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917025451-cake_comforteagleCake – Comfort Eagle – Columbia/Sony, 2001

 

 

약간 정제한 나른함과 훵키함의 조합

한국과는 별 상관없는 공식이지만,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춘 록 밴드가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비슷한 과정을 밟는다. 지역 씬에서 클럽 공연과 데모 테이프 제작·발매로 무명기를 보내다, 인디 레이블과 계약하고 정식 음반(들)을 내놓으며 인지도와 경험을 높인 후,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하고 좀더 넓은 스케일의 활동을 벌이는 일련의 과정이 그렇다. 이번에 통산 4집 [Comfort Eagle]을 내놓은 얼터너티브 밴드 케이크(Cake)의 경우도 그런 경력을 거쳤다. 1991년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결성된 후 로컬 인디 밴드로 활동하다 이제는 1백만 장 내외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는 메이저 밴드의 위치에 올랐다.

소니 뮤직 산하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하고 발표한 첫 음반인 [Comfort Eagle]은 케이크가 거의 3년만에 내놓은 앨범이다. 이제 이들은 메이저 밴드이지만, 별로 그렇게 안 보인다. 잘 해야 2년에 앨범 한 장 내놓을 뿐이고, 스스로 밝힌 것처럼 (앨범 홍보 투어를 제외하곤) 공연도 자주 하지 않는다. 게으르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의 공식 사이트에 가보면 첫 페이지에 너무도 당당하게 “케이크는 게으르다. 그들은 LA를 제외하면 별로 순회공연을 벌이지도 않는다”고 적혀 있다. 대문짝만한 그림은 전작 [Prolonging the Magic](1998)의 커버를 모태로 한 디자인이다. 컬럼비아와 계약했으면 때깔 좋은 사이트 하나 장만할 만도 하건만.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지도 않고 스타 밴드도 아닌 케이크가 한국에서 그나마 알려져 있는 것은 2집 [Fashion Nugget](1996) 덕분이다. 케이크는 미국에서도 이 앨범의 히트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지만 성공의 큰 부분이 “The Distance”의 싱글 히트 덕분이었다면, 한국에서는 두 곡의 커버 곡이 큰 역할을 했다. 먼저 발매 당시에 글로리아 게이너(Gloria Gaynor)의 디스코 클래식을 커버한 “I Will Survive”가 모던 록 팬을 중심으로 꽤 인기를 끌었다. 근래에는 라틴 음악을 커버한 “Perhaps, Perhaps, Perhaps”가 얼마 전 모 사이다 광고(탤런트 김민이 청바지를 입다 단추가 떨어지는 모습)에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와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져 있다. 그게 이들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Comfort Eagle]은 케이크의 음악 기조가 그대로 이어져 있다. 케이크의 음악을 전에 들어보았든 아니든 간에 우선 귀에 들어오는 것은 심드렁한 투의 보컬일 것이다. 비음이 짙게 깔린 보컬은 고음에는 도통 관심 없다는 듯 중저음으로 일관한다. 코러스 부분의 그 흔한 음의 비약도 없어서, 전통적인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따분하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리듬은 꽤 훵키해서 춤추기에도 괜찮은데, 보통은 듣는 사람이 리듬을 타기 전에 음악을 꺼버릴 것 같다. 사운드도 새끈하거나 거친 주류 일반의 음악과는 거리가 있는데,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뜯어보면 ‘구닥다리’가 많다. 포크, 컨트리, 재즈, 하드 록 등을 연주했던 전력의 소유자들답다. 좋게 말하면 복고적인 질감이고, 달리 말하면 구린 질감이다. 그래서 밴드 이름은 반어적으로 작명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괜히 이름을 보고 달콤한 음악을 상상하진 말라는 뜻이지만, 사실 이들의 음악은 아이러니란 단어를 동원해 평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염두에 둔 것이다.

