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또르 쪼이 11주기에 붙여

당신은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산과 인천의 유흥가에 ‘춤을 춰서 돈을 버는’ 8등신의 미녀들이 먼저 떠오르는가. 그게 자연스럽다. 몸집만 거대하고 힘은 쇠잔해진 이빨 빠진 호랑이 같은 나라에 이제 ‘영웅’이란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똘스또이와 도스또예프스끼 같은 대문호도, 레닌과 뜨로쯔끼 같은 혁명의 영웅도 이제는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 이상은 아니다. 인류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한 과학 영웅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하던 스포츠 영웅도 마찬가지다. 하다 못해 미국의 대통령들과 단둘이 만나 세계인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파워를 과시했던 ‘소련 공산당 서기장’도 역사의 유물로 사라져 갔다.

그렇지만 ‘마지막 영웅’의 스토리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누구냐고? 한국인이라면 여러 번 이름을 들어봤을 ‘빅또르 쪼이(Viktor Tsoi)’의 스토리다. 언젯적 빅또르 쪼이냐고? 오늘, 8월 15일은 그의 사망 11주기다. 11년 전 쌍뜨 뻬쩨르부르그를 비롯한 구(舊) 소련은 한 록 뮤지션의 요절로 깊은 비탄에 빠졌고, 그때의 비탄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가 묻혀 있는 보고슬로프스끼 묘지에는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는 팬들이 교대로 ‘당번’을 서고 있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그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모스끄바의 아르바뜨 거리에 있는 ‘빅또르 쪼이의 벽’에도 추모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징적 장소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의 아파트와 건물의 계단 및 복도에는 빅또르 쪼이와 그의 밴드 끼노를 추억하는 낙서들이 가득하다. “마지막 영웅”,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 빅또르 쪼이의 죽음은 21세기로 접어든 지금까지도 ‘살아있는 전설’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금언은 이런 경우에 가장 적절하다.

20010816013313-series-kino1사진설명 :빅또르 쪼이, 러시안 록의 젊은 제사장(혹은 제물)
그런데 ‘쏘련’에 언제부터 록 음악이 있었는가. 있었다. 혹시 영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에 나오는 ‘웃기는’ 음악이냐고? 이들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는 아비아(Avia)나 즈무끼 무(Zvuki Mu)처럼 괴짜 아방가르드 밴드들이 있기는 하지만 끼노와는 해당사항 없다. 물론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는 러시아 출신이 아니라 핀란드 출신이다. 그렇다면 ‘러시아 대중음악’이니까 드라마 [모래시계]에 삽입된 요시프 꼬브존(Iosif Kobzon)의 “백학”이나 심수봉이 번안하여 부른 알라 뿌가쵸바(Alla Pugachova)의 “백만 송이 장미” 같은 음악이냐고. 천만에. 이런 음악들은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 나온 음악이고 심하게 말하면 ‘관변 가요’였을 뿐이다. 그 시절의 국시(國是)로 인해 ‘상업적 음악’이란 있을 수 없었으니, 음악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은 ‘프로페셔널’에 속했고 이들은 공식 사회와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나머지 음악인들은 ‘실력’과는 무관하게 모두 ‘아마추어’라고 불렸다. 따지고 보면 구 소련에서 아마추어란 영미권에서 ‘언더그라운드’나 ‘인디펜던트’라는 용어나 비슷한 셈이었다.

