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영화음악

인도에도 대중음악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인도에 ‘팝 음악’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좀 복잡해진다. 무엇보다도 인도의 대중음악 대부분은 ‘영화음악’이고,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팝 음악’과는 상이한 시스템을 통해 생산되고 소비되기 때문이다. 즉, 개별 아티스트의 음반을 구매하여 음향기기로 재생하는 것을 듣는 것보다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면서 배우가 부르는 노래들 듣는 것이 인도인들에게는 훨씬 더 익숙하다. 시장의 통계를 보더라도 1999년 인도 음악산업의 매출액에서 영화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70%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가 인도 영화에 대해 상세히 설명할 자리는 아니지만 전반적 특징에 대한 지적은 필요해 보인다. 간단히 말해서 인도의 대중영화 대부분은 사랑, 우정, 모성, 운명 등 보편적인 테마를 담은 ‘멜로드라마적 뮤지컬’이다. 그래서 영화의 테마는 보편적이지만, 스타일이나 기법은 부자연스럽다. 스토리 역시 일관된 순서 하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두서없이’ 진행된다. 인도 영화에 나타난 이미지가 현실이 아니라 허구라는 사실을 인도인들이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도 영화의 중요한 기능은 ‘팬터지의 제공’이고, 이는 엔터테인먼트와 도덕적 교화를 모두 수행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인도 영화의 장르와 기법을 ‘양념’이라는 뜻의 마살라(masala)라고 표현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음식을 요리할 때 양념을 넣듯이, 영화의 흥행을 위해 춤, 노래, 멜로드라마, 스턴트, 전투, 카바레 장면, 과장된 유머를 ‘주어진 공식대로’ 배합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 영화에서 노래와 음악은 단지 ‘배경 음악’이 아니라 영화의 내용과 그것의 욕망을 표현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인도 영화의 히트 공식이 “한두 명의 스타, 여섯 곡의 노래, 세 개의 춤”이라는 말도 이런 점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특이한 사실은 인도 영화에 나오는 노래의 목소리가 실제 배우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배우는 ‘플레이백 가수(playback singers)’가 미리 녹음된 것에 맞추어 ‘립씽크’를 할뿐이다. 마치 동시녹음 이전의 한국 영화에서 배우의 목소리들을 성우가 ‘더빙’했던 것이나 비슷하다. 1930년대까지 플레이백 가수의 이름은 ‘크레딧’에조차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모하메드 라피(Mohammed Rafi), 무케시 쿠마르(Mukesh Kumar) 같은 남성 보컬리스트들, 지타 두트(Geeta Dutt), 라타 망게스카르(Lata Mangheskar) 같은 여성 보컬리스트들은 슈퍼스타의 지위를 누려왔다. 이들은 ‘골든 보이스(Golden Voice)’라는 칭호를 들으면서 인도 영화의 황금시대인 1940-50년이래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네스북의 ‘The most recorded artist’ 항목에는 라타 망게스카르가 “솔로, 듀엣, 코러스 등을 합하여 30,000여 곡을 레코딩했다”는 기록이 올라 있다. 그러나 한 저널리스트에 의하면 인도 40년의 영화 역사에서 레코딩된 곡은 35,000여 곡 ‘밖에’ 없다고 하므로 기네스북의 기록은 다소 과장으로 보인다. 또한 라타 망게스카르보다 레코딩을 더 많이 했다고 인정되는 인물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그녀의 여동생인 아샤 보슬(Asha Bhosle)이다. 1933년생인 아샤 보슬은 10살 때부터 레코딩을 시작해서 극히 다양한 창법과 음색은 물론 여러 가지 언어로 된 가사를 소화해낸 인물로 유명하다.

