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2오! 부라더스 – 명랑 트위스트 – 카바레/드림비트, 2001

 

 

‘그때 이/그 곳’을 통해 ‘지금 여기’의 일상을 반추하다

한국 사회 문화 시스템(그런 게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사람들을 피곤하고 앙상하게 하는지, 한 발짝 벗어나면 별로 색다른 것도 아닌데 ‘당연’을 ‘신기’로 만들곤 해서 지루할 겨를이 없을 정도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관제 공연이나 방송 녹화나 자선 공연 말고) 작은 규모지만 자기 음악을 하고 있는 공연을 접하게 되면 일단은 신기해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뉴욕에는 지하철역에서 연주하는 이들이 거의 세션급’이라든지, ‘런던을 비롯한 영국 도시들에 널려 있는 ‘거리의 아이들’이 스타 뮤지션이 되는 게 다반사’라든지 하는 얘기는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니 각설하자.

요 몇 년 사이, 여름에 홍대 앞 거리를 지나가 본 사람 중 운 좋은 일부는 ‘이상한 밴드’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촌스런 의상을 입은 청년들 몇몇이 올리브 베이커리란 빵집(같이 안보이지만) 앞 빈 공간에 간단한 악기, 앰프 정도 갖다 놓고 노래 없이(당연히 랩도 없이) 연주하는 모습 말이다. 그들은 멘트도 없이 로큰롤, 서프(surf) 뮤직, 트위스트를 비롯한 라틴 계열의 음악 등 흥겨운 댄스 음악을 연주하고, 느닷없는 거리의 음악 소리에 걸음을 멈춘 사람들은 더러는 서서 더러는 주저앉아서 음악의 청량감을 만끽하는 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비록 사람들이 춤추는 경우는 드물지만, ‘정작 이런 때 사람들이 남의 눈치 안보고 거리낌없어지기가 어디 쉬운가’는 생각에 미치면 그리 떨떠름할 필요는 없다. 현재로서는.

그렇게 한 여름 오후의 짜증스런 일상을 경쾌하게 수식하던 밴드가 그들의 계절인 여름의 복판에 데뷔 앨범을 냈다. 밴드 이름은 ‘오! 부라더스’, 앨범 이름은 ‘명랑 트위스트’. 평소 홍대 앞 인디 씬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라면 카바레에서 연주하다 막 나온 듯한 복장의 이 밴드가 ‘오르가즘 부라더스'(혹은 ‘절정 형제들’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이들이라는 걸, 그리고 같은 소속사였던 볼빨간과 마찬가지로 (맥락은 다소 다르지만) 즐겁고 재미있는 음악을 들려주는 이들이라는 걸 간파했을 것이다.

오! 부라더스는 1998년 인디 레이블 ‘카바레(cavare)’의 ‘몸통’이자 ‘스튜디오 마스터’인 이성문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경음악단’이다. 그동안 클럽 공연이나 거리 공연 같은 단독 공연뿐만 아니라 ‘춘천 국제 마임 페스티벌’이나 ‘독립예술제’ 같은 페스티벌, 대학 축제, 패션쇼 등에 참여하며 ‘남녀노소’에 흥겨운 연주곡들을 선사해왔다. 지난 해에는 ‘카바레’ 소속 밴드들과 함께 서울 지하철 문화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오! 부라더스의 [명랑 트위스트]는 재킷에서부터 특유의 색채를 발한다. ‘우리는 절정에의 인도자!’라든지 ‘스테레오’라는 문구나 키치적인 재킷 사진은 그야말로 맛보기다. 볼빨간의 EP [지루박 리믹스 쑈!]에서 이미 키치적인 글 솜씨를 선보인 바 있는 돌코는 이 앨범에서도 유치찬란한 카피 문구를 날린다.
‘무엇이 이토록 우리들을 열정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 싱싱하고 활기에 차야할 우리들의 젊음이… / 아름다우면서도 구김살 없는 우리들의 청춘이… / 사랑의 실패와 인생의 어두운 유혹에 가슴 아파하기 때문이어라 / 젊음이라는 고속도로가 있다면 그대들 젊은 청춘들과 무작정 달리고 싶으다 / 젊은이들의 인기와 벗으로 뒷받침하는 오! 부라더스 올림.’

untitled3속지에서, 과장된 제스처의 사진 밑에 달린 멤버 소개 문구 또한 가관이다.
‘연주시에는 호랑이 같으나 평소에는 자상하게 동생들을 감싸는 책임감 강한 팀의 맏형이다'(이성문, 베이스), ‘유우머 감각 만점의 성격으로 팀의 분위기를 명랑하게 마드는 센스 있는 젊은이이다'(주현철, 보컬·기타), ‘면도날 같은 외모와는 달리 수줍음을 많이 타는 샤이 보이이다'(임잔희, 기타), ‘모든 그룹들에서 탐내는 브라스계의 신성으로 겸손한 성격 또한 자랑거리이다'(이성배, 색소폰), ‘팀의 재간둥이로 아가씨 팬들에게 인기가 제일 높으다'(안태준, 드럼).
1970년대 잡지에서 방금 건져 올린 듯한 문구들은 요즘 오! 부라더스가 정기적으로 벌이고 있는 ‘명랑 트위스트 파티’의 흑백 홍보 ‘찌라시’에도 일관되게 이어져 있다.
‘절정의 꼭대기에서 그대는 혼절!, 죄라면 젊음을 담보로 달린다는 것 뿐’, ‘각종 춤 실력 경연대회 푸로그람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 부라더스와 즐거운 레크레이션’.

