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 Of Four – Entertainment! – Infinite Zero, 1979 ‘아방가르드 아마추어’의 로제타 스톤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영향력있는(unpopular but influential)’이라는 표현은 찬사일까 비난일까. 적어도 이 음반에 대해서는 찬사일 듯하다. 잉글랜드 북중부의 리즈(Leeds) 출신의 ‘4인방’을 (사이먼 프리쓰를 따라) ‘펑크 뱅가드’라고 부르든, (사이먼 레이놀스를 따라) ‘포스트펑크 아방가르드’라고 부르든, 척 에디를 따라 ‘아방(가르드) 훵크’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이들은 ‘아방가르드’가 음악적으로 훈련받은 사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었고, 그와 동시에 ‘아마추어’라고 해서 원초적이고 자연발생적일 필요가 없음도 몸소 보여주었다. 갱 오브 포(Gang Of Four)의 기타연주자 앤디 질(Andy Gill)은 “현실을 다시 묘사하고 로큰롤을 다시 묘사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이들이 경력을 시작한 시점이 로큰롤의 역사를 ‘작파’하려고 했던 섹스 피스톨스의 전략이 무위로 돌아간 다음이라는 점과 긴밀히 관련된다.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아나키를 선동했던 ‘펑크 1세대’와 달리 명료하게 정식화된 급진정치의 메시지를 담아 냈다는 점을 이들의 선구적 공로들로 포함시키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역사는 위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냐”라는 ‘수정주의 사관’을 담은 “Not Great Men”, “게릴라전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라고 고함을 지르는 매스 미디어 비판인 “5.45”, 성과 사랑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담은 “Anthrax” 등등이 그렇다. 그렇지만 펑크의 공격성과 선동적 가사를 결합한 공적이 이들만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공적은 음악적 요소들 가운데 주관적 감정과 가장 거리가 멀다고 간주되는 리듬의 운용에서 드러난다. 이들의 리듬은 ‘훵크(funk)’라고 말할 수 있지만, 훵크 특유의 코드인 ‘뜨거운(hot)’ 분위기와 거리가 멀 뿐더러 수록곡들마다 리듬의 패턴이 상이하다. 즉, 기타와 베이스는 숙달된 훵크 세션 연주자들의 패턴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마치 악기를 학대하듯이 생톤으로 벅벅 긁어대는 기타, 툭툭 내뱉는 듯한 베이스, 무표정하게 퍽퍽 두들겨대는 드럼이 결합되어 만들어내는 리듬은 ‘급진적 댄스 음악’이라는 본인들의 표현이 무엇인지 감을 잡게 해준다. 예를 들어 “Not Great Men”, “Contract” 등의 경우 처음에는 기타가 테마 리듬을 연주하다가 점점 그 테마에 변주가 가해진다. 변주는 때로는 복잡한 형식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잔 리듬을 빼고 간소화되기도 하고, 새로운 리듬을 중간에 끼워 넣기도 한다. 결과는 얼핏 듣기에 무절제하게 아무렇게나 연주하는 것 같으면서도 딱딱 들어맞는 리듬이다. 물론 “I Found That Essence Rare”, “Natural’s Not In It” 같은 쓰리 코드로 밀어붙이는 것에 가까운 트랙도 있고, “At Home He’s A Tourist”처럼 디스코 풍의 댄스 리듬이 들어 있는 트랙도 있고, “5.45”처럼 관습적 록 음악의 리듬 패턴 위에 난데없는 아코디온 소리가 나오는 트랙도 있고, “Anthrax”처럼 피드백이 난무하면서 노이즈델리아(noisedelia)를 만들어내는 마지막 트랙도 있다. 이들 모든 트랙들은 때로 장난스럽게 들리기도 하지만 ‘장난이 아닌’ 실험이다. 능숙한(=닳아빠진) 프로페셔널 록 밴드도, ‘연주 못하기(anti-playing)’을 고수하는 아마추어 펑크 밴드도 이런 실험과는 거리가 있다. 그 점에서 앤디 질의 기타 주법이 “오른손의 기계적 왕복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펑크나 왼손가락의 곡예에 목숨을 걸던 헤비 메탈과 상이한 방향을 제시했다”(신현준 외, [얼트 문화와 록 음악 1], p. 228)는 평은 이제는 진부하기조차 하다. 건조한 톤으로 고함치는 존 킹(Jon King)의 보컬에 대해 ‘무감정해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강렬한 감정을 담은 것으로 들린다’는 평도 마찬가지다. 20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원초적 반항과 계산된 전략이 성공적으로 접속된 드문 텍스트’라는 평이다. ‘먹물’이 만든 작위적 음악일 뿐 대중이 외면한 음악에 대해 아직도 난리 떠느냐고? 그렇지만 이들은 단지 ‘평론가의 연인(darling of critics)’에 머물지 않고 후대의 뮤지션들에게 깊고 넓은 영향력을 미쳤다. 이런 말은 재발매된 CD(1995)의 라이너 노트에 플리(Flea: Red Hot Chili Peppers)와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 R.E.M.) 같은 거물들이 경의를 표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직도 비타협적인 펑크의 정치학을 고수하는 푸가지(Fugazi)부터 ‘뚜쟁이 하드코어’로 군림했던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쉰(Rage Against The Machine)에 이르기까지 갱 오브 포의 영향력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이런 탁월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밴드 스스로는 단명했고, 1990년대의 컴백도 성공적이지 않았다. 아마도 펑크는 중요한 ‘모멘트’로 남아 있어야 ‘영원한’ 가치를 갖는가보다. 인용으로 마치자. “섹스 피스톨스가 1970년대 후반 펑크의 미학자였다면, 그리고 클래쉬가 펑크의 가장 헌신적인 대표자였다면, 갱 오브 포는 펑크의 가장 급진적인 이론가였다”(아나키스트 웹진 [Noteboard], http://www.notbored.org/gang.html) 20010927 | 신현준 homey@orgio.net 10/10 수록곡 1. Ether 2. Natural’s Not In It 3. Not Great Men 4. Damaged Goods 5. Return The Gift 6. Guns Before Butter 7. I Found That Essence Rare 8. Glass 9. Contract 10. At Home He’s A Tourist 11. 5.45 12. Anthrax (이하는 CD에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된 [Yellow] EP) 13. Outside the Trains Don’t Run On Time 14. He’d Send In The Army 15. It’s Her Factory 16. Armalite Rifle 관련 글 왜 지금 펑크인가 – vol.3/no.19 [20011001] 펑크 25년: 1976 – 2001 (1) – vol.3/no.19 [20011001] Punk Diary – vol.3/no.19 [20011001] Ramones [Ramones] 리뷰 – vol.3/no.19 [20011001] Television [Marquee Moon] 리뷰 – vol.3/no.19 [20011001] Sex Pistols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리뷰 – vol.3/no.19 [20011001] Wire [Pink Flag] 리뷰 – vol.3/no.19 [20011001] The Clash [The Clash] 리뷰 – vol.3/no.19 [20011001] Buzzcocks [Singles Going Steady] 리뷰 – vol.3/no.19 [20011001] Slits [Cut] 리뷰 – vol.3/no.19 [20011001] 관련 사이트 Gang Of Four 사이트 http://www.emdac.demon.co.uk/phil/gof/gof_ind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