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930111625-television_marqueeTelevision – Marquee Moon – Elektra, 1977

 

 

‘실험적 기타 록’의 영원한 고향

[Marquee Moon]은 오늘날 펑크 록을 대표하는 불멸의 걸작 중 하나로 추앙받는 앨범이다. 이 앨범은 1977년, 당시 패티 스미쓰(Patti Smith), 레이먼즈(Ramones), 블론디(Blondie), 토킹 헤즈(Talking Heads)와 더불어 뉴욕 언더그라운드를 대표하는 ‘CBGB’s 클럽 5인방’ 중 하나였던 텔레비전(Television)의 첫 번째 앨범이다(영미 펑크 록의 명작들 대부분이 첫 번째 앨범임에 유의).

그런데 과연 [Marquee Moon]을 ‘펑크’ 앨범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앨범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펑크 록적 요소들이 전혀 없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우선 수록곡 전부가 3분을 훌쩍 넘어간다. 심지어 “Marquee Moon”은 10분 대의 대곡이며, “Torn Curtain”은 7분 짜리 노래다. 상황이 이러하니, ‘쓰리 코드’의 미학 또한 존재할 리 없다. 본래 펑크의 기본 정신이 기존 록 음악에 넘쳐나던 기교의 과잉을 타파하자는 반작용일진데, 텔레비전의 노래에는 오히려 예측 불허의 즉흥 연주가 판을 치고 있다(특히 “Friction”과 “Marquee Moon”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연주는, 그냥 입이 딱 벌어지게 한다). 간단히 말해, 트윈 리드 기타의 거장(virtuoso)적인 ‘곡예’가 앨범 전체를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노랫말 또한 전혀 ‘펑크적’이지 않다. 한때 연인 관계였던 패티 스미쓰와 공동 시집을 발간한 탐 벌레인(Tom Verlaine)의 경력에서도 알 수 있듯, 텔레비전의 노랫말엔 도무지 정확한 의미를 풀 길 없는 상징주의와 표현주의가 뒤엉킨 ‘난해시’의 요소로 가득하다(본명이 탐 밀러(Tom Miller)인 벌레인은, 자신의 예명을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느(Paul Verlaine)에서 따왔다). 그래서일까. 탐 벌레인의 보컬도 정통적인 록 창법에서 탈피, 마치 시를 ‘낭독(Spokenword)’하는 듯한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반항과 거역의 정신 대신, 텔레비전의 세계에는 이유 모를, 끝간 데 없는 허무주의의 정서가 진하게 스며있다. 이러한 슬픔의 정서는 특히 “Elevation”이나 “Torn Curtain” 등, 앨범 후반부에서 두드러진다. 물론, 영국의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에게서도 ‘허무주의’의 강한 발산을 발견할 수 있으나, 텔레비전의 그것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즉 섹스 피스톨스의 ‘허무’는 “베를린 장벽과도 같은” 완고한 세상과의 불화로 인해, 스스로 산화하고자 하는 ‘분노’를 머금고 있지만, 텔레비전이 풍기는 허무감은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자기 연민, 니힐리즘, 자기 도취가 엉겨 붙은 ‘유미주의’의 산물인 것이다. 슬픔의 향취로 가득 찬 아름다움의 추구만이 유일한 목적인 것. 또한 악명 높은 언더그라운드 사진 작가 로버트 매플쏘프(Robert Mapplethorpe)가 작업한 커버 사진도 어딘지 ‘예술적’ 기운이 짙게 서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반(反) 펑크’적 요소로 가득한 [Marquee Moon]을 오히려 펑크 록의 ‘고전’으로 아무런 이의 없이 자리 매김할 수 있는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 근거는 이미 위에서 열거한 텔레비전의 특징들에 이미 암시되어 있다. 즉, 전혀 ‘펑크적’인 특성이라 볼 수 없을 것 같은 그 요소들이, 사실은 ‘펑크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