오! 부라더스의 의도적인 유치함과 키치적인 지향을 감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는 앨범에 담긴 음악과도 상통한다. 일단 “포스트맨 블루스”, “명랑 트위스트”, “청진항의 파도”, “순정”, “축제”, “몽블랑” 등 곡명들을 훑어보면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복고 풍 정도가 아니라 명백히 과거형이다.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이, 트위스트, 서프 뮤직, 차차차, 로큰롤, 리듬앤블루스(요즘의 세련된 R&B가 아니다) 등 1950-70년대 미국과 카리브해의 음악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기타, 베이스, 드럼 어느 하나 튀는 법 없이 친숙한 옛 댄스 음악을 들려주는데, 아무래도 대부분의 트랙에 출몰하는 색소폰이 이채로움을 더한다.

그동안 이들이 들려준 음악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수록곡의 반 이상이 가사가 있는 노래라는 점이다. 스스로 ‘연주 그룹에서 보컬 그룹으로 거듭났다’고 표현하는데, 가사가 들어갔다고 이들의 음악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단순하고 직설적인 문체의 가사는 노골적으로 춤추고 흔들고 놀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은유나 상징, 시(詩)적인 가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런 건 개한테나 갖다주라는 듯.

오! 부라더스의 음악이 실험적이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익숙한 느낌과 신선한 느낌, 전통적인 향취와 이국적인 향취를 동시에 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라운지(lounge)를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럽다. 전반적으로 1960-70년대를 풍미한 벤처스(The Ventures)를 떠올리게 하는 오! 부라더스의 ‘시대착오적인’ 음악은 기업형 댄스 가요가 장악하고 있는 가요계에 충분히 신선한 느낌을 준다. 또 아직 일렉트릭 기타가 주도하는 ‘쎈’ 록 음악이 주류인 인디 씬에서 바라봐도 마찬가지다. 비주류 음악이라고 중언부언할 필요 없이, 주변화된 그리고/또는 잊혀진 음악 문화를 끄집어내는 이들의 음악은 상대적으로 ‘얼터너티브’하다. 얼터너티브를 1990년대 그런지(grunge)를 중심으로 한 ‘장르’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또 ‘대안’이란 어의(語義)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거나 그걸 강요하지 않는 걸 전제로 한다면 말이다.

오! 부라더스는 ‘누구나 즐겁게 놀 수 있는 음악’, ‘건전한 댄스 문화와 즐기는 문화’를 지향한다고 밝힌다. 귀에 익지만 실제로 들을 기회는 거의 없는 음악, 룰과 패턴의 군무가 아닌 그리고 과시하기 위한 기교로서가 아닌 댄스를 지향하는 태도, 세련된 첨단의 이미지가 아니라 촌스럽고 유치한 통속적 정서는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그렇게 오! 부라더스는 ‘그 때 이 곳’과 ‘그 때 그 곳’을 통해 ‘지금 이 곳’의 일상을 오버랩한다. ‘권위’와 ‘기성’과 ‘다수’에 대한 반동의 흐름이 꼭 반항과 저항만이 아니라는 점도 덤으로 보여주면서. 20010807 | 이용우 djpink@hanmail.net

7/10

untitled4<늬우스 1> 오! 부라더스는 데뷔 앨범을 내기에 앞서 싱글 ‘테이프’ [Hippin’ Hoppin’ Twistin’]을 내놓았다. ‘카바레’ 레이블은 앞으로도 정규 앨범 발매 이전에 (한국에서 절대 안 통하는 듯한) 싱글 CD 대신 싱글 형식의 카세트 테이프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카바레’는 예전부터 (그들의 표현을 빌면) 비니루 시리즈(이성문, 볼빨간), 일명 싸바리 시리즈(LP 재킷 복원 CD, 코코어, 은희의 노을, 메리 고 라운드, 곤충스님 윤키)로 차별화된 CD 포장을 해온 바 있다.
<늬우스 2> 곧 개봉예정인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오! 부라더스가 출연했다. 배역은 극중 밴드가 동경하는 스타 밴드라고 한다.
<늬우스 3> 오! 부라더스는 매주 금요일 밤 홍대 앞이나 대학로에 위치한 ‘구락부'(club)에서 ‘명랑 트위스트 파티’를 열고 있다. ‘절정에의 인도’를 받을 사람들은 이들의 공식 사이트를 참조할 것.

* 이 글은 문화 웹진 컬티즌(http://www.cultizen.co.kr)에도 실려 있습니다.

수록곡
1. Holiday Girl (연주곡)
2. 부드럽게 달콤하게
3. 잡아요
4. 포스트맨 블루스 (연주곡)
5. Losing You
6. 5분 전 (연주곡)
7. 말 좀 해
8. 명랑 트위스트
9. 꿈에선 언제라도
10. 청진항의 파도 (연주곡)
11. 몽블랑 (연주곡)
12. 축제
13. 방구차 (연주곡)
14. Thank You, Girl
15. 순정 (연주곡)
16. My Jukebox
17. 날개

관련 글
이성문, [이성문의 불만] 리뷰 – vol.2/no.22 [20001116]

관련 사이트
오! 부라더스 공식 사이트
http://www.ohbrothers.com
카바레 레이블 공식 사이트
http://www.cavare.co.kr
카바레 레이블에서 발간하는 로파이(lo-fi) 웹진 [slo-motion] http://www.slomot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