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ryn Hill –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 Columbia, 1998 힙합 세대를 위한 궁극의 크로스오버 앨범 1990년대 중반부터 이 앨범이 나오기 전까지의 시기만 따져본다면, R&B 음악은 분명 극단적인 침체기에 빠져있었다. 물론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과 팀발랜드(Timbaland)의 비트 과학이 새로운 가능성을 던져주긴 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를 단번에 반전시킬 수는 없었다. 사실 1980년대 중반 이후 득세했던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뉴 에디션(New Edition) 식의 자아도취는 1990년대의 지누와인(Ginuwine), 조데시(Jodeci),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목소리와 태도에서도 여전한 것 같았고, 그나마 테디 라일리(Teddy Riley) 식의 힙합 크로스오버도 점차 저급한 비트들을 양산하면서 오히려 1990년대 중반 이후 R&B 사운드 프로덕션의 질을 저하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하고 있었다. 물론 맥스웰(Maxwell)이나 에리카 바두(Erykah Badu)에게서 미약하나마 새로운 가능성들을 엿볼 수는 있었지만, 이미 지난 시절 소울이 쌓아온 예술적, 도덕적 자산들을 회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비록 한 개인의 역량으로 모든 사태를 해결할 순 없겠지만, 로린 힐(Lauryn Hill)의 솔로 데뷔 앨범은 이 어려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나름의 구체적인 해법들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 음반이다. 물론 그녀의 개인적인 이력들은 그녀가 ‘진정한’ R&B/소울 여성 뮤지션으로 거듭나는데 장애가 되었던 게 사실이다. 아역 배우 출신에 사학의 명문 컬럼비아 대학교를 다녔다는 사실과 힙합 크루 푸지스(Fugees)의 래퍼이자 싱어였다는 경력이 상충됨에 따라 그녀의 정체성에 대한 세간의 의구심은 당연했던 것 같은데, 결국 전적으로 그녀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한 이 탁월한 힙합-소울 앨범이 세상에 나오면서 비로소 그녀 음악이 지닌 진정한 대안적 가능성을 모두가 인정하게 된다. 이 앨범이 R&B 음반인지, 힙합 음반인지, 혹은 절충적 음반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1960-70년대 소울의 오랜 미덕과 1980년대 초반 올드스쿨 힙합의 향취, 그리고 블랙 다이아스포라(diaspora)에 대한 메타포로서 레게와 댄스홀을 자유롭게 섞어서 뽑아낸 사운드는 단지 그녀 자신만의 음악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물론 그녀의 앨범에서 비스티 보이스(Beastie Boys) 식의 콜라쥬를 연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로린 힐은 분명 비스티 보이스 식의 경구와 유머를 능가하는, 힙합 세대를 위한 궁극적인 크로스오버 앨범을 만들어내었다. 즉, 스택스(Stax) 스타일의 유려한 관악과 두툼한 비트, 자메이카 킹스톤의 아우라와 힙합 어법의 새로운 재조합이야말로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의 진정한 가치인 것이다. “Doo Wop”과 “I Used To Love Him”의 멜로디 라인에서 드러나는 팝적 감각을 제외하더라도 이 앨범 속에는 탁월한 트랙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특히, “Jack Your Body”의 경쾌한 리듬 위로 그랜드마스터 플래쉬(Grandmaster Flash)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스타일의 멜로디를 녹여낸 “Every Ghetto Every City”, 찔러대는 현악과 튀어대는 드럼에 스크래치를 가미하여 그녀 목소리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Everything Is Everything”은 이 앨범의 숨어있는 베스트 트랙들이다. 결국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은 당시 갱스타 멘탈리티의 힙합과 의미 없는 R&B에 의존하던 흑인 음악 씬의 지나친 상업성과 구태의연함에 대한 일종의 따뜻한 해독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아쉬운 건 이 앨범이 개인적 차원에서의 대안은 될 수 있되, 궁극적인 트렌드의 질적 전환을 이끌 수 있는 혁신적 음반이 될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사운드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복고적 취향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녀의 세상에 대한 관점 속에 녹아있는 소울의 미덕이 사랑, 평화, 관용, 절제, 이해와 같은 관념적 메시지들에만 집중되면서, 대도시의 게토는 단지 그녀의 마음 속에서 과거에 대한 향수와 상상력을 통해서만 재구성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구체적 현실로서의 흑인 공동체를 꿰뚫을 수 있는 시각의 결여는 로린 힐 스스로도 아마 가장 부담스러운 부분일 것인데, 그녀의 두 번째 앨범은 과연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20010913 | 양재영 cocto@hotmail.com 9/10 수록곡 1. Intro 2. Lost Ones 3. Ex-Factor 4. To Zion 5. Doo Wop (That Thing) 6. Superstar 7. Final Hour 8. When It Hurts So Bad 9. I Used To Love Him 10. Forgive Them Father 11. Every Ghetto, Every City 12. Nothing Even Matters 13. Everything Is Everything 14.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15. Can’t Take My Eyes Off You (hidden track) 16. Tell Him (hidden tr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