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re – Pink Flag – Harvest, 1977 미니멀리즘 미학으로 꽃피운 펑크 초기 런던 펑크 밴드들 가운데 펑크의 이디엄을(혹은 이에 맞서) 가장 높은 창조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밴드 중 하나로 와이어(The Wire)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창조적 차원이라? 펑크가 비대해진 프로그레시브 록과 하드 록에 반기를 든 운동인 한, 복잡한 화성이나 음향적 실험, 또는 스튜디오 작업에 비중을 둔 것은 분명 아니었다. 대신 이들은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나 일군의 크라우트록(Krautrock) 밴드들이 시도했던 미니멀리즘 미학에 관심을 가졌다. 일찍이 “최소의 것이 최대의 것”이라는 모토 하에 단순한 모티브를 미묘한 변주와 더불어 반복하던 방법론이 훗날 영국의 펑크 밴드들에게 새로운 음악적 돌파구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미니멀한 접근은 ‘쓰리 코드’ 화성과 거친 질감의 사운드, 장식을 배제한 간결한 구성과 더불어 펑크의 보편적인 스타일로 정착해갔지만, 그 누구도 와이어만큼 이에 충실하지는 못했다. 와이어는 1976년 예술학교 출신인 콜린 뉴먼(Colin Newman, 보컬/기타), 브루스 길버트(Bruce Gilbert, 기타), 그레이엄 루이스(Graham Lewis, 베이스/보컬), 로버트 고토베드(Robert Gotobed, 드럼)의 라인업으로 출발했다. 이들의 이력을 따라가 보면 한가지 특징적인 면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자신들을 ‘의식적으로’ 로큰롤 밴드의 전통이 아닌 예술적 실험의 전통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그레일 마커스(Greil Marcus)는 이들에 대해 ‘펑크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는 이들의 기념비적인 데뷔작 [Pink Flag]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 곡 “Reuters”는 와이어의 모든 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출발부터 고집스럽게 한 음을 반복하면서 시작하는데, 최소의 음정과 코드만 가지고 실로 놀라운 효과를 이끌어낸다. 별다른 변화 없이 반복되는 악기 소리만으로 긴장감을 창출하고 있는 이 곡은 마치 앨범 표지의 깃발(미니멀리즘 미학과 고독한 혁신자의 이미지를 동시에 표상하는 것 같은)을 음악으로 형상화해 놓은 듯하다. 30초가 채 못되는 “Field Day For The Sundays”를 지나면 이들의 대표곡 중 하나인 “Three Girl Rhumba”를 만나게 된다. 일래스티카(Elastica)의 “Connection”의 표절(뒤늦게 해결되긴 했지만)로 유명해진 곡이기도 한데, 단순한 리프 하나와 두 소절로 순식간에 곡이 끝난다. 앨범 중간에는 1분 남짓한 곡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그 사이로 비교적 곡다운 길이를 가진”Pink Flag”와 “Strange”가 자리한다. 예의 둥둥거리는 베이스와 디스토션 걸린 기타로 시작하는 “Pink Flag”는 정치적인 가사와 더불어 중반부에 하드코어 펑크를 예시하는 대목이 있다. 음산하고 자해적인 기운이 넘치는 곡이다. R.E.M.의 커버로도 알려진 “Strange”는 매력적인 리프와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가사, 여기에 효과음이 연출하는 극적 효과 등으로 앨범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렇듯 무거운 분위기의 곡들이 앨범을 지배하지만, 후반부에는 “Fragile”, “Mannequin”, “Feeling Called Love” 등 제법 흥얼거릴 만한 선율의 곡이 이어지면서 앨범의 균형을 다소나마 잡아준다. 이 가운데 흥겨운 하모니와 그루브 넘치는 베이스의 “Mannequin”은 이들의 최초의 싱글로 발매되었던 곡이다. 지금은 이 앨범이 어엿한 펑크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앞서 이들의 이력에서도 드러나듯, 당시에는 당대 펑크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자 대안이기도 했다. 비슷한 이유에서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ME)]는 이들이 적절한 시기에 그곳 런던에 있었을 뿐이라고 적었다. 그만큼 이 앨범에 담긴 사운드와 태도는 펑크이면서 동시에 펑크가 아닌 무엇을 향하고 있었다. 밴드 멤버의 연령층이 다른 밴드들에 비해 높았다거나(그레이엄 루이스는 1946년 생으로 앨범 발매 당시 이미 서른을 넘긴 나이였다), 펑크가 적으로 삼았던 예술학교 출신이었다는 점, 또 이들이 계약한 음반사(Harvest)가 프로그레시브 록 계열의 밴드들로 유명한 회사였다는 점 등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밴드 스스로 펑크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했고, 이것은 이어지는 앨범 [Chairs Missing]과 [154]에서 음향, 텍스처, 편곡 등이 조심스럽게 복잡해지는 경향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런 면에서 [Pink Flag]는 이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절제의 미학과 긴장감이 가장 응축되어 있는 앨범이며, 동시에 당시 펑크가 보여줄 수 있었던 가장 특징적인 모습 가운데 하나다. 20010927 | 장호연 bubbler@naver.com 10/10 수록곡 1. Reuters 2. Field Day For The Sundays 3. Three Girl Rhumba 4. Ex Lion Tamer 5. Lowdown 6. Start To Move 7. Brazil 8. It’s So Obvious 9. Surgeon’s Girl 10. Pink Flag 11. The Commercial 12. Straight Line 13. 106 Beats That 14. Mr. Suit 15. Strange 16. Fragile 17. Mannequin 18. Different To Me 19. Champs 20. Feeling Called Love 21. 12XU 22. Options R 관련 글 왜 지금 펑크인가 – vol.3/no.19 [20011001] 펑크 25년: 1976 – 2001 (1) – vol.3/no.19 [20011001] Punk Diary – vol.3/no.19 [20011001] Ramones [Ramones] 리뷰 – vol.3/no.19 [20011001] Television [Marquee Moon] 리뷰 – vol.3/no.19 [20011001] Sex Pistols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리뷰 – vol.3/no.19 [20011001] The Clash [The Clash] 리뷰 – vol.3/no.19 [20011001] Gang Of Four [Entertainment!] 리뷰 – vol.3/no.19 [20011001] Buzzcocks [Singles Going Steady] 리뷰 – vol.3/no.19 [20011001] Slits [Cut] 리뷰 – vol.3/no.19 [20011001] 관련 사이트 The Wire Page http://www.contrib.andrew.cmu.edu/~qwerty/w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