다. ‘한국’이라는 곳에서는 더욱… 팬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면서 팬들의 일상적 감정을 표현하는 밴드로 남기를 바라면서 델리와의 긴 인터뷰를 마친다. 20010929 | 신현준 homey@orgio.net 관련 글 델리 스파이스 [Deli Spice] 리뷰 – vol.2/no.23 [20001201] 델리 스파이스 [Welcome to the Delihouse] 리뷰 – vol.1/no.1 [19990816] 델리 스파이스 [슬프지만 진실…] 리뷰 – vol.2/no.6 [20000316] 델리 스파이스 [D] 리뷰 – vol.3/no.19 [20011001] 스위트피 [결코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 리뷰 – vol.2/no.18 [20000916] Welcome To the Delihouse: 델리 스파이스 인터뷰 – vol.1/no.1 [19990816] 관련 사이트 델리 스파이스 공식 사이트 http://www.delispic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