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917125115-0318specialbobdylan00사진설명: ‘세대의 목소리’일 때의 밥 딜런
지난 5월 24일 밥 딜런(Bob Dylan)이 환갑을 맞이했다. 자식들이 전통예복을 차려 입고 축하하는 잔치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미리 준비해 두었던 찬사들은 여기저기서 나왔다. 대중음악에 그가 미친 공적은 “계산할 수 없는(incalculable)”이라는 단어로 한칼에 표현되며, 심지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르네상스에 미친 것”과 비교되기도 한다. 이미 밀레니엄 직전부터 그의 명예는 ‘공인’된 상태다. [Life]지는 “100명의 가장 중요한 미국인”으로 그를 뽑았으며, 미국의 예술인으로서는 최대의 영예라는 [Kennedy Center Honor]에 다섯 명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올린 상태이니 말이다. 게다가 최근 3년 동안 세 개의 그래미상과 하나의 오스카상을 받는 상복까지 누렸다.

이렇게 그가 ‘미국을 빛낸 영웅’으로 취급되는 작금의 현상은, 40년 전의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가히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미국 서북부 미네소타의 촌동네에서 뉴욕으로 올라온 젊은이가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면서 무슨 뜻인지 모를(= 심오해 보이는) 가사를 웅얼거리던 모습과 비교한다면 말이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40년의 세월 동안 그의 업적을 나열하는 일은 버거운 일이다. “시를 작곡에 체현시키면서 대중음악에 혁명을 일으킴과 동시에 미국 문화에서 진보적인 사회정치적 의식을 창조하는 데 공헌했다”는 공식적 평가를 인용하면서 그치자.

20010917125115-0318specialbobdylan01사진설명: 우디 거쓰리, 아메리칸 음유시인(troubadour)의 표상

대중음악의 비평 용어로 딜런을 표현하면 ‘포크 록 싱어송라이터’다. 이는 그가 늘 혼자였다는 말이다. 1960년대의 문화적 아이콘이자 ‘세대의 대변인’이었지만, ‘함께 함(togetherness)’이라는 표어로 상징되는 그 시대에도 그는 ‘고독한 방랑자(loner)’였고, 1965년 이후에는 ‘록 스타’로서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이런 이미지에 변화는 없었다. 즉, 그는 ‘스타’임과 동시에 ‘개인’이었다. [The Freewheelin’ Bob Dylan](1963)으로 대중음악도 저항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더니 갑자기 “모든 정치는 개똥(bullshit)”이라고 선언한 일, 1966년 오토바이 사고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서 반문화의 절정인 시기에 사경을 헤매던 일, 1978년 기독교로 개종했다가 1982년에는 다시 유대교를 포용한 일 등등 일련의 모든 사건들은 스타로서의 외양보다는 ‘개인으로서의 내면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지속적으로 유발시켰다.

그는 늘 길 위에 서 있는 남자였고, 그의 삶은 영웅의 오디세이였다. 그리고 여기서 밥 딜런에게 영향을 준 두 명의 인물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모던 포크의 아버지 우디 거쓰리(Woody Guthrie)이고, 다른 하나는 비트 시인 잭 케루액(Jack Kerouac)이다. 우디 거쓰리에 대한 밥 딜런의 관계는 1961년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커피하우스에서 노래를 부를 때, 뉴 저지의 병원에 입원한 우디 거쓰리의 병상을 찾아 말년을 지켜주었다는 일화로 상징된다.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딜런이 감염된 것은 병균이 아니라 (북)아메리카 대륙 전역을 여행하던 거쓰리의 방랑벽이었던 모양이다.

20010917125351-0318specialbobdylan02사진설명: 1975년 잭 케루액의 묘 앞에서 알렌 긴스버그와 함께

딜런에게 깊은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인물 잭 케루액의 사상은 [On the Road]라는 소설의 제목에서 가장 잘 표현된다. 비트 시인들을 소설의 주인공들로 대입시킨 이 소설에서 케루액은 뉴욕으로부터 샌프란시스코로, 디트로이트로부터 멕시코 씨티로 차를 몰고 방랑한다. 여행 도중에 약물에 중독된 불 리(Bull Lee: 윌리엄 버로우스의 분신)를 방문하고, 칼로 마르크스(Carlo Marx: 알렌 긴즈버그의 분신)과 철학적 토론을 하기도 한다. 길이란 선불교, 약물, 재즈와 더불어 그의 의식의 흐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케루액은 글을 쓸 때 약물을 복용하거나 재즈를 들을 때의 의식의 흐름을 표현했고, 사후에 어떠한 편집이나 교정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딜런은 가사 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도 케루액의 스타일을 고집했던 듯하다. 예를 들어 조운 바에즈(Joan Baez)나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ary)가 레코딩한 “Blowin’ In The Wind”의 기타 코드의 진행은 매우 ‘패턴화’된 것인 반면, 딜런의 레코딩에서 기타 코드 진행은 ‘제멋대로’다. 노래는? “강력한 보컬리스트가 아니라도 가수(singer)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한 평론가의 평으로 충분해 보인다. 그래서 조운 바에즈나 피터 폴 앤 메리의 노래가 무대에 서서 박수를 기다리는 가수를 떠올린다면, 딜런의 노래는 길거리에서 한 곡을 부르곤 황급히 어디론가 떠나가는 사람을 떠올린다.

사진설명: 1998년 [Time out of Mind]로 그래미를 수상할 때

[The Rolling Stone Illustrated History Of Rock’n’roll]에서 밥 딜런 관련 항목을 저술한 재닛 매슬린(Janet Maslin)의 마지막 문장은 “그 전설은 하나의 생활이 되었다(The Legend became a life)”이다. 그렇지만 전설로만 남는 것보다 한 ‘생활인’의 모습을 보는 기분도 그닥 나쁘지는 않다. ‘길 위의 생활인’의 최근 작품들은 초기작으로 돌아간 듯한 건조한 포크송이고, 록 스타로서 전성기 때 딜런의 모습은 그의 아들 제이콥 딜런(Jakob Dylan)이 이끄는 월플라워스(The Wallflowers)의 음악에서 들을 수 있으니까. 20010915 | 신현준 homey@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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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Bob Dylan 사이트
http://bobdylan.com
Bob Dylan의 바이오그래피
http://www.geocities.com/musica_holm/ibobbio.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