이들 ‘아마추어’들은 어떤 음악을 연주했는가.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 ‘록 음악’을 연주했다. 1960년대부터 서양의 록 음악은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 의해 ‘밀수’되기 시작했다. 물론 첫 단계는 단순 모방. 비틀즈나 딥 퍼플을 카피하는 것을 신성한 사명으로 생각하는 무수한 아마추어 그룹이 탄생했다. 다음 단계는 자국어로 가사를 쓰는 록 음악. 록 바이러스는 러시아 포크송이나 바드송(bard song) 혹은 기타 시가(guitar poetry)라는 숙주(宿主)와 만나면서 ‘소비에트적 생활양식’과는 거리가 먼 낭만적 게으름뱅이들을 만들어 내었다. 1970년대 이후 러시아 대도시에 생성된 록 커뮤니티는 ‘반문화(counterculture)’라고 불릴 만한 현상으로 발전했다. 바이러스가 증식되면서 록 커뮤니티는 마시나 브레메니(Mashina Vremeni)의 안드레이 마하레비치(Andrei Makharevich)나 아끄바리움(Akvarium)의 보리스 그레벤시꼬프(Boris Grebenshikov) 같은 인물들은 록 커뮤니티의 ‘대부’, ‘맏형’, ‘제사장’ 같은 지위를 얻었다.

‘폐쇄 사회’인 구 소련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가, 그건 어떤 의미일까. 이런 스토리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 대충만 묘사한다면 록 커뮤니티의 ‘소비에트 체제의 기생충’들은 근로시간이 짧은 직업을 택하고, 취업한 뒤에도 결근을 밥먹듯 하고, 손가락을 자르거나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징병을 기피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식 사회와의 절연(dissociation)’이라는 반문화의 실천을 행동에 옮겼다. 록 커뮤니티가 특히 활발했던 쌍뜨 뻬쩨르부르그(구 레닌그라드)는 ‘행동의 중심’이 되었고 록 공연장은 ‘신성한 사원’이 되었다.

20010816013313-series-kino2사진설명 : Kino의 연주 장면
그렇다면 빅또르 쪼이와 그의 밴드 끼노(Kino)는 러시안 록의 ‘선구자’가 아니라 러시안 록의 ‘뉴 웨이브’이다. 이게 세 번째 단계다. “서양의 록 음악의 형식을 차용했다고 해서 러시아의 록 음악이 전부를 차용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러시아의 록 음악은 정말 살아있는 음악이며, 이미 사회적 현상이 되어버린 국민적 대중예술이라고 생각한다”는 자각 말이다. 이게 1980년대 현상이다. 1980년대란 영미권에서 ‘록 음악은 죽었다’ 어쩌구 하는 담론이 유행할 때 후발국들에서는 록이 ‘진정한 예술’로 존중받는 아이러니가 존재한 시대다. 상황과 조건은 달랐어도 라틴 아메리카, 동유럽, 동아시아가 그런 지역들에 포함된다. 이건 논리의 보강이 필요한 이야기다. 어쨌든 1981년에 처음으로 음반을 발표하여 1990년에 마지막 유작을 남긴 그의 생애는 ‘1980년대의 러시아에서 록 음악의 역사’를 비추는 거울 같은 것이다. 그건 단지 하나의 음악 장르의 역사를 넘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것 역시도 천천히 하기로 하자.

이런 이야기가 지루할 수도 있겠다. 도대체 ‘음악’이라곤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들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를 ‘위대한 한국인’ 정도로 취급하여 다큐멘터리를 찍어오는 방송사 관계자들의 시각도 흥미 없다. 그냥 편견 없이 ‘음악’이나 한번 들어보자. 그 음악이 어떤 취향에 맞을 지는 모르겠다. ‘후진’ 사운드와 ‘생경한’ 발음을 듣자마자 스톱 버튼을 누를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낯설고 이국적’인 록 음악의 국지적 변이에 묘한 끌림을 받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보다 허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한국보다는 낫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0010816013406-series-kino320사진설명: 무대에서의 빅또르 쪼이
빅또르 쪼이와 끼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동기는 다양하다. 그가 ‘한국계’라서 좋아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러시아 문화 전반에 애정을 가져서 좋아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좋다. 나의 견해를 밝히라고? ‘록 음악’이 삶을 살아가는 다른 방식을 제공하는 감성을 제공해주는 사운드라고 생각한다면 이 음악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작은 바램이 있다. 아직도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냐고 묻는다면 몇 가지 가정을 추가하고 싶다. 그게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라면. 이곳도 그곳처럼 록 음악의 ‘변방’이라면. 고루한 말이지만 ‘록 음악’이 아직도 ‘삶에 대한 자유로운 태도’와 ‘진정한 자기표현’과 무관치 않다면. 20010814 | 신현준, 박일경 homey@orgio.net

