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6월 7일부터 7월 6일까지 서울 종로 1가 SK 빌딩에 있는 ‘아트센터 나비’에서는 영국의 현대 음반 커버 디자인의 ‘작품’들을 원본으로 만날 수 있는 ‘사운드 디자인 플러스(Sound Design Plus)’ 전(展)이 열렸다. 이 전시는 영국 문화원 본부의 기획으로 지난 1년간 아시아 지역을 순회하며 열린 ‘사운드 디자인 투어(Sound Design Tour)’의 한국 전시로서, 홍대 출신의 설치미술가 김기철의 작품이 추가된 ‘플러스’ 형태이다. 전시가 끝난 지 한 달이 가까이 되었지만, 뭐 [weiv] 필진은 일년 지난 음반에 관한 리뷰도 쓰는데 이 정도면 그렇게 느린 편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뷰’를 잘 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정통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글도 많이 읽어보는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은 상식이지만 필자는 ‘전시회’에 대해서는 상식 이하의 리뷰를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CD만 사도 벅찬데 미술까지 신경 쓸 여유가 있으려면 재벌 2세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지 않은가. 차라리 현대 미술 전시회라면 미술책 찾아서 리뷰는 아니더라도 대충 ‘안내’라도 하겠지만 이번 전시는 더더욱 문외한인 ‘디자인’이라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보도자료 받아서 신문처럼 쓸 수도 있었지만 이미 신문에 기사가 나와서 그렇게 했다가는 ‘표절’ 의혹만 받을 것 같다. 혹시 이런 정보가 궁금하신 분은 리브로 웹진 [부커스(Bookers)]에 실린 기사 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래서 생각해 본 끝에 그냥 ‘둘러보는’ 식으로, 말하자면 미국 안 가본 사람에게 ‘디즈니월드 가면 이런 게 있고 저런 게 좋더라’는 느낌으로 써 보고자 한다. [weiv]는 디자인협회 세미나장도 아니고 학회도 아니니깐 이 정도 수준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피차 좋을 것 같다.

참고로 1970년대의 위대한 음악만 다루는, 하지만 얼마 전에 폐간된 [예술대중음악 Art Rock]이라는 잡지에 앨범 커버 디자인에 대한 특집이 몇 차례 실린 적 있다. 제대로 읽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신기한’ 류의 커버(육각형이라던지 조립식이라던지), 아니면 ‘심각한’ 류의 커버 두 종류만 소개하는 것 같아서 이번 전시와는 큰 관련도 없고 별 도움도 되지 않았다.

리뷰 쓸 생각 반, 안 쓸 생각 반으로 전시회에 갔더니 외부 강사가 진행하는 강좌가 두 번 있어서 내친 김에 강좌까지 모두 참석했다. 특히 디자이너 임근영의 두 번째 강좌는 (비록 빨리 끝내서 아쉬웠지만) 각각의 LP 커버의 의도나 형식적 측면을 하나 하나 설명했기 때문에 리뷰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강좌 내용으로부터의 인용은 일일이 밝히지는 않겠다). 이런 식으로 세 번을 가게 되니 대충 장점도 보이고 단점도 눈에 띄었다.

우선 미술관 자체는 상당히 좁았지만, 75점의 12인치 LP 및 몇 장의 CD를 전시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긴 이 정도 공간을 ‘미술관’으로 얻어내는 것도 한국의 환경에서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SK 빌딩은 대기업 건물답게 깨끗하고 비싼 시설로 보였는데, 문제는 ‘아트센터 나비’라는 곳이 이 건물 4층에 있어서 양복과 넥타이 차림의 나이 지긋하고 높으신 분(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니 마치 남의 고등학교에 우리 학교 교복 입고 들어간 것처럼 어울리지 않아 기분이 묘했다. 수위 아저씨도 대충 ‘옷만 입고 나온’ 필자를 보고 어디 가냐고 심각하게 물어본 것으로 보아, 앞으로 대기업이 하는 일에 참석하려면 정장을 꼭 입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땅의 문화예술(정확히는 ‘문화관광’)이 삶이라는 전쟁터를 잠시 잊고 편안한 휴식을 구가하는 곳이라면, 이 미술관이야말로 ‘체험 (치열한) 삶의 현장’을 직면하고 있어서 몹시 대조적이었다. 뭐 문화와 관광이 같은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나라니 이런 전시장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도심 속의 쉼터’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 같다.

잡소리가 조금 길어졌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것은 작품들 이전에 무선 헤드폰이었다. 깜짝 놀라기도 했고 반갑기도 해서 설명을 보니 작품 앞에 서면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모든 작품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이런 배려는 한국에서는 획기적인 일이 아닌가 싶다. 헤드폰을 쓰고 들어가니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인 [Dark Side Of The Moon](1973)이 먼저 눈에 띄었다. 옛날 음악이기는 하지만 빌보드 차트에 최장기간 올라 있던 앨범답게 요즘에도 인기가 좋다. 집에서 무심코 CD 커버를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여기 와서 ‘오리지날’ LP 커버를 보니 크기가 클수록 감동도 크다는 것을 알았다. 확실히 LP의 아우라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CD 커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20010801125545-1시대 순서대로 전시가 되어 있기 때문에 처음 10장, 아니 처음 ’10점의 작품’들은 핑크 플로이드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예스(Yes) 등 ‘한국 취향’의 그룹들이 대부분인데, 앨범 커버 또한 그들의 ‘위대하시던’ 음악마냥 깊은 의미를 담고 있을 듯한 디자인이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센세이션하고 상징적인 것(Led Zeppelin), 혹은 초현실적인 풍경화(Yes) 등이 그 예이다. 다만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1975) 앨범은 놀라운 점이 있어서 임근영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기로 한다.

