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930111332-sexpistols_nevermindSex Pistols –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 Virgin, 1977

 

 

시작이고 끝이며 다시 시작인 앨범

솔직히 말하자면,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1975년 8월 결성 당시부터 1978년 1월 해산하는 순간까지 이들의 행보는 ‘만행’과 ‘업적’의 갈래 길에서 온갖 미디어와 논문들에 의해 이미 해석되었거나 아직도 설명 중이다. 하다못해 월드와이드웹에서 ‘sex pistols’라는 검색어로 찾을 수 있는 웹사이트(혹은 웹 문서)는 수천을 상회한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너바나(Nirvana)와 그린 데이(Green Day), 혹은 삐삐밴드와 크라잉 넛, 노 브레인 덕택인지, 한국에 본격적으로 펑크 앨범들이 ‘상륙’했고, (대부분 드럭(밴드)의 영향이었겠지만)펑크 키드가 되고자 마음먹은 이 땅의 소년, 소녀들과 그들의 ‘이상행동’을 추적하던 미디어에 의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에는 드디어(?) 섹스 피스톨스 헌정(tribute) 음반도 만들어졌지 않은가.

바로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이 섹스 피스톨스에 대해 ‘다시’,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지 헷갈리게 만든다. 1975년 11월 6일, 세인트 마틴 예술학교(St. Martin School of Art)에서의 ‘역사적인’ 섹스 피스톨스의 첫 공연으로부터 1976년 9월 20, 21일 100클럽에서의 ‘브리티쉬 펑크 록 페스티발'(100클럽 대폭발)까지 런던 펑크의 역사에서 섹스 피스톨스가 얼마나 중요한 ‘펑크 밴드’인지를 다시 진술할까? 그들이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로 대표되는 ‘스타 록 밴드’)를 비난함으로서 록 담론을 해체(혹은 탈신비화)하려 했던 ‘운동권’이었다고 주장할까? 아니면 (분명 한국 펑크의 여파덕분에 번역되기도 한) 기 드보르(Guy Debord)가 정리한 상황주의(Situationism)와 함께 이데올로기로서의 펑크(음악)에 대해 진술할까? 혹은 섹스 피스톨스의 매니저였던 맬컴 매클래런(Malcolm McLaren)의 ‘위대한 사기극’에 대해서, 멤버였던 시드 비셔스(Sid Vicious)와 그의 연인이었던 낸시 스펀겐(Nancy Spungen)의 비극적 죽음에 대해서 주석을 더할까? 아니면, 1978년부터 1992년까지 자신의 밴드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imited)를 통해 레게, 덥, 사이키델릭 등 다양한 ‘장르적 접근’을 선보였고 1996년에는 ‘재결합 선언’까지 한 존 라이든(John Lydon)의 행보에 대해서 얘기할까? 물론 이러한 시간 흐름에 따른 진술이 정작 이들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 스튜디오 앨범이 된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가 모든 것의 ‘시작이고 끝이며 다시 시작’을 상징한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사운드’를 통해 전달된다. 크라잉 넛의 “말달리자”의 도입부와 똑같은 구성으로 귀에 익숙한(물론 그 반대의 경우일수도 있지만), ‘어설픈’ 기타 스크래칭과 드러밍으로 시작하는 “Holidays In The Sun”을 선두로 그 유명한 “God Save The Queen”, “Anarchy In The U.K.”, 그리고 “EMI”까지 소위 쓰리 코드(three chords)주의로 ‘재현’된 ‘네 스스로 해라'(Do It Yourself)의 선동적 제스처가 고막을 울린다. 하지만 정작 앨범의 곡들을 들어보면 이들의 연주가 형편없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단순함에서 기인하는 헤비한 리프와 강한 드럼 비트는 8비트 록 음악’처럼’ 들리는 “No Feelings”나 “God Save The Queen”, “Seventeen”에, 사이키델릭 록(을 야유하는 것)’처럼’ 들리는 “Sub Mission”과 흥겨운 기타 록인 “Pretty Vacant”에 면면이 녹아있다.

결국 앨범 전체적으로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있는 ‘노래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얘긴데, 이렇게 느끼는 되는 까닭은 아마도 지금이 1977년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사운드의 현재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록 담론에 대한 사운드로서의 저항’으로 보든지 ‘대중음악(사운드)에서의 저항’도 결국 파퓰러한 감수성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아이러니로 보든지 결국엔 듣는 자의 몫이겠지만, 어떤 판단이든지 24년 묵은 앨범 한 장이 아직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 음반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사운드의 힘’에 대해서일 것이다. 역사적 명반이란 그 당시 시대 정신의 요구에 대한 ‘대답’일 테지만, 정작 (그들이 아닌)우리로서는 그 힘이 ‘여기’에서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역사적인 명반이라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그 대답은 현재 한국대중음악계(의 모습)로부터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20010927 | 차우진 djcat@orgio.net

10/10

수록곡
1 Holidays In The Sun
2 Bodies
3 No feelings
4 Liar
5 God Save The Queen
6 Problems
7 Seventeen
8 Anarchy In The U.K.
9 Sub Mission
10 Pretty Vacant
11 New York
12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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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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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expistol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