빅또르 쪼이와 끼노의 바이오그래피 혹은 연보

* 필자 주
이 바이오그래피는 http://kinoman.net/istoria 에 실린 꼰스딴찐 쁘레오브라젠스끼(Konstantin Preobrazheskii)의 “그룹 끼노의 역사(Istoria Gruppi Kino)”를 중심으로 하고 아래 관련 사이트들을 참고하여 작성한 것이다. 일시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상이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정확성을 보장할 수 없는 점에 대해 독자의 양해를 구한다.

1962년
6월 21일 빅또르 쪼이, 쌍뜨 뻬쩨르부르그(구 레닌그라드)에서 최동열과 발렌찌나 바실리예브나(Valentina Vashilevna) 사이의 독자로 출생한다.

1969년
어머니가 체육교사로 일하고 있던 학교에 입학하고, 어머니를 따라 3번 학교를 옮긴다.

1974년
막심 빠쉬꼬프(Maxim Pashikov)와 함께 ‘제 6병동’이라는 뜻의 그룹 Palata N6을 조직한다. 레닌그라드 예술복원학교에서 목공예를 전공한다.

1979년
성적불량으로 퇴학당한 뒤 공장에서 화부로 일하며 야간학교에서 공부한다.

1980년
빅또르 쪼이, 기타를 둘러메고 골목길과 ‘개구멍’을 한량처럼 어슬렁거리다가 비슷한 존재인 알렉세이 르이빈(Aleksei Rybin)을 만난다. 르이빈은 삘리그리미(Piligrimy)라는 이름의 밴드를 이끌던 전력이 있어서 곧 의기투합한다. 당시 러시아 펑크 록의 전설적 존재인 밴드 주빠르끄(Zoopark)의 마이크 나우멘코(Maik Naumenko) 등과 교류하면서 뻬쩨르부르그의 언더그라운드 록 씬에 뛰어든다.

1981년
빅또르 쪼이(보컬, 기타), 알렉세이 르이빈(기타, 보컬) 올레그 발린스끼(Oleg Valinsky, 퍼커션) 세명은 끼노의 전신이 된 그룹 가린 이 기뻬르볼로디(Garin I Giperbolodi: ‘쌍곡선’이라는 뜻)을 결성한다. 그해 겨울 가린 이 기뻬르볼로디는 뻬쩨르부르그의 ‘록 클럽’의 일원이 되었다. 발린스끼가 군에 입대하면서 그룹은 ‘통기타 2인조’가 되었고 끼노(Kino)로 이름을 바꾼다.

1982년
봄에 안드레이 뜨로삘로(Andrey Tropillo)의 집에 마련된 스튜디오 장비로 보리스 그리벤시꼬프를 비롯한 아끄바리움의 멤버들의 도움을 받아 데뷔 앨범을 녹음한다. 이들은 곧바로 ‘록 클럽'(주 – 뻬쩨르부르그에 있는 클럽의 ‘고유명사’이다)에서도 정식 콘서트를 가지는데, 아끄바리움의 멤버들이 연주를 도와준다. 합법적 공연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공장 지하실 등이 주된 공연무대가 된다. 한편 모스끄바에서도 최초로 콘서트를 가진다. 여름 무렵 끼노의 데뷔 앨범은 [45]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 가을에는 주빠르끄의 드러머를 세션으로 하고 안드레이 꾸쏘프(Andrey Kusov)가 엔지니어링을 맡아 레닌그라드 드라마 씨어터의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앨범을 녹음한다. 결과가 흡족하지 않아서 발표하지 않은 이 앨범은 뒤에 [Neizvestnye Pesni(Unknown Songs)]라는 이름으로 발표된다. 한편 이 해 빅또르 쪼이는 병역거부를 목적으로 정신과에 입원하여 결국 목표를 달성한다.