그렇지만 가사 쓰는 솜씨와 음악을 뒤섞는 재주가 뛰어나서, 무심한 보컬과 구린 사운드 요소의 화학적 결합물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오밀조밀하고 반복적인 기타, 거의 모든 곡에서 훵키한 리듬과 그루브로 춤을 유발시키는 베이스와 드럼, 때로는 아련함을 때로는 흥겨움을 전염시키는 트럼펫이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게 그거 같지만 귀를 기울이면 곡마다 뉘앙스를 달리하는 보컬 또한 예사롭지 않다. 더구나 가사는 신랄한 풍자와 조롱이 만연한 말 재담(wordplay)으로 뒤틀려 있어, 히어링이 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익살스럽고 기발하다는 얘기를 한다. 가사 내의 길항 관계, 가사와 악곡의 부조리가 발산하는 반어적 효과가 두드러지는데, 앞서 아이러니를 들먹인 이유는 그런 맥락에서다. 물론 가사에 신경 안 쓰거나 맥락이 잘 이해가지 않는 사람들에겐 그런 재미가 무용지물이다. 가사 때문에 ‘잘난 체 한다’며 반감을 가지는 부류도 있으니 일장일단이 있다.

이처럼 [Comfort Eagle]에서 케이크는 여전한 음악을 들려주지만, 전작들과 비교하면 좀더 정제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우선 모든 곡이 3분 내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잼을 하듯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 1분 31초 짜리 연주곡(“Acro Arena”)이 있지만, 소품 정도다. A면과 B면이 나눠져 있는 LP와 비교해보면, 이 짧은 연주곡은 CD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가름하는 정도의 역할로 보인다. 다소 다른 느낌을 주는 곡을 살펴보면, 타이틀 곡 “Comfort Eagle”은 예전에 마라카스와 라틴 리듬을 자신들의 음악 팔레트에 짜서 썼다면, 이번에는 아시아 풍의 물감을 섞어본 경우다. “Short Skirt / Long Jacket”은 로보틱한 질감으로 마감 처리된 댄스곡이고, “Commissioning A Symphony In C”는 타이트하게 점증적으로 전개되는 곡이다. 몇 곡에서 드럼 프로그래밍을 덧대기도 했다(그 때문인지 드러머가 녹음 직후 탈퇴했다).

케이크의 팬이라면 전체적으로 밋밋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기타와 트럼펫의 긴장감 있는 ‘주고 받기’라든가 트럼펫의 인상적인 연주 같이, 케이크의 음반을 다 듣고 난 후 감성에 기억되어 울림을 주던 점들이 이번 앨범의 경우에는 좀 덜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거다’ 싶은 순간(이나 곡)이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는 얘기다. 물론 이건 케이크의 일부 팬이 느낄 수 있는 ‘일말의’ 아쉬움이고, 태반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말장난이 아니라.

케이크의 신보는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3위, 인터넷 앨범 판매 차트에서 2위로 데뷔했으며, 첫 싱글 “Short Skirt / Long Jacket”은 빌보드 모던 록 차트 7위까지 올랐다. 이들의 음악에 대한 길거리 사람들의 반응을 편집한 “Short Skirt / Long Jacket” 뮤직 비디오도 재밌다는 반응을 얻으며 MTV 방영 순위 10위권에 진입했다(영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충분히 재밌다). 그 뮤직 비디오는 4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었는데, 그 컨셉트와 제작비는 모두 보컬 존 매크레(John McCrea)에게서 나온 것이다. 메이저 밴드지만, 케이크가 인디 밴드처럼 보이는 이유는 단지 그 때문은 아니다. 그런데 메이저 레이블 한국 지사의 경우 ‘수입 판매’가 최근 대세인데, 이들의 라이센스 음반이 발매된다고 한다. 혹시 음반사에서 그 사이다 광고의 힘을 믿고? 미국에서 케이크는 틈새 시장을 돌파했는데, 한국에서도 그게 가능할까. 아참, 방금 전에 라이선스 발매 소식에 놀랐었지. 20010910 | 이용우 djpink@hanmail.net

7/10
* 이 리뷰는 [씨네 21]에도 실린 글의 수정본입니다.

수록곡
1. Opera Singer
2. Meanwhile, Rick James…
3. Shadow Stabbing
4. Short Skirt/Long Jacket
5. Commissioning A Symphony In C
6. Arco Arena (Instrumental)
7. Comfort Eagle
8. Long Line Of Cars
9. Love You Madly
10. Pretty Pink Ribbon
11. World Of Two

관련 사이트
Cake 공식 사이트
http://www.cakemus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