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전자양(dencihinji) – Day Is Far Too Long – 문라이즈/드림비트, 2001

 

 

멜로디와 노이즈의 모호하지만 행복한 결합

전자양이라는 이름은 여러 가지로 다양한 상상을 하게 한다.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의 1982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의 원작이 되었던 필립 케이 딕(Philip K Dick)이 쓴 공상과학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에서 그 이름을 빌려온 것일까 아닐까하는 생각부터(물론 ‘전기’양이냐 ‘전자’양이냐 따질 수도 있을 테지만), 이름 옆에 표기된 ‘dencihinji’에 대해서(전자양의 일본식 발음이라나), 그리고 전자양이라는 이미지의 성적(性的) 모호함까지.

그 이름만큼 애매하지만, 사실 전자양의 음악이 아주 낯선 것은 아니다. 국내의 인디 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옐로 키친, 피와 꽃, 데이 슬리퍼 혹은 쓰루 더 슬로를, 이런 종류의 음악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이나 로우(Low), 씸(Seam) 등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수록곡들은 어쿠스틱과 전자음 사이에 ‘배치’된 노이즈가 던져주는 몽롱함과 더불어 가사에 주로 등장하는 ‘달’, ‘해파리’, ‘창백한’, ‘검은’, ‘흑백’, ‘밤’과 같은 단어들이 내면적이고 폐쇄적인 느낌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한편으로 ‘노래’의 형태를 유지함으로서 듣는 이에게 친숙하게 접근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생각도 든다. 전자음과 노이즈의 흐름 속에서 소박하고 여린 감수성의 멜로디가 부각되는 것이 이 앨범의 장점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대중적이지 않은 사운드를 대중적으로 만드는 능력은 앞서 언급한 밴드들과 구별되는 지점일 듯하고.

모두 15트랙이 수록된 이 앨범은 노이즈와 멜로디의 미묘한 관계를 중심으로 긴장감이 부각되는 곡들과, 명료한 사운드로 상대적으로 밝은 느낌을 주는 곡들, 그리고 필터를 거치지 않은 거친 질감의 노이즈와 잡음이 ‘그대로 녹음된'(아, 홈레코딩!) 곡들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영역에 포함되는 곡들(1, 3, 5, 9, 14번)이 규칙/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전자음과 e-보우의 사용을 통해 서정적(lyric)인 감수성과 공간감(ambient)을 표현한다면 두 번째 영역에 포함되는 곡들(2, 7, 11, 13번)은 명료한 기타 사운드를 통해 친근한 멜로디를 들려준다. 상대적으로 사운드 효과가 ‘제한되어 거친'(아, 로파이!) 세 번째 구성에 포함되는 곡들(4, 6, 8, 10, 12, 15번)에 대해서는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과 닮았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기타 팝, 슈게이징, 포크의 감수성이 뒤범벅된 이러한 구성은 자칫 산만해질 수도 있지만 전자양은 어쿠스틱/전기 기타 중심의 이 앨범에서 나름의 규칙을 세운다. 분위기가 상이한 곡들이 서로 번갈아 진행되는 형식은 ‘노이즈와 멜로디가 뒤섞인 소리들’을 지루하게도, 낯설게도 하지 않는다.

‘소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사운드를 재현하느냐’가 아니라 ‘사운드가 어떻게 재현되느냐’에 대해서일 것이다. 이를테면 반(反)남성적이라 여겨지는 사운드가 재현되는 ‘방식’이나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음악들이 재현하는 모호한 성적(性的)이미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빠른 기타 리프와 무거운 드럼 비트 등이 록 음악에서 남성성을 재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되어왔던 만큼, 전자음/노이즈 등이 만들어내는 중성적 모호함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자양의 사운드가 그러한 경계에 존재한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사운드와 젠더(gender)에 대한 이중적 고민’에 대해서 명쾌하게 답을 내릴 처지가 못되니, 우선은 사운드를 재현하는 방식보다 사운드가 소비되는 방식을 더 중요하게 짚어야 할 것 같다는 말로 대충 얼버무려야 할 듯하다. 20010914 | 차우진 djcat@orgio.net

7/10

수록곡
1. 치즈 달 여행
2. 흑백사진
3. 보름
4. Sad Song
5. 달이 우물에 빠진 날
6. 검은 봉지
7. 아스피린 소년
8. 구름의 춤
9. 통조림
10. Marvellous Story
11. 가로등
12. 오늘부터 장마
13. 누가 내 베개를 훔쳐갔나
14. 해파리의 잠 가루 비
15. 잘먹겠습니다

관련 사이트
문라이즈 레이블공식 사이트
http://moonrise.co.kr/koreanindex.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