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ts – Cut – Island, 1979 겁 없는 소녀들의 장난이 아닌 도발 앨범 표지에는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중요한 부분만 가린 채 전투를 앞둔 여전사의 모습으로 서있는 세 명의 소녀들이 서 있다. 중요한 부분은 문자로 적혀 있다. 밴드의 이름은 ‘길다랗게 베인 상처’, ‘동전을 넣은 구멍’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고, 앨범의 이름은 이들의 지향인 듯 ‘잘라!’다. 이런 사실만 접해도 이들의 ‘도발성’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다. 슬리츠는 1976년 14세 소녀인 아리 업(Ari Upp 혹은 Arri Up: 보컬)이 친구인 팜올리브(Palmolive: 드럼. 뒤에 Raincoats로 이적)와 함께 ‘런던에서 패티 스미쓰(Patti Smith)의 공연을 보다가 결성된’ 밴드다. 이 음반이 제작될 때도 10대를 넘지는 않았으니, 음악이 ‘계집애들이 장난치는’ 수준인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이런 장난이 이제껏 없었다는 점이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겁 없는 도발은 ‘관습적 록이 금지하고 있던 새로운 표현의 영역을 개방했다’는 펑크의 에토스와 합치했다. 게다가 1977년 클래쉬(The Clash)의 [White Riot Tour]에 오프닝으로 참여한 사실 등으로 인해 이들은 펑크 록의 일원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클래쉬와의 인연으로 인해 슬리츠는 ‘펑크-레게 크로스오버’의 선구자라는 또 하나의 역사적 지위를 얻게 된다. 실제로 이 앨범은 레게 프로듀서 데니스 ‘블랙비어드’ 보벨(Dennis ‘Blackbeard’ Bovell)의 손을 거쳤고, 그래서 1977-8년 경 이들이 연주했던 사운드와도 상이할뿐더러 1970년대 후반 발표된 펑크 음반 중에서 레게의 영향이 가장 강한 음반이 되었다. 사운드는 앨범 표지의 이미지와 유사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채 원초적이기 그지없다. ‘사운드가 어쩌고…’라고 하는 말이 무색하게 레게의 ‘리딤(riddim)’ 위에서 비브 앨버타인(Viv Albertine)의 기타만 ‘때가 되면 나와서’ 서걱서걱 긁어댈 뿐이다. 여기저기서 방향을 잃고 흩어지는 덥(dub) 특유의 효과음은 제대로 의도하고 삽입한 것인지 아니면 무작위적으로 믹스된 건지 헷갈릴 정도다. 특별한 편곡이라곤 “Typical Girl”에서 아마추어적인 피아노가 슬쩍 들어가는 것이 전부다. 아리 업의 보컬은 ‘노래’랄 것도 없이 조성도 음고도 불확실한 상태에서 재잘거림을 반복한다. 슬리츠 역시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X 레이 스펙스(X-ray Spex), 레인코츠(The Raincoats)처럼 ‘자본주의적 상품관계의 탈신비화’라는 펑크의 강령을 ‘여성의 입장에서 표현한’ 가사를 담았다. “FM”에서는 FM을 “Frequent Mutilation…”이라고 외치면서 미디어를 통한 대중조작을 비판했고, “Spend Spend Spend”에서는 소비주의가 여성의 공허감을 가중시킨다고 공격했으며, “Love Und Romance”는 낭만, 결혼, 가족 등에 대해 페미니즘적 비판을 가하고 있다. 외모에 고민하는 ‘전형적’ 소녀가 미디어의 세뇌와 조작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Typical Girl”은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여성성(feminity)을 논할 때 고전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곡이다. 나아가 “Instant Hit”가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imited)의 기타 연주자 키쓰 레빈(Keith Levene)을, “So Tough”가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의 시드 비셔스(Sid Vicious)와 조니 로튼(Johnny Rotten)을 겨냥한 ‘말대꾸’라는 사실도 펑크의 역사를 재조명할 때마다 회자되는 에피소드 중의 하나다. 슬리츠는 1981년 한 장의 앨범을 더 발표한 뒤 모든 음악 활동을 접었다. 다른 소녀 펑크 밴드들처럼 이들도 그저 하나의 해프닝이었는가. 상투적인 말이지만 이들이 먼저 설쳐대지 않았다면 1990년대의 ‘록 우먼들(rock women)’의 활동이 그처럼 활발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이 음반에 대해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여성성에 관한 혁신적 정의였다’ 어쩌구 하는 일은 먹물들만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비키니 킬(Bikini Kill)이나 슬리터 키니(Sleater Kinney)는 물론 심지어 뷰욕(Bjork)까지도 “그게 노래냐?”라는 핀잔을 듣고 있을 것이다. 누구로부터? ‘록 평론가’들한테. 20010927 | 신현준 homey@orgio.net 9/10 수록곡 1. Instant Hit 2. So Tough 3. Spend, Spend, Spend 4. Shoplifting 5. FM 6. New Town 7. Ping Pong Affair 8. Love Und Romance 9. Typical Girls 10. Adventures Close To Home 11.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 12. Liebe And Romanze (Slow Version) 관련 글 왜 지금 펑크인가 – vol.3/no.19 [20011001] 펑크 25년: 1976 – 2001 (1) – vol.3/no.19 [20011001] Punk Diary – vol.3/no.19 [20011001] Ramones [Ramones] 리뷰 – vol.3/no.19 [20011001] Television [Marquee Moon] 리뷰 – vol.3/no.19 [20011001] Sex Pistols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리뷰 – vol.3/no.19 [20011001] Wire [Pink Flag] 리뷰 – vol.3/no.19 [20011001] The Clash [The Clash] 리뷰 – vol.3/no.19 [20011001] Gang Of Four [Entertainment!] 리뷰 – vol.3/no.19 [20011001] Buzzcocks [Singles Going Steady] 리뷰 – vol.3/no.19 [20011001] 관련 사이트 http://www.comnet.ca/~rina/slits.html http://www.johnnymoped.free-online.co.uk/rock/SLITS.html http://www.punk77.co.uk/groups/slitsreal.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