20010801022226-series01-ashabhosle사진: ‘인도의 그랜드마 마돈나’ 아샤 보슬
이런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최근 앨범 [Janam Samjha Karo](1997)에서 보듯 그녀가 영화에 의존하지 않는 팝 스타로서의 경력도 개척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그녀는 “인도의 할머니 마돈나(The Grandma Madonna from India)”, “로큰롤 할머니(Rock’n’roll Grandma)”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나이가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신예 팝 스타들과 경쟁하고 있다. 물론 이때 ‘할머니’나 ‘로큰롤’이라는 단어는 한국어 단어가 주는 어감과는 조금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방그라 그룹 알랍(Alaap)이 자신의 앨범 [Chham Chham Nachdi Phiran](1990)에 그녀를 초빙하여 함께 작업한 사실이나 코너숍(Cornershop)이 자신들의 히트곡 “Brimful Of Asha”에서 그녀를 칭송한 사실만 보더라도 그녀의 영향력이 인도 국내의 기성 세대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sha Bhostle – Mera Pyar Shalimar

1990년대 인도 팝: 영화 음악에 대한 대안?

여기서 인도 팝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정의할 필요가 있겠다. 앞서 귀띔했던 것처럼 인도의 ‘팝’이란 영화음악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에서 제작되는 음악을 말한다. 영화음악이 인도의 ‘전통적’ 대중음악이자 ‘주류’ 대중음악이라면 인도 팝이란 상대적으로 최근에 탄생한 음악이다. 한 사이트의 설명처럼 인도 팝이란 “라가부터 레게, 베이스 비트[‘유로 비트’를 지칭하는 듯 – 역자 주]부터 방그라에 이르는 다양하고 절충적인 음악적 영향의 결합”이다.

인도의 ‘팝’ 음악은 현재 인도 음악산업의 15-2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고 다른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다른 부문이란 앞서 언급했듯 70% 수준의 시장점유율을 가진 영화음악, 그리고 10% 미만의 비중을 가진 ‘국제적(외국) 음악’과 ‘클래식 음악’이다. 이렇게 팝 음악이 팽창하고 있는 데에는 소니(Sony)나 BMG 등 다국적 메이저 음악기업들이 ‘현지화’에 성공했다는 점 외에도 MTV 인디아, 채널 V, 뮤직 아시아(Music Asia) 등의 음악 채널들의 대중화도 크게 공헌했다. 영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인도계 이민자들이 국제적 팝과 혼합한 음악적 조류를 창조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인도 내에서도 과거와는 전혀 다른 음악이 만들어진 것이다.

몇몇 슈퍼스타들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면, 달러 메헨디(Daler Mehndi)는 방그라에 레게와 랩을 믹스한 ‘방그라 팝’을, 수흐비르(Sukhbir)는 방그라에 하이 에너지와 테크노 등 댄스 리듬을 섞은 스타일을, 바바 세갈(Baba Sehgal)은 힌두어와 영어를 뒤섞은 힝글리시(hinglish) 랩을 각각 선보이고 있다. 이런 슈퍼스타들 외에도 ‘무수한’ 스타들이 1990년대에 명멸했다는 점에서 인도 팝은 1990년대 한국의 ‘댄스가요’와 비슷하다. 물론 인도 팝은 ‘한국 팝’과 달리 지상파 TV가 아닌 영상매체에 의존하고 있고, ‘자국의 음악적 영향력’이 명확하다는 중요한 차이가 있지만.

Daler Mehndi – Ek Dana

그렇지만 평범한 인도 팝은 TV 지향적이고 개별 아티스트의 ‘퍼스낼러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1990년대 아시아권에서의 음악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그 결과 새로운 세기가 바뀌며 포화된 시장에서 멀티 플래티넘 앨범을 발매했던 슈퍼스타들의 인기가 급락하는 현상도 보이고 있다. “아티스트와 음악회사 모두 인도 팝 앨범들의 창조와 마케팅에서 보다 많은 프로페셔널리즘을 요청하고 있다”(http://www.culturopedia.com/Music/indipop.html)는 말이 현재 인도 팝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으로 보인다.

