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7샤크라(Chakra) – 한(恨) – Cream, 2000

 

 

이국적 취향의 재생산? 이국적 취향의 착취!

어떤 대상을 타자(他者)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가 단지 ‘욕망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어떤 대상을 타자화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지극히 혐오하거나 지극히 숭배하거나 하는 극단적인 측면을 부각하기 때문에 제법 위험한 태도이다. 부연하자면, 전자의 경우는 그것이 쉽게 ‘폭력’이 수반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후자는 대상의 특정 부분을 전체로 환원시키며, 그래서 대상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물리적이든 아니든) 마찬가지로 폭력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하지만 세계의 인식 주체가 이미 ‘근대화된 백인 남성’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이렇게 타자화된 대상은 (근대 도시인에게는) 농촌으로, (서양 사회에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그리고 (남성에게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타자화의 메커니즘은 ‘신비화’라는 방식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런 이유로, 인도라는 지리적 공간이 단지 지리적 공간으로서가 아닌 지친 영혼의 안식처 등으로 포장되는 일종의 ‘신비화’가, 아시아를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인간 영혼의 쉼터(이른바 ‘원시적인 어떤 것’) 쯤으로 여기는 서양인들뿐 아니라 우리 같은 ‘극동 아시아인’에게도 익숙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제법 씁쓸한 일이다(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의 역수입’의 대표적인 인물은 류시화가 아닐까 싶지만). 물론 이러한 경향은 음악이나 영화에서 더 잘 드러나기도 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을 한국에서 꼽아보자면, 샤크라(Chakra)의 1집 음반도 포함된다.

그룹 이름부터 힌디어에서 빌려온(힌디어로 샤크라는 인간 중심의 4가지 에너지인 성취, 매력, 창조, 평정을 뜻한다) 여성 4인조 댄스 그룹 샤크라의 데뷔 음반은 발표하기 전부터 인도의 악기 타블라(tabla), 인도 보컬 양식인 챈트와 카왈리 등을 몇몇 노래에 ‘도입’하는 등 인도 분위기의 음악을 준비한다고 떠들썩했다. 물론 이는 사실 전적으로 그룹의 기획/제작을 맡았고 최근 결혼설도 나오고 있는 이상민과 이혜영의 참여 덕분이었지만. 어쨌든 이 음반을 들어보면, 이국적 취향이 한국의 음악산업에서 어떻게 재생산되고 소비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인도 풍의 악기들과 보컬 양식을 ‘단순 차용’했다고 해서 그 음악을 인도 음악의 ‘변용’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것을 고아 트랜스(Goa trance)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악기 톤은 인도 풍이지만, 리듬 패턴과 보컬(랩)은 아프리카 풍인 다국적 스타일의 “인트로”만 들어도 이 음반이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어지는 타이틀곡 “한”을 들어보면 인트로에서 20초 동안의 챈트 샘플 뒤에, 어떤 장르를 내세워도 똑같은 패턴의 떼 창이 나오고 8마디 동안의 인도풍 보컬의 시뮬레이션을 제외한다면 ‘인터체인저블(interchangeable)’한 땐스 뽕일 뿐이다. 간주에 등장하는 지지리도 못하는 랩 뒤에 ‘아차, 이 곡이 인도음악이었지’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듯 8마디의 촌스러운 신시사이저 라인과 보컬 시뮬레이션이 한번 더 나올 뿐이다. 게다가 ‘인도 음악을 표방했다’는 이 앨범에서는 “한”, “Champion” 등 몇 곡을 제외하고는 인도 냄새조차 나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음반 판매보다는 화보 촬영 등의 ‘이차적’ 이윤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목적일 매니저나 프로듀서가 별 반응을 보일 리 없을 것이다. ‘사기 당했다’는 기분을 밝히면 ‘그거 갖고 속아? 한 두 번 속았어? 순진하긴’이라는 반응이나 들을 것 같아서 그만두고 싶지만, 이들의 2집 음반의 음악적 컨셉트가 ‘아프리카 음악’이라는 홍보 문구를 듣고 나면 ‘이 경우는 좀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문화라는 것이 그 사회의 특정한 조건들로부터 발생하고 발전한다는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전제된다면 특정 문화 양식을 ‘빌려’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국 음악산업에서 인도음악을 빌려오는 방식은 악덕 제조업체 사장들이 이민노동자를 빌려와서 ‘착취’하는 것과 유사해 보인다. 갈기갈기 찢고 여기저기 자르고 필요 없어지면 버린다. 이국적 취향의 재생산 그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그것이 일종의 착취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방식의 착취를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럽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일 지도 모른다. 20010729 | 차우진 djcat@orgio.net

3/10

수록곡
1. Intro
2. 한
3. 사랑징후
4. Why
5. Make A Love
6. Fantasy
7. Champion
8. 결심
9. Hey U
10. 이별징후
11.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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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5): 인도 팝(indipop)으로 돌아온 아시안 비트 – vol.3/no.15 [20010801]

관련 사이트
샤크라 공식 사이트
http://chakra.ista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