1983년
2월 19일 ‘록 클럽’에서 아끄바리움과 함께 공연을 가졌는데, 당시 그들은 모조 보석과 레이스가 달린 정장 차림에 화장까지 하고 무대에 섰다. 이 무렵 알렉세이 르이빈이 그룹을 떠나고 유리 가스빠리안(Yuri Kasparyan, 기타)과 게오르기 구리아노프(Georgy Guryanov, 드럼)가 가입한다. 여름에는 새로운 앨범의 데모를 레코딩하는데, 이는 [Nachlnik Kamchatki(The Chief of Kamchatka)]의 데모 버전이었지만 뒤에 [46]이란 이름으로 발매된다.

1984년
제 2회 레닌그라드 록 클럽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대상을 수상한다. 이때부터 아끄바리움의 베이시스트 알렉산드르 찌또프(Alexander Titov)가 세션을 도와주는데 그는 이후 세 개의 앨범 작업에 참여한다. 그해 하반기에는 안드레이 뜨로삘로의 스튜디오에서 아끄바리움의 멤버들과 함께 새 앨범 [Nachalnik Kamchatki(The Chief of Kamchatka)]를 녹음한다.

1985년
제 3회 레닌그라드 록 클럽 페스티발에서도 대상을 받고, 뜨로삘로 스튜디오에서 앨범 [Noch’]의 레코딩을 시작했다. 당시 멤버들은 듀런 듀런 풍의 뉴 웨이브 스타일을 원하지만, 결과물이 신통치 않아 미완성인 채로 남겨두고 올레그 비쉰의 스튜디오로 옮겨 일주일만에 [Eto Ne Lyubovi]를 녹음한다. 이해 마리아나와 결혼하고 알렉산드르 쪼이(Alexander Tsoi)가 출생한다.

1986년
1월에 [Noch’] 앨범이 발매되어 밴드의 지명도가 상승하고, 봄에 제 4회 록 클럽 페스티벌에서는 연례행사가 되어 버린 듯한 대상을 수상한다. 베이시스트 이고리 찌호미로프(Igor Tikhomirov)의 영입으로 쪼이의 사망 때까지 유지된 4인조의 안정된 라인업이 구성된다. “Kochu Peremen(Demand Some Change)”과 “Dal’she Deiistvovati Durem Mi(From Now We’re In Charge)”로 가사상을 받는다. 영화 [Konets KaniKul], [Assa] 등을 촬영한다. 6월에는 모스끄바에서 뻬쩨르부르그 출신의 몇 밴드와 대규모 합동공연을 가지는데, 이때부터 끼노의 위상은 아끄바리움이나 알리사(Alisa)와 필적하게 된다. 이 무렵 미국인 조애너 스팅그레이(Joanna Stingray)의 노력으로 러시아 록 밴드를 서방에 알린 더블 앨범 [Red Wave]에 수록된 4개의 밴드 중 하나가 된다. 그녀는 4채널 녹음 장비 Yamaha MT44를 직접 공수해 와서 이후 [Gruppa Krovi] 앨범의 레코딩에 도움을 준다.

1987년
빅또르 쪼이가 주연하고 라쉬드 누그마노프가 감독한 영화 [Igla(The Needle)]를 알마아따(Almaata)에서 촬영하였는데, 이 영화는 이듬해 개봉되어 대성공을 거둔다. 쪼이는 영화 촬영 때부터 앨범 [Gruppa Krovi(Blood Type)]를 구상하고, 여름에는 밴드가 직접 프로듀싱하여 앨범을 레코딩한다. 11월에는 모스끄바의 루즈니꼬프(Luzhnikov) 경기장에서의 콘서트에서 발생한 문제로 모스끄바에서 공연을 1년간 금지당한다.

