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901124608-spoon_girlsSpoon – Girls Can Tell – Merge, 2001

 

 

인디 록의 색다른 오마주

텍사스 출신 3인조 인디 록 밴드 스푼(Spoon)은 ‘아픈 사연’을 품은 팀이다. 인디 씬에서 데뷔 앨범 [Telephono](1996)와 EP [Soft Effects](1997)를 내놓은 뒤 메이저 레이블인 일렉트라(Elektra)와 계약을 맺고 앨범 [A Series Of Sneaks](1998)를 발매했지만, 이번에 다시 인디 레이블로 복귀해야만 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새 앨범 [Girls Can Tell]에서 뭔가 세상에 대한 분노라든지 불온한 기운이 서려있을 법도 한데, 음반을 들어보면 두드러지게 여유 있는 이들의 연주로부터 이렇다 할 불만의 조짐을 읽어낼 수 없다.

[Girls Can Tell]은 요즘 주종을 이루고 있는 인디 록 스타일과는 상당히 궤를 달리하고 있다. 현재 인디 록의 주요 흐름을 거칠게 살펴보면 크게 세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이른바 ‘포스트 록(post-rock)’으로 불리는 일군의 실험 록(experimental rock) 밴드들로, 토터스(Tortoise), 트랜스 앰(Trans AM), 모과이(Mogwai) 등이 대표적이다. 레이블로는 스릴 자키(Thrill Jocky)나 드랙 시티(Drag City)를 꼽을 수 있다. 두 번째는 1960년대 비틀스(The Beatles)와 버즈(The Byrds)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싸이키델릭하면서 멜로디도 중시하는 밴드들이다. 애플스 인 스테레오(Apples In Stereo)나 뉴트럴 밀크 호텔(Neutral Milk Hotel), 올리비아 트레머 컨트롤(Olivia Tremor Control) 등, 엘리펀트 6(Elephant 6) 레이블을 중심으로 한 밴드들을 꼽을 수 있다. 세 번째는 이른바 ‘슬로코어(slowcore)’ 또는 ‘새드코어(sadcore)’라 불리는 음악을 구사하는 밴드들로, 스모그(Smog),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Red House Painters), 로우(Low)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물론 세 가지 유형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인디 씬의 메이저’ 마타도어(Matador) 레이블 소속 뮤지션들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스푼은 앞서 말한 세 가지 범주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독특한 밴드다. 스푼의 음악에는 198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뉴 웨이브(new wave)의 정서가 가득하다. [Girls Can Tell]을 들어보면 전체적으로 조 잭슨(Joe Jackson)이나 그레엄 파커(Graham Parker),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 등이 연상되며, 힘이 넘치나 오밀조밀 소박하기도 한 뉴 웨이브 록을 떠올리게 된다. “Everything Hits At Once”나 “Anything You Want”, “Take A Walk”, “Chicago At Night” 등은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 트랙들이다.

곡조뿐만 아니라 악기 연주 방식도 마찬가지다. 양쪽 채널에서 귀를 간지럽히는 무척이나 간결하고 멜로딕한 기타, 구성진 올갠, ‘고고 리듬’을 구사하는 베이스, 화려한 필 인 없이 박자 맞추는데 소임을 다하는 드럼 등은 뉴 웨이브의 미니멀리즘(Minimalism)적 접근법과 닮아 있다.

물론 [Girls Can Tell]에는 뉴 웨이브 사운드만 담겨 있는 건 아니다. “Me And The Bean”은 브릿 대니얼(Britt Daniel)의 창법에서 유난히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으며(노래는 전반적으로 “Come As You Are”를 떠올리게 한다), “The Fitted Shirt”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Kashmir”를 슬쩍 참조한 흔적이 엿보이며, “1020 AM”은 노골적으로 빅 스타(Big Star)의 서정적인 음악 세계를 변주한 듯하다.

이렇듯, [Girls Can Tell]은 그 오마주의 대상을 볼 때 기존의 인디 록 밴드들이 취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특이하다. 대체로 과거의 거물들로부터 방법론을 차용하는 것이 인디 록 밴드들의 전통임을 볼 때(여태껏 비틀스, 버즈,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 닐 영(Neil Young), 캔(Can),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스투지스(Stooges) 등이 주요 참고 대상이었다), 스푼의 경우 ‘전통’대로 참고는 하되 그 대상이 1970년대 후반부터 만개한 영국 뉴 웨이브, 또는 펍 록(Pub Rock)이라는 점은 아무래도 다른 밴드와 구별되는 요소인 것이다. 이를 스푼만의 독자적인 행보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인디 록 전반에 무엇인가 지각 변동의 조짐이 일어나려는 것인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Girls Can Tell]은 몹시 흥미로운 앨범이다. 20010828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5/10

수록곡
1. Everything Hits At Once
2. Believing Is Art
3. Me And The Bean
4. Lines In The Suit
5. The Fitted Shirt
6. Anything You Want
7. Take A Walk
8. 1020 AM
9. Take The Fifth
10. This Book Is A Movie
11. Chicago At Night

관련 사이트
Sppon 공식 사이트
http://www.spoontheba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