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Byrne – Look Into The Eyeball – Luaka Bop/Virgin, 2001 역할이 끝나버린 어느 혁신가의 회상록 뉴욕 펑크의 선구자 중 하나이자, 뉴 웨이브의 간판 중 하나인 토킹 헤즈(Talking Heads)가 영미 대중 음악 역사에 남긴 업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이른바 ‘아트 팝(Art Pop)’의 분야를 개척했다는 것. 즉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1978)를 들으면 알 수 있듯, 흥겹게 몸을 흔들게 하지만 머리를 쓰게도 만드는 고난도의 팝 음악을 구사했던 것이다. 이런 사운드는 1980년대 모던 록이 만개함에 따라 많은 밴드들이 채택하는 방법론이 되었다. 토킹 헤즈의 두번째 업적은, 영미 대중 음악 사상 처음으로 ‘월드 뮤직’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 [Fear Of Music](1979)의 수록곡 “I Zimbra”를 통해 시작한 토킹 헤즈식 월드 뮤직은, 다음 앨범인 [Remain In Light](1980)에서 정점을 이룬다. 나이지리아의 아프로 비트(afro-beat)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Remain In Light]의 등장으로, 1980년대 이후 대중 음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물론 예전에 이러한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이슬람 음악을 도입한 리처드 & 린다 톰슨(Richard & Linda Thompson)이라든지, 레게를 본격적으로 이입시킨 클래쉬(The Clash)와 폴리스(The Police)의 사례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토대를 확립시키고 본격화한 이가 바로 토킹 헤즈, 정확히는 앨범 [Remain In Light]였다. 아니, 더욱 정확하게는 이 앨범을 프로듀싱한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이제 영미 대중음악계 앞에 새롭게 놓인 화두는 아프리카 대륙의 음악이었고, 이를 시작으로 남미나 아시아 지역의 음악이 급속히 유입된다. 이와 같은 주요한 업적을 이룩한 뒤, 토킹 헤즈는 급격히 창작력을 잃어간다. 1980년대 중반에 내놓은 [Speaking In Tongues](1983)나 [Little Creatures](1985)에 드러난 음악적 야심이나 대중성 확보 의지를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창의성의 측면에선 어딘지 부족함이 엿보였다. 상황을 토킹 헤즈의 리더인 데이빗 번(David Byrne)으로 좁혀 보자면, 그는 훗날 U2나 제임스(James)의 경우와는 달리, 브라이언 이노의 강력한 핵우산을 벗어나서도 독창성을 유지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한 자신감은 처음엔 토킹 헤즈 활동과 자신의 단독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프로젝트 활동을 처음 할 무렵엔 브라이언 이노와의 합작품도 있었으나([My Life In The Bush Of Ghosts](1981)), 이후 그는 독자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의 활동은 주로 시각 및 행위 예술 분야와 관련된 배경 음악을 만드는 데 집중된다. 즉 무용 음악([The Complete Score From The Broadway Production Of ‘The Catherine Wheel’](1982)), 연극 음악([Music For “The Knee Plays”](1985)), 영화 음악(토킹 헤즈와의 합작품인 [True Stories](1986)와 [The Last Emperor](1987), [Married To The Mob](1988) 등)이 그것이다. 토킹 헤즈의 해산 이후, 그의 활동은 대체로 월드 뮤직을 기본으로 하여 전개된다. 즉 자신이 설립한 레이블 루아카 밥(Luaka Bop)을 통해 각국의 월드 뮤직 음반을 발매하는 한편, 아프리카 및 라틴 계열의 음악을 자신의 세계와 접목시킨 작품들을 내놓는다. 그러나 1990년대로 접어들며, 데이빗 번의 활동은 전성기였던 1980년대에 비해 두드러지게 저조한 양상을 보인다. 이는 루아카 밥 레이블 운영 등 사업적인 면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게 된 요인이 크겠지만, 더욱 중요한 요인으로는 아무래도 창작력의 한계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 그와 토킹 헤즈(와 브라이언 이노)가 이룩한 ‘아트 팝’과 ‘월드 뮤직’이란 분야는 1980-90년대를 거치며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규모 또한 커져서, 더 이상 신선하고 충격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월드 뮤직의 경우, 본고장 뮤지션들까지 가세하는 과열 양상을 보인 끝에, 이제는 참신하기는커녕 전통적인 팝이나 록 못지 않은 흔한 장르가 되었다. 이런 와중에, 데이빗 번의 음악 세계도 점차 명맥을 간신히 유지할 정도로 잦아들게 되고, 그나마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케스트라를 이용한 클래식적인 음악 세계([The Forest](1991)), 토킹 헤즈 시절로 돌아간 듯한 팝 록([Uh-Oh](1992)), 아프리칸 폴리 리듬과 소프트 팝이 혼미하게 엉킨 얼트 뮤직([Feelings](1997)) 등이 1990년대 데이빗 번의 방황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새 앨범 [Look Into The Eyeball]을 듣고있노라면, 40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토킹 헤즈 시절부터 1990년대 말까지 데이빗 번 음악 활동의 연대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 베테랑 뮤지션이 오랜만에 내놓는 앨범이어서 감회에 빠져 그랬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음반에 담긴 노래들이, 마치 지나온 날을 스스로 회고하듯,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한 스타일들이기 때문이다. 마치 음악의 언어로 된 자서전을 쓰듯, 데이빗 번은 약 30년에 이르는 자신의 음악 경력을 총결산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앨범을 만든 듯한 느낌을 준다. 예의 아프리카 리듬과 타악기가 노래 전체를 장악하는 “U.B. Jesus”, “The Great Intoxication”, “Desconocido Soy”, “The Moment Of Conception”, 토킹 헤즈 시절 초기부터 익히 들어왔던 지적이면서 유머러스하고 흥겨운 “Like Humans Do”, “Neighborhood”, 아기자기하고 상큼한 “Smile”, “Walk On Water”, “Everyone’s In Love With You”, 그리고 현악을 대폭 사용한 “The Revolution”, “The Accident” 등은, 토킹 헤즈와 데이빗 번에게 오랫동안 관심을 두었다면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심하게 말하면 마치 ‘컴필레이션’ 같다는 느낌마저 안겨준다. 추억을 되씹는 기분으로, 옛 시절의 향수를 만끽하는 심정으로 이 음반을 맞이하기엔, 반가움보다는 아쉬움이 앞선다. 토킹 헤즈와 데이빗 번이 전성기에 내놓은 명작을 들을 때면, 언제나 우리는 그들이 ‘혁신가’였다는 생각을 품기 때문이다. 자신의 역할이 끝난 혁명가의 회고록처럼 기운 빠지는 게 또 어디 있겠는가. 20010811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5/10 수록곡 1. U.B. Jesus 2. The Revolution 3. The Great Intoxication 4. Like Humans Do 5. Broken Things 6. The Accident 7. Desconocido Soy (with NAU from Cafe Taouba) 8. Neighborhood 9. Smile 10. The Moment Of Conception 11. Walk On Water 12. Everyone’s In Love With You 관련 사이트 David Byrne 공식 사이트 http://www.davidbyrne.com http://www.davidbyrne-virginrecords.com Talking Heads 한국 팬 사이트 http://korean.talking-head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