1988년
[Gruppa Krovi(Blood Type)] 앨범이 발표되고 영화 [Igla]가 개봉되어 끼노와 빅또르 쪼이는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끼노마니아’ 현상이 발생한다. 연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발레리 레온띠예프(Valeriy Leontief)의 스튜디오에서 [Zvezda Po Imeni Sontse(A Star Named Sun)]의 레코딩 작업을 한다.

1989년
미국 공연을 가진 뒤에 오데사에서 개최된 록 페스티발에 참가하고, 그에 이어 빠리에서 [Posledniy Geroi] 앨범을 레코딩한다.

1990년
일본 공연을 가지고, 10만 관중을 동원한 6월 24일 루즈니꼬프 경기장에서의 대규모 공연을 마지막으로 러시아 전국 투어를 마친다. 쪼이와 까스빠리얀은 새 앨범구상을 위하여 7월 초에 유르말(Yurmal)의 별장으로 기타와 스튜디오 세트만을 가지고 들어가 데모 레코딩을 한다.

1990년 8월 15일 12시 28분
빅또르 쪼이가 라뜨비아의 리가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새 앨범의 데모 테이프는 기적적으로 보존되어 있어서 나머지 멤버들이 비디오 필름 스튜디오에서 10월과 11월 두 달에 걸쳐 쪼이의 노래에 연주를 덧입히고 매스터링하여 연말에 앨범을 발매한다. 그후 밴드 끼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Discography

* 필자 주
빅또르 쪼이와 끼노의 앨범을 포함하여 1980년대까지 러시아에서 제작된 앨범들은 ‘법대로’ 하면 대부분 비공식 음반이다. 서양식의 ‘레이블’ 개념도 불투명하다. 따라서 여기에 적힌 연도는 레코딩된 연도이고 음악이 ‘출판’된 연도는 아니다. 끼노의 음반들은 1996년 모로즈 레코드(Moroz Records)가 정식 출판권을 보유하고 CD로 재발매되었다. 따라서 아래 디스코그래피에서 기타 편집음반을 제외한 정규 스튜디오 앨범과 라이브 앨범은 모두 1996년에 ‘출판’되었다. 빅또르 쪼이 생전에도 끼노의 몇몇 음반들이 국영 레이블 멜로디아를 통해 비닐 LP로 발매된 사실이 있으나 당시는 명목상 사회주의 체제(사견으로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라고 말하고 싶다)였으므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에 근거한 저작권과 판권 개념은 모호하다.

한국에서는 [Eto Ne Lyubovy (That’s Not Love)](1985)가 1992년, [Cherniy Albom (The Black Album)](1990)가 1994년 예당음향에서 발매된 일이 있다. 이 두 앨범은 몇 가지 점에서 불만족스러운데 이에 대해서는 음반 리뷰에 서술된 내용을 참고하라. 예당음향은 끼노의 다른 앨범들을 발매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한편 [The Last Hero]와 [Change]라는 두 종의 편집음반이 삼성영상사업단 산하의 레이블 나이세스(Nices)에서 발매된 일이 있다. 이 두 종의 음반은 [Posledniy Geroi(The Last Hero)](1989)를 기초로 하고 있지만 수록곡의 선정에서 적지 않은 편집을 거쳤다. 더구나 삼성뮤직이 음반산업에서 퇴출함에 따라 정상적 경로로 구매하기도 힘들어졌다.

마지막으로 이하의 표기는 러시아어의 알파벳을 영어의 알파벳으로 ‘음차’한 것이다. 이는 러시아어 폰트가 제대로 지원되지 않는 기술적 문제 외에 이 글의 필자 한 명을 포함하여 러시아어가 ‘까막눈’인 사람에게는 러시아 표기가 무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정확한 표기가 있으면 향후 고쳐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빅토르 최’ 같은 엉터리 표기가 사라지는 것이다.

