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917123734-bobdylan_loveandtheftBob Dylan – Love & Theft – Sony, 2001

 

 

해학을 부리는 노(老) 시인의 블루스

밥 딜런의 ‘마흔 네 번째(!)’ 앨범이 나왔다. 물론 ‘번안곡’으로 유명한 “Blowin’ In The Wind(바람만이 아는 대답)”,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역)”, “A Hard Rain’s A-Gonna Fall(소낙비)” 정도만 아는 사람들에게 이건 별다른 뉴스가 아닐 것이다. 저 노래들을 밥 딜런의 전부인 양 알고 있는 사람들을 다분히 경멸적으로 보았던 나 역시도 밥 딜런의 근황에 대해서 큰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새삼스럽게 왜? [롤링 스톤]에서 이 음반에 만점을 주었기 때문에? 요즘 이 잡지가 얼굴 쭈글쭈글한 록 베테랑과 살 탱탱한 소저들에게 홀딱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여기에 동참하기는 꺼림칙하다. [뉴욕 타임스]에 그레일 마커스(Greil Marcus)가 장문의 글을 기고했기 때문에? 그렇지만 ‘록 평론의 아버지’ 중의 한 분의 글을 한국인 서자가 읽는 일은 이제나 저제나 고행이다. 그렇다면 무엇? 아마도 ‘어른을 공경하는’ 동양의 이데올로기가 작용한 모양이다. 다름 아니라 지난 5월 24일 그가 환갑을 맞이했기 때문. 이미 그곳에서는 딜런이 대중음악에 미친 공적이 “계산할 수 없는(incalculable)” 것이라느니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르네상스에 미친 것”이라느니 하는 헌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게다가 그는 최근 3년간 그래미에서 세 번 수상하고, 올해 초에는 오스카상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하는 상복까지 누렸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지난 10일 신보를 발표했다.

음악 형식으로 장르를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은 새 음반에 수록된 음악을 ‘포크’가 아니라 ‘블루스’라고 부를 것이다. 2비트의 쿵딱거리는 리듬 위에서 주절대는 첫 트랙 “Tweedle Dee Tweedle Dum”, 그리고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발라드인 두 번째 트랙 “Mississippi”를 지나면, 로커빌리 풍의 기타로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는 “Summer Days”부터 ’12마디 블루스’의 향연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그렇지만 눈을 감고 인상을 쓰면서 기타 솔로를 연주하는 ‘블루스 록’도, 한국의 무도장에서 아줌마와 아저씨가 몸을 비벼대는 ‘부루스’도 아니다. 이건 마치 미국 남부의 담배연기 자욱한 허름한 바에서 흥겹게 연주하다가, 공연이 끝나면 황급히 짐을 챙겨 떠나는 길거리 밴드(road band)의 모습이다. 라운지 재즈 풍의 “Bye And Bye”에서 슬슬 분위기에 젖어들고, 델타 블루스 풍의 “High Water”에서는 밴조 소리에 고개를 까딱거리다가 “Honest With Me”에서 슬라이드 기타에 취하게 든다. 그리고 마침내 “Lonesome Day Blues”나 “Cry a While”에 이르면 세상 고통을 다 잊은 듯 발바닥을 쿵쾅거리게 된다. 흠, “나는 장광설을 떠드는 곳(highfalutin area)이 아니라 해학을 부리는 곳(burlesque area)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란 이런 의미였군. 번역이 신통하지 않지만 딜런은 이 앨범에서 ‘시인’이 아니라 ‘광대’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고, 이 점에서 ‘개인적이고 내향적’이었던 전작 [Time Out Of Mind](1997)와도 다르다. 그리고 해학이야말로 스토리텔러인 포크 가수가 갖추었던 기본 덕목 아닌가.

물론 블루스만 있는 건 아니다. 잠깐 언급한 “Missippi”도 그렇지만 “Po’ Boys”와 “Sugabebe” 같은 ‘발라드’는 로큰롤 ‘이전’일 뿐만 아니라 로큰롤과 ‘무관’한 팝 음악 같다는 인상을 준다. 아니나 다를까 “Moonlight”는 영락없이 1930년대 유럽의 사교 클럽에서 흘러나왔을 법한 ‘올드 팝송’이다. 딘 마틴이나 프랭크 시내트러가 날리던 ‘좋았던 옛 시절’의 미국 쇼비즈니스계를 떠올리게 하는 사운드이자 밥 딜런이 10대 시절 밴드를 만들어서 흉내내다가 철이 들고 난 뒤에는 집어치웠던 음악이다. 물론 딜런은 오래된 음악을 원형 그대로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특유의 방법으로 ‘이상하게’ 변형해 놓는다. 그래서 그가 풀어놓은 과거는 그저 푸근한 것이 아니라 신비스럽고 수수께끼 같다(이게 밥 딜런의 제 1의 코드다). 이들 트랙을 듣다 보면 앨범 제목의 절반인 ‘도적질’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감이 온다. 이런 미스테리에 대해 딜런은 한 인터뷰에서 “나에게 미래란 이미 과거의 일이다”라는 역시 미스터리한 말로 설명을 대신한다.

그런데 혹시 이런저런 이유로 딜런이 ‘얄밉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촌스럽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인간이 알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이 필요한가”라는 40년 묵은 질문을 다시 던진다면? 알다시피 딜런은 “친구여, 대답은 바람 속에 날아가 버렸다”라면서 대답을 대신했다. 하긴 대답은 고사하고 거대한 빌딩마저 바람 속에 날아가 버리는 마당에 천하의 밥 딜런이라고 해서 별다른 재주가 있겠나. 그 점에서 이번 음반의 발표 시점은 시의적절치 않은(untimely) 것이었지만, 이번 음반의 내용물은 이제까지의 업적과 더불어 시간을 초월한(timeless) 것으로 남을 것이다. 20010915 | 신현준 homey@orgio.net

8/10
* 이 글은 [씨네 21]에 수록된 글의 오리지널 버전입니다.

수록곡
1. Tweedle Dee And Tweedle Dum
2. Mississippi
3. Summer Days
4. Bye And Bye
5. Lonesome Day Blues
6. Floater (Too Much To Ask)
7. High Water (For Charley Patton)
8. Moonlight
9. Honest With Me
10. Po’ Boy
11. Cry Awhile
12. Sugar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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