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831114102-vysotskyVladimir Vysotsky – Golden Best – Melodia/KM 뮤직, 1993

 

 

‘침묵의 나라의 목소리’의 불만스러운 짜깁기

1992년 옐친 대통령 방한에 즈음하여 비소쯔끼의 음반이 몇 종 발매되었다. 현재 ‘끼워팔기’되고 있는 체 게바라와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듯 옐친과 비소쯔끼 사이의 관계도 별다른 것은 없다(꾸바 혁명을 성공시킨 후 게바라는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 같은 음악을 ‘국제적 제국주의에 물든 향락적 음악’이라고 간주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게바라를 ‘꾸바의 혁명가’라고 ‘국적’까지 은근슬쩍 바꾸는 한국인들의 행태는 정말 끔찍하다). 오히려 비소쯔끼가 당과 국가와 불편한 관계를 지속했을 무렵 옐친은 당료로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CD 커버에 멜로지야라는 러시아 알파벳이 적혀 있고 멜로지야로부터 면허(라이센스)를 받았다는 문구도 적혀있지만, 오리지널 음반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할 길은 없다. 부클릿은 ‘최소한의’ 두께로 되어 있어서 가사 번역은커녕 바이오그래피도 없다. 게다가 곡 제목마저 영어와 한국어로 번역된 것만 있어서 확인할 길이 없다. 혹시나 ‘한국에만 존재하는 편집 음반 아닐까’라는 의심마저 들뿐이다. 멜로지야에서 발매한 음반이 맞다면 ‘거기나 여기나 오십보 백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음반사가 대기업 계열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나면, 음반 사업에서는 ‘삼성이나 현대가 똑같다’는 생각만 들뿐이다. ‘Vladimir’라는 철자는 ‘Bladimir’로 오기되어 있고, ‘Vysotsky’의 한국어 발음은 ‘비소스츠키’로 되어 있다.

이런 점들이야 그렇다 치고 컨텐츠는 어떤가. 첫 번째 트랙을 영화 [백야] 주제가로 한 것은 자연스럽고, 이는 이 음반 이외의 모든 편집음반들의 공통적인 특징일 것이다. 현, 나팔, 피아노 중심의 편곡 사이로 우리에 갇힌 동물처럼 울부짖는 비소쯔끼의 ‘가래 끓는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기는 하다. “내 노래의 멜로디는 음계의 단순합보다도 단순하다. 하지만 내가 진실의 어조를 잃는 그 순간부터 마이크는 채찍이 되어 내 얼굴에 흉터를 남긴다”는 그의 말을 다시 한번 음미하게 되는 순간이다.

문제는 ‘골든 베스트’라는 이름과는 달리 선별된 곡들이 비소쯔끼의 경력의 상이한 국면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이 많은 세대가 좋아하던 초기의 군가(military song) 스타일에서 후기에는 비가(sad song) 스타일로 이동했다”는 평을 신뢰한다면 이 음반은 ‘기성 세대 취향의’ 초기 레코딩 중심으로 선곡된 것으로 추측된다. 한 예로 11번 트랙 “That’s Us That Makes The Earth Go Round”의 경우, 1986년에 발매된 [Siynov’ya Ukhodiat V Boi(Sons Are Leaving For Battle)]에 실린 레코딩은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러밍 위에 일렉트릭 기타 라인을 얹어 젊은 세대에도 흡인력을 가질 만하지만(본문의 음원을 참고하라), 이 앨범에 수록된 레코딩은 군악대 풍의 구닥다리 편곡을 취하고 있다.

물론 아쉬운 대로 비소쯔끼 노래의 하나의 단면을 감상할 수 있기는 하다. 경쾌하지만 비장한 두 박자의 리듬이 전개되는 “She’s Been To Paris”와 “Moscow Odessa”, 세 박자 리듬과 샹송 풍 멜로디가 흐르는 “Cold Weather” 등은 그저 애상적이지만은 않은 러시아의 정서를 전달하고, 워킹 베이스 위에 전개되는 “Black Gold”나 셔플 리듬을 사용한 “White Silence”는 그가 재즈의 수용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점을 알려준다. 오래된 군가 풍의 “That’s Us That Makes The Earth Go Round”와 “Yak Fighter Plane”은 여전히 귀를 잡아당기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할 말은 위 평점이 ‘비소쯔끼의 음악’에 대한 점수가 아니라 ‘음반’에 대한 것, 정확히 말하면 음반의 ‘제작’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사족이지만 이 앨범의 비닐 LP는 같은 해 킹 레코드에서 발매되었는데, 음반 커버는 판이하다. 이것도 참 한국적 현상으로 보인다. 단, 비닐 LP에는 가사의 한국어 번역이 있다.) 20010828 | 신현준 homey@orgio.net

6/10

수록곡
1. Fastidious Steeds (야생마)
2. She’s Been To Paris (그녀는 빠리에 가본 적이 있다)
3. 07 (07)
4. Crystal House (수정으로 만든 집)
5. Peak Mountaineer (등산가 – 애인)
6. Lyrical Song (서정적인 노래)
7. It’s Not Evening Yet (아직은 해질 무렵이 아니다)
8. Cold Weather (추위, 추위)
9. Moscow – Odessa (모스끄바 – 오데싸)
10. Variations On Gypsy Themes (집시 노래 변주곡)
11. That’s Us That Makes The Earth Go Round (우리는 지구를 회전시킨다)
12. Black Pea – Jackets (검은 부쓰 랴트)
13. Yak Fighter Plane (야크 전투기)
14. Hope (희망)
15. Black Gold (검은 금)
16. Ships (선박들)
17. Songs About Migration Of Souls (정신 이전에 대한 노래)
18. Giraffe (기린)
19. Morning Excercise (아침 운동)
20. White Silence (흰 정적(고요함))
(* 한글 번역은 앨범 뒤의 표기에 따름)

관련 글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2): 구 소비에트 사회에서 예술음악, 민속음악, 대중음악 – vol.3/no.17 [20010901]
Svetlana, [Chanson Russe] 리뷰 – vol.3/no.17 [20010901]

관련 사이트
러시아 음악 사이트
http://www.music.ru
러시아 음악 mp3 사이트
http://www.omen.ru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서우석 교수의 세계민요 사이트
http://usoc.snu.ac.kr/mp3-folksongs/mp3-all.htm
Vysotsky 재단 공식 사이트(영어)
http://kulichki-lat.rambler.ru/vv/eng
Vysotsky 사이트(독일어)
http://www.vladimir-vysotsky.de
Mashina Vremeni 사이트
http://www.mashina-vremeni.com
Akvarium 사이트(영어 및 러시아어)
http://www.planetaquariu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