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mones – Ramones -Warner Archives/Rhino, 1976/2001 간결의 미학은 시대를 초월한다 레이먼즈(Ramones, ‘라몬즈’ 또는 ‘라모네즈’라고 발음 하기도 한다)의 ‘역사적’ 데뷔 앨범 [Ramones](1976). 25년이 지난 현재 다시 들어보아도, 여전히 흥미로우며 심지어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러한 ‘충격’의 근원지는 단연 ‘미니멀리즘(minimalism)’으로 똘똘 뭉친 이들의 태도이다. 수록곡 전부가 1-2분대인 앨범 구성이며, 노래 자체도 최소한의 기본 구성으로 일관한다. 화려한 기타 솔로도 없고(‘솔로’라 할 수 있을 만한 연주가 “Listen To My Heart”와 “I Don’t Wanna Walk Around You”에서 등장하기는 하지만, 한 두 음을 길게 늘어뜨리는 식의 연주가 고작이다), 노랫말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결하다(가사 한 구절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게 대부분). 이제는 너무나 뻔한 상투구가 되어버렸지만, 이러한 ‘미니멀리즘’의 정신이 기존 ‘공룡 록’에 대한 치명적인 ‘안티 테제’로 작용하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레이먼즈가 견지한 철두철미 매사에 간결하려는 정신 및 태도는 ‘펑크’라는 시대 정신에 직접적인 신호탄이자 도화선이 되었고, 특히 영국 펑크 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 1970년대 중후반 거대한 ‘펑크 혁명’이 일어나는 데 일조했다. 이 앨범이 갖는 역사적인 중요성은 너무나 많이 강조되어 이젠 진부할 것이니, 여기서는 주목할 만한 세 가지 특징을 나열하는 데 그치고자 한다. 첫 번째, 이들이 구사하는 사운드를 자세히 들어보면, 디 디 레이먼(Dee Dee Ramone)의 베이스 기타 연주가 유난히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1980년대 이후 모던 록 분야에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베이스 중심의 ‘펑키’ 사운드를 예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두 번째, 이 앨범에서 펼쳐지는 강경 로큰롤 노선이라는 게, 사실 1950년대와 1960년대를 풍미했던 ‘순수한’ 팝 음악에 대한 오마주라는 것이다. 기존의 록 보컬 방식과는 철저히 다른 조이 레이먼(Joey Ramone)의 창법과 건조한 기타와 소란스러운 심벌 연주로 가려져서 그렇지, 잘 들어보면 이들의 멜로디 감각으 매우 또렷하다. 여기서 느낄 수 있듯, 이들이 직접적으로 그리워하고 재현해내려는 음악은 로네츠(The Ronettes)로 대표되는 위대한 프로듀서 필 스펙터(Phil Spector) 사단의 사운드이다. 이러한 ‘오마주’는 특히 “I Wanna Be Your Boyfriend”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또한 1962년 히트한 크리스 몬테즈(Chris Montez) “Let’s Dance” 커버 또한 레이먼즈의 지향점을 파악하는 데 놓쳐서는 안될 증거다). 사실 스튜디오 공간에 가능한 많은 악기를 배치하여 ‘사운드의 벽(Wall Of Sound)’을 구축하려는 필 스펙터의 의도와, 최소한의 악기와 연주로 단순명쾌함을 과시하려는 듯한 레이먼즈의 태도는 언뜻 보아 서로 극과 극을 달림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레이먼즈가 몇 안 되는 악기로 창조해내는 둔탁하고 겹겹이 싸여있는 듯한 일렉트릭 사운드는, 필 스펙터의 사운드의 벽과 궤를 같이한다. 그래서일까? 이후 그들은 필 스펙터와 조우하여 [End Of The Century](1980) 앨범을 함께 만들기도 한다. 세 번째는 이 앨범의 노랫말이 지닌 특이함이다. 이들의 노랫말에는 어떠한 메시지도, 심지어는 내용조차 없다. 다소 정치적인 함의를 지닌 곡들도 있지만(FBI의 대 쿠바 정책을 희화화한 “Havana Affair”나 나치즘을 풍자한 “Today Your Love, Tomorrow The World” 등), 대부분은 ‘개념 없는’ 가사들일 뿐이다. “양아치가 뒤에서 시비를 거니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패자”(“Beat On The Brat”, 그래서인지 레이먼즈의 로고는 한 손엔 야구 방망이를, 다른 한 손엔 월계수 가지를 든 독수리다), “당신의 남자 친구가 되고 싶어요. 날 사랑해요? 뭐라고 말하나요? 뭐라고 말할까요?”