텔레비전은 [Marquee Moon]을 통해 기존 록 음악이 결코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고 있다. 즉 남녀상열지사나 직선적인 구호로 가득 찬 기존 록의 상투적 발상 대신 문학적 향취를 도입하고, ‘원죄’처럼 떠 안아 오던 블루스의 요소를 과감하게 제거하고, 재즈에서나 대할 수 있었던 끝간 데 없는 즉흥 연주를 자유롭게 구사했다. 이는 당시 상황을 볼 때 엄청난 파격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즉흥 연주가 텔레비전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아메리칸 록 계에서 그다지 생소한 분야는 아니었다. 이미 서부의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나 남부의 올맨 브라더스 밴드(The Allman Brothers Band)가 즉흥 연주의 황홀경을 선보인 바 있다. 그렇지만 동부의 텔레비전이 펼친 즉흥 연주는, 그레이트풀 데드처럼 ‘환각적’이지도, 올맨 브라더스 밴드처럼 ‘토속적’이지도 않다. 그들의 즉흥 연주는 차갑지만 우아하며, 마치 우주 공간을 빠른 속도로 솟구쳐 올랐다가 갑자기 아래로 낙하하는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무한대의 영역을 부유하는 듯한 느낌의 연주가 단지 네 명의 손에서 스튜디오 장비의 조작 없이 ‘날 것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탐 벌레인의 비브라토 심한 사색적인 기타, 리처드 로이드(Richard Lloyd)의 호쾌하고 박력있는 기타, 놀랍도록 단단하고 안정된 프레드 스미쓰(Fred Smith)의 베이스 기타, 빌리 피카(Billy Ficca)의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무쌍한 드럼 연주는, 텔레비전을 명백히 ‘무엇인가 새로운’ 록 음악을 구사하는 밴드로 보이게 한다(오리지널 베이시스트였던 리처드 헬(Richard Hell)은 펑크 씬의 ‘스타일’을 확립시킨 업적(그 유명한 ‘안전핀 패션’은 그가 고안해낸 것이다)에도 불구하고, 다소 불안한 연주 실력과 악기에 몰입하기보다는 스타일에 더욱 예민하게 치중하는 태도로, 결국 밴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기존 록 음악의 범주를 벗어나는 요소로 충만함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Marquee Moon]을 ‘록 앨범’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이 앨범의 프로듀서인 앤디 존스(Andy Johns)의 공로다. 당시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엔지니어로 명성을 떨치던 영국인 앤디 존스는, 역사 상 기타 음을 가장 잘 뽑아내는 프로듀서 중 하나라는 평판에 걸맞게, [Marquee Moon]을 실험적 요소로 가득하면서도 일렉트릭 기타의 아름다움이 제대로 살아 숨쉬는 작품으로 가다듬었다. 만약 텔레비전이 자신들의 첫 번째 데모의 프로듀서였던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Marquee Moon]을 만들었다면, 이렇듯 강렬한 ‘기타 록’ 앨범으로까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Marquee Moon]은 펑크 앨범으로 분류되지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안티 록’적인 요소들로 인해, 1980년대의 노 웨이브(no wave)와 1990년대 포스트 록(post rock)의 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즉 온갖 실험이 난무하되 그 실험의 중심 도구는 기타라는 것, 그리고 록의 기본적 요소와는 한참 거리가 먼 음악을 구사하면서도 결국은 록의 거대한 범주 안에 예속되는 것. 오늘날 익스피리먼틀 록(experimental rock)이라 불리는 특성들이 대부분 이미 [Marquee Moon] 안에서 움트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Marquee Moon]은 단순히 1970년대 뉴욕 펑크를 상징하는 앨범이 아니라, 시대를 가로지르는 진정 위대한 작품으로 자리 매김해야 마땅하다. 20010925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10/10

수록곡
1. See No Evil
2. Venus
3. Friction
4. Marquee Moon
5. Elevation
6. Guiding Light
7. Prove It
8. Torn Cur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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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Tom Verlaine과 Television에 관한 사이트
http://www.marquee.demon.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