인도 팝의 지구화

2000년대 이후 어떤 변화를 보일 지는 모르지만 인도 팝이 가지는 의미는 ‘로컬 팝(local pop)’ 이상은 아닐 듯하다. 인도의 팝 음악과 영국과 북아메리카 등지에 있는 인도계 이주민의 음악은 상호영향을 주고받겠지만 그것을 ‘동일한 국민의 음악’으로 부를 수는 없을 듯하다. 인도 대륙에 사는 주민들이 들으면 서운할지 모르지만 아파치 인디언은 자신의 음악을 “매우 영국적인 사운드”라고 불렀고, 펀자비 바이 네이처도 자신의 음악을 “아시아 음악이 아니라 캐나다 음악”이라고 못박았다. 다른 한편 인도 팝 음악인들의 음악은 자신들은 ‘서양화된 음악’이라고 생각하지만 세계시민의 귀에는 ‘인도 음악’으로만 들릴 뿐이다. 이는 인도 팝의 음악적 질이 낮다는 뜻이 아니라 대중음악의 글로벌 시스템에 의한 음악적 장르들의 위계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20010801022226-series02-junoon사진 : 주눈, 파키스탄의 U2 = 수피즘(Sufism) + 카왈리 + 하드 록 + 타블라와 돌 드럼
그런데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대표적인 두 사례는 콜로니얼 커즌스(Colonial Cousins)와 파키스탄 출신의 주눈(Junoon)이다. 이들의 출신 지역이나 활동 중심지는 인도 대륙이지만 음악은 국제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콜로니얼 커즌스의 경우 하리하란(Hariharan)과 레즐리 루이스(Leslie Lewis)라는 두 음악인의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 하리하란은 가잘(ghazal)이라고 불리는 인도 고전음악의 보컬리스트였고, 레즐리 루이스는 블루스와 재즈 등의 프로듀서로서 활동하던 인물이었다. 1994년 [Colonial Cousins]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앨범은 하리하란의 고전적 보컬과 레즐리 루이스의 서양적 프로듀싱이 혼합된 ‘팝 음반’이었다. 가사는 영어였지만 곡조는 인도 풍이었고, 리듬은 테크노, 록, 블루스 등으로 변하지만 ‘느낌(feel)’은 인도적이었다. “인도의 강한 에쓰닉 사운드를 가진 메인스트림 팝”이라는 것이 이들의 음악을 적절하게 설명해 준다. 음악의 성격에 맞추어 이 앨범은 국내 시장보다는 미국과 캐나다에 거주하는 비(非)이민계 인도계 주민들을 겨냥하여 제작되었고, 의도에 맞게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1999년의 앨범 [The Way We Do It]은 이들의 음악적, 문화적 지향을 한 눈에 짐작할 수 있듯 더욱 ‘서양화된’ 팝의 색채가 강해졌다.

Colonial Cousins – Rhythm of the World(Video)

콜로니얼 커즌스가 ‘팝 그룹’이라면, 파키스탄 출신의 주눈은 ‘록 밴드’다. 주눈은 ‘로컬 언어’인 우르두어를 가사로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로컬 밴드’에 머물지 않는 특이한 존재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여름에 열리는 ‘Roskilde’ 페스티벌에서 오아시스, 펄 잼, 부쉬, 펫 샵 보이즈 등과 같은 무대에 올랐다는 경력이 이들의 지위를 대변해 준다. 실제로 [Azaadi](1997)는 이들이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적 영웅으로 ‘돌파’하는 앨범이 되었다. 주눈은 살만 아흐메드(Salman Ahmed: 기타), 알리 아즈마트(Ali Azmat: 보컬), 브라이언 오커넬(Brian O’Connell: 베이스)로 구성된 트리오인데, 브라이언은 미국계이고 살만과 알리 역시 미국에서 살다온 성장배경이 있다. 이런 복잡한 성장배경답게 주눈의 음악에서는 카왈리(Qawwali) 풍의 보컬이나 타블라와 돌 같은 타악기 소리가 에쓰닉한 느낌을 주지만 그게 전면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하드 록 스타일이면서도 ‘모던’하게 프로듀싱된 록 사운드, 그리고 알리 아즈마트의 격정적인 보컬이 더욱 인상적이다, [New York Times]의 존 패럴스(Jon Pareles)가 “파키스탄의 U2″라고 말한 것이 가장 정확한 비유일 것이다.