스튜디오 앨범
[45], 1982
[Неизвестные Песни / Neizvestnye Pesni (Unknown Songs)], 1982
[46], 1983
[Начальник Камчатки/ Nachalnik Kamchtki (The CHief of Kamchatka)], 1984
[Это Не Любовь…/ Eto Ne Lyubovy (That’s Not Love)], 1985
[Ночь / Noch’ (The Night)], 1986
[Группа Крови / Gruppa Krovi (Blood Type)], 1988
[Последний Герой / Posledniy Geroi (The Last Hero)], 1989
[Звезда По Имени Солнце / Zvezda Po Imeni Sontse (A Star Named Sun)], 1989
[Черный Альбом / Cherniy Albom (The Black Album)], 1990

라이브 앨범
[Майк Науменко и Виктор Цой / Maik Naumenko i Viktor Tsoi (Maik Naumenko And Viktor Tsoi], 1983
[Домашний Концерт/ Domashniy Kontsert (Home Concert)], 1985
[Виктор Цой – Акустика/ Viktor Tsoi – Akustika (Viktor Tsoi – Acoustic)], 1984
[Концерт В РокКлубе/ Kontsert v Rok Klube (The Concert at ‘Rock Club’], 1985
[Акустический Концерт / Akusticheskiy Kontsert (Acoustic Concert)], 1987

기타 앨범
[Легенда Русского Рока / Legenda Ruskovo Roka(Russian Rock Legend)], 1996
[Лучшие Песни 82-88 / Luchshie Pesni 82-88(Best Songs 82-88)], 1999
[Лучшие Песни 89-90 / Luchshie Pesni 89-90(Best Songs 89-90)], 1999
[История Этого Мира / Istoria Etovo Mira(History of This World)], 2000

관련 글
Kino, [45] 리뷰 – vol.3/no.16 [20010816]
Kino, [Neizvestnye Pesni (Unknown Songs)] 리뷰 – vol.3/no.16 [20010816]
Kino, [46] 리뷰 – vol.3/no.16 [20010816]
Kino, [Nachalnik Kamchatki (The Chief of Kamchatka)] 리뷰 – vol.3/no.16 [20010816]
Kino, [Eto Ne Lyubovy (That’s Not Love)] 리뷰 – vol.3/no.16 [20010816]
Kino, [Noch’ (The Night)] 리뷰 – vol.3/no.16 [20010816]
Kino, [Gruppa Krovi (Blood Type)] 리뷰 – vol.3/no.16 [20010816]
Kino, [Posledniy Geroi (The Last Hero)] 리뷰 – vol.3/no.16 [20010816]
Kino, [Zvezda Po Imeni Sontse (A Star Named Sun)] 리뷰 – vol.3/no.16 [20010816]
Kino, [Cherniy Albom (The Black Album)] 리뷰 – vol.3/no.16 [20010816]
이글라=러시아판 트레인스포팅 혹은 트레인스포팅=영국판 이글라 – vol.3/no.16 [20010816]

관련 사이트
빅또르 쪼이 관련 러시아어 사이트
http://kinoman.net
http://as.stu.lipetsk.ru/~dik
http://www.music.ru
빅또르 쪼이 국내 팬 사이트
http://my.netian.com/~megathon
빅토르 쪼이를 비롯한 러시아 뮤지션을 소개하고 mp3를 제공하고 있다.
빅또르 쪼이 가사번역 사이트
http://dom.xocah.org:1919
한국어로 번역된 빅또르 쪼이의 가사를 볼 수 있고 끼노의 전곡을 감상할 수 있다.
빅또르 쪼이 다큐멘터리
http://www.crezio.com/kbsplus/videolib/video2_su_special1.htm
1995년 KBS [일요스페셜]을 통해 방영된 빅또르 쪼이 다큐멘터리의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