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930105648-buzzcocks_singlesBuzzcocks – Singles Going Steady – IRS, 1979

 

 

펑크 팝의 출발점이자 편집 앨범의 모범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의 위대한 점이라면, 그들이 남긴 레코딩을 제외하더라도 그들의 공연을 본 수많은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기타와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밴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마치 10년 전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데뷔 앨범을 구입한 모든 이들이 밴드를 시작했다는 록계의 유명한 후문처럼 말이다.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ME)]에 실린 섹스 피스톨스의 라이브 리뷰 기사를 읽고 런던으로 달려간 피트 셸리(Pete Shelly, 기타/보컬)와 하워드 드보토(Howard Devoto, 보컬/기타) 역시 그렇게 해서 밴드를 시작하게 된 경우다. 또한 이것은 잉글랜드 북부의 산업도시 맨체스터에도 펑크가 꽃을 피우게 된 출발점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버즈콕스(The Buzzcocks)의 음악은 런던 펑크의 정치성을 사춘기 정서로 슬쩍 바꿔치기하고 팝적 선율로 넘실대는 3분 팝송의 미학을 구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허스커 듀(Husker Du)(물론 펑크 팝 ‘이상’이지만), 그린 데이(Green Day), 슈퍼그래스(Supergrass) 등 수많은 펑크 팝 밴드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리적으로는 폴(The Fall)과 더불어 이어지는 많은 로컬 인디 밴드들에게 길을 터줌으로써 맨체스터를 영국 록 음악의 중요한 도시들 중 하나로 만들었다. 지금은 이미 록 음악의 역사서를 들추면 항상 나오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얘기들이다.

1979년 발표된 [Singles Going Steady]는 미국에 소개된 이들의 최초의 앨범으로, 그 제목에서 보듯이 이때까지 발표한 이들의 주요 싱글들을 담고 있다. 첫 싱글이자 앨범에서 드보토가 참여한 유일한 곡인 “Orgasm Addict”로 시작하여 첫 번째 히트곡인 “What Do I Get?”을 지나 이들의 가장 유명한 곡인 “Ever Fallen In Love?”까지 줄달음쳐 오면 마치 한 곡을 반복해 듣는 듯 일관된 특징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둥둥거리는 베이스, 징징대는 기타, 신나게 두들겨대는 드럼, 시큰둥한 보컬, 이런 펑크의 공식 위로 실려오는 친화력 강한 멜로디는 언제 들어도 유쾌하다. 가사는 앞서 말한 대로 사춘기의 사랑, 고독, 상념 등을 담고 있는데, 가령 “What Do I Get?”은 잠 못 이루는 외로운 밤 애인을 구한다는 내용이고, “Love You More”는 진실한 사랑을 맹세하는 내용이며, “Ever Fallen In Love?”는 사랑의 고통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비슷한 곡이 되풀이된다 싶을 무렵 “Everybody’s Happy Nowadays”가 변화된 베이스 패턴으로 잠시 숨을 돌리게 한다. 이 곡 중간 부분에 드럼 소리만 남겨둔 채 “인생은 환영이고 사랑은 꿈이야”라면서 읊조리는 대목은 단순하면서도 꽤 인상에 남는다. “Harmony In My Head”와 “Autonomy”는 스티브 디글(Steve Diggle, 기타)의 작품이다. 그는 앞 곡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고 격한 창법을 들려주며, 뒤의 곡에서는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을 연상케 하는 당당하고 날카로운 기타 연주를 선보인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채로운 곡들이 많다. “Noise Annoys”는 훗날 픽시스(Pixies)와 너바나(Nirvana)가 즐겨 써먹은 ‘스톱앤스타트(stop-and-start)’ 형식이며, “Why Can’t I Touch It?”은 버즈콕스답지 않게 늘어지는 멜로디에 6분이 넘는 러닝타임을 가졌다. 두 곡 모두 최소한의 모티브의 반복으로 구성되는 미니멀한 구성을 띄고 있다.

이 앨범이 나올 때까지 버즈콕스는 모두 세 장의 정규 앨범을 남겼다. 하지만 이 편집 앨범과 정규 앨범에서 겹치는 곡은 그리 많지 않으며, 그나마 마지막 앨범에서는 한 곡도 여기에 선별되지 않았다. 그래서 후(The Who)의 [Meaty Beaty Big And Bouncy](1971)가 그랬던 것처럼 싱글로만 접할 수 있는 귀중한 곡들을 선별한 ‘모범적인’ 편집 앨범으로 기록된다. 또한 다사다망했던 1970년대 말 영국 펑크의 한 단면을 이렇게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앨범도 많지 않을 듯싶다. 버즈콕스는 이 앨범의 영국 발매를 둘러싼 음반사와의 갈등으로 1981년 돌연 해체를 선언했고, 훗날 다시 모여 재결합 공연과 함께 음반 작업을 재개했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활동 중이며, 마지막 공식 앨범은 1999년에 나온 6집 [Modern]이다. 20010926 | 장호연 bubbler@naver.com

9/10

수록곡
1. Orgasm Addict
2. What Do I Get?
3. I Don’t Mind
4. Love You More
5. Ever Fallen In Love?
6. Promises
7. Everybody’s Happy Nowadays
8. Harmony In My Head
9. What Ever Happened?
10. Oh Shit!
11. Autonomy
12. Noise Annoys
13. Just Lust
14. Lipstick
15. Why Can’t I Touch It?
16. Something’s Gone Wrong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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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Buzzcocks 공식 사이트
http://www.buzzcock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