Junoon – Heer (video)

이들 외에도 영화음악가 A.R. 라만(A.R. Rahman) 역시 인도 국내에서 영화음악의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낸 데 이어,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 함께 앨범 [Ekam Satyam]을 제작했다. 2000년에는 그의 ‘팬’ 중의 한 명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er)가 볼리우드 영화를 각색한 뮤지컬 [Bombay Dreams]의 음악을 라만에게 부탁하여 함께 작업했다. 라만은 이런 명망가들뿐만 아니라 언더그라운드 성향이 강한 런던의 인도계 음악인과도 교류하여, 탤빈 씽의 프로젝트 [Anokha: Soundz of the Asian Underground]에도 한 트랙을 수록한 바 있다. 음악적 마법사(Musical Wizard)라는 별명답게 라만은 어떤 장르의 음악인들과도 조화를 이루는 존재로서 이미 국제적 존재이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우리는 펀잡의 민속음악인 방그라부터 출발했다. 지난 내용을 정리하자면, 20세기 후반 방그라가 영국과 북아메리카의 인도계 이주민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설명했고, 그러면서 방그라가 레게, 힙합, 테크노 등 ‘서양적’ 팝 음악과 혼성교배되는 양상들도 고찰했다. 또한 펀잡으로부터 유래한 방그라 외에도 벵골 음악, 힌두스탄 음악 등도 나름의 국제화의 길을 개척했다는 점도 설명했다. 이 음악들은 ‘민속’ 음악, ‘클래식’ 음악, ‘대중’ 음악 등으로 각각 분류할 수도 있지만 삼자 사이에 ‘크로스오버’가 나타나고 있음도 볼 수 있었다. 이런 경로와 더불어 인도 대륙 내부에서도 팝의 새로운 조류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이 글에서 간략히 소개했다. 이 글에서 다룬 음악들은 ‘아시아에 기원을 둔 음악적 전통’이 세계의 음악문화에 ‘글로벌’한 영향을 미친 최초의 사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인도에 기원을 둔 음악이 현대의 인류에 대해 가지는 의미는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나의 짧은 인류학 지식을 동원하면 인도인은 유럽인과 더불어 유사한 골상구조와 언어문화를 가진 존재들이다. 그래서 인도에 기원을 둔 음악을 ‘아시안 비트’라고 표현했던 일 역시 서양인들의 사고에서 ‘자신들과 가장 가까운 아시안’을 아시아인의 스탠더드로 삼았다는 혐의가 든다. 그렇다면 한국인을 포함한 나머지 아시안들(몽골로이드?)의 음악 문화는 아직도 가장 탐사되지 않은 영역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그 일은 언제 할 수 있을까. 아니, 그건 과연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그럴 수 있을 때까지 아시아의 음악적 전통이 남아 있으려나…. [끝] 20010724 | 신현준 homey@orgio.net

시리즈 차례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1): 타블라를 두드리면서 춤추는 ‘영국인’들 – vol.3/no.11 [20010601]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2): 방그라, 드럼 머신과 레게를 만나다. – vol.3/no.12 [20010616]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3): 정치 선동 그리고 파란 눈의 ‘문화적 아시안’들 – vol.3/no.13 [20010701]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4): 신대륙으로 건너간 아시안 비트 – vol.3/no.14 [20010716]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5): 인도 팝(indipop)으로 돌아온 아시안 비트 – vol.3/no.15 [20010801]

관련 글
Cornershop, [When I Was Born For The 7th Time] 리뷰 – vol.3/no.15 [20010801]
OST(Nusrat Fateh Ali Khan & Roger White), [Bandit Queen] 리뷰 – vol.3/no.15 [20010801]
Junoon, [Azadi] 리뷰 – vol.3/no.15 [20010801]
Junoon, [Parvaaz] 리뷰 – vol.3/no.15 [20010801]
샤크라(Chakra), [한] 리뷰 – vol.3/no.15 [20010801]

관련 사이트
인도 팝에 관한 몇 개의 사이트
http://www.culturopedia.com/Music/indipop.html
http://www.dhadkan.com
Asha Bhosle 사이트
http://asha-bhosle.tripod.com
Junoon 공식 사이트
http://www.junoon.net
http://www.jun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