(“I Wanna Be Your Boyfriend”), “본드 냄새 맡고 싶어. 모든 애들이 다 그래”(“Now I Wanna Be Sniff Some Glue”), “목소리 참 크군. 입 닥치고 있어. 안 그러면 패 줄거야”(“Loudmouth”) 등이 그 명징한 예다. 당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The Texas Chain Saw Massacre)](1974)의 여파 탓인지, 호러 무비적 설정의 “Chain Saw”와 “I Don’t Wanna Go Down To The Basement”도 있다. 이들 가사의 대부분은 어떠한 상황 안에서 화자(話者)의 심경이나 언행이 맛보기로 조금씩만 드러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구절절 상황에 대한 묘사나 행동을 늘어놓지 않고, 아주 간결한 한 두 문장으로 내용 전체를 파악하게 만드는 상상력 풍부한 미니멀리즘적 특성이 놀랍도록 뛰어나게 구현되는 것이다. 즉 단순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노랫말 속에 숨겨진, 레이먼즈의 고도로 지적인 전략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토록 단순 간결한 세계를 창조해 내고 록의 역사마저 서서히, 그러나 여운 길게 뒤흔들었던 레이먼즈. 철두철미하게 미니멀리즘의 정신을 견지한 이들을 설명하는데 있어, 있는 말 없는 말 장황하게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짓은 일종의 모독 행위가 될 것이다. 이들의 정신을 기리며, 되도록 이 글 또한 짧고 간결하게 쓰려 신경을 썼다. 끝으로, 지금은 천국에서 “로큰롤 고등학교(Rock’n’Roll High School)”에 역사 선생님으로 새로 부임하여 내일의 새싹들을 길러내느라 여념이 없을 게 틀림없을 ‘펑크 록의 아브라함 링컨’ 조이 레이먼에게 추모의 마음을 바친다. 당신은 정말 위대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단순 명쾌’의 경지인 것을 몸소 깨우쳐 주신 당신. 20010925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10/10 수록곡 1. Blitzkrieg Bop 2. Beat On The Brat 3. Judy Is A Punk 4. I Wanna Be Your Boyfriend 5. Chain Saw 6. Now I Wanna Sniff Some Glue 7. I Don’t Wanna Go Down To The Basement 8. Loudmouth 9. Havana Affair 10. Listen To My Heart 11. 53rd And 3rd 12. Let’s Dance 13. I Don’t Wanna Walk Around With You 14. Today Your Love Tomorrow The World 15. I Wanna Be Your Boyfriend – (demo) 16. Judy Is A Punk – (demo) 17. I Don’t Care – (previously unreleased, demo) 18. I Can’t Be 19. Now I Wanna Sniff Some Glue – (previously unreleased, demo) 20. I Don’t Wanna Be Learned/I Don’t Wanna Be Tamed – (demo) 21. You Should Never Have Opened That Door – (previously unreleased, demo) 22. Blitzkrieg Bop – (single version) 관련 글 왜 지금 펑크인가 – vol.3/no.19 [20011001] 펑크 25년: 1976 – 2001 (1) – vol.3/no.19 [20011001] Punk Diary – vol.3/no.19 [20011001] Television [Marquee Moon] 리뷰 – vol.3/no.19 [20011001] Sex Pistols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리뷰 – vol.3/no.19 [20011001] Wire [Pink Flag] 리뷰 – vol.3/no.19 [20011001] The Clash [The Clash] 리뷰 – vol.3/no.19 [20011001] Gang Of Four [Entertainment!] 리뷰 – vol.3/no.19 [20011001] Buzzcocks [Singles Going Steady] 리뷰 – vol.3/no.19 [20011001] Slits [Cut] 리뷰 – vol.3/no.19 [20011001] 관련 사이트 Ramones 공식 사이트 http://www.officialramon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