“이 앨범은 앞면과 뒷면 그리고 속표지(inner sleeve)의 앞뒷면까지 이용하여 총 4개의 부조리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순서대로 ‘불, 물, 흙, 공기’를 상징한다. 굉장한 것은 이 모든 장면이 모두 ‘실제 사진’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불타는 옷의 남자’는 실제 스턴트맨이 불을 붙이고 찍은 것이며, 속표지의 ‘잔잔한 호수에 다이빙한 사람’은 요가 수양자를 모셔다가 물 속에서 물구나무를 서게 해서 물결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찍은 사진이라 한다. 그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을 텐데, 왜냐하면 핑크 플로이드가 원하는 장면은 ‘다이빙했지만 물이 전혀 튀지 않고 거울처럼 고요한’ 장면이었고, 이를 위해 요가 수양자는 물 속에서 물구나무 선 채로 물결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내 취향의 예술은 아니지만 이 정도 노력이면 그 대단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커버는 ‘힙노그시스(Hypnogsis)’라는 디자인 그룹(록 음악만 그룹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이 전담했는데 ‘발전소 위의 초대형 돼지 풍선’, ‘바다 위 침대 700개’ 등 대부분 ‘진짜로 찍은’ 사진 위주의 작업이었다고 한다.

시대 순서대로 전시하다보니 벌써 펑크(punk)가 등장한다.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의 싱글 “God Save The Queen”(1977)과 “Holyday In The Sun”(1977)이 눈에 띄었는데, 아무래도 디자인적인 품질은 그렇게 높지 않았던 앨범 [Never Mind The Blocks, Here’s The Sex Pistols](1977)를 피하고 이 두 싱글을 내세운 것을 보면 이 전시가 ‘아무렇게나 기획한’ 것은 아닌 것 같다. “God Save The Queen” 싱글의 표지는 영국 사회에 대한 증오를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신문에서 오려붙인 ‘글자들'(영화 같은 데 보면 협박 편지나 살인 예고 편지 등에 이런 수법이 사용된다)로 여왕의 얼굴을 가림으로써, 그 자체가 뛰어난 미적 형식이자 가장 예술적인 조롱이며 그 어떤 선동이나 분노보다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내 취향이지만 음악은 물론이고 디자인의 ‘미적 형상화’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본 전시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힐 만하다. “Holyday In The Sun” 싱글은 9컷의 만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몇몇 사람들은 팝 아트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R. Lichtenstein)의 축소판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섹스 피스톨스의 매니저인 맬콤 맥라렌(Malcolm McLaren)이 예술 전공자(골드스미스 대학)인 것은 교과서에 나와야 할 사실이지만, 다만 커버 디자인은 직접 한 것이 아니라 제이미 라이드(Jamie M. Reid)라는 사람이 했다고 한다. 버즈콕스(Buzzcocks)의 싱글 “Orgasm Addict”(1977) 표지 또한 마르셸 뒤샹(Marcel Duchamp)의 [자전거 바퀴] 같은 설치 작품을 생각나게 하는 멋진 현대미술 작품이다(디자이너는 맬콤 가렛).

20010801125545-2다음에는 초기 뉴웨이브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1970년대부터 앨범 커버 디자인도 ‘거장’의 시대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앨범 [Unknown Pleasures](1979)와 [Closer](1980)를 디자인한 피터 사빌(Peter Saville)도 이러한 사람들 중 하나(좀 더 정확히는 혜성같이 등장한 신예)라고 한다. 이 영역에서는 사빌이 디자인한 오케스트럴 마뉴버 인 더 다크(Orchestral Manuevres In The Dark)의 동명의 앨범(1980)이 눈에 띄었는데, 설명에 의하면 이른바 다이 컷 커버(die cut cover)라는 것이라 한다. 이게 뭐냐면 종이에 구멍을 내고 그 뒤에 다른 색의 종이를 놓은 것인데, 사진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실제로 보면 검은색이 앞면, 분홍색이 구멍 밑에 있는 것으로 마치 분홍의 작은 타원들이 조금씩 떠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자료를 보니 속지(inner sleeve)의 색이 여러 가지여서 색을 총 6가지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미술 장르로 이야기하자면 미니멀리즘인데 한국에서의 미니멀리즘은 지나치게 지배적인 경향이 있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와 같은 제작 형태가 주는 독특한 효과는 인상적이다. 또한 사빌의 디자인으로서 뉴 오더의 “Blue Monday”(1983) 싱글의 커버는 당시 첨단 매체였을 듯한 플로피 디스켓 모양의 디자인이어서 뉴 오더의 강박적인 전자음을 팝아트의 방식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어렵게 말할 수 있겠지만 이런 것은 집어치우고 아무튼 재미있었다. 조금 더 지나가서 1980년대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맬콤 가렛(Malcom Garret)의 초기 작품인 듀란 듀란(Duran Duran)의 [Rio](1983) 앨범이 있었는데, 아까 버즈콕스 음반의 디자인과는 달리 이것만 봐서는 그가 거장인지 아닌지 알기 힘들 것 같다(사실 강의에 의하면 다른 디자인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중간에 록 음악의 슈톡하우젠(K. Stockhausen) 내지는 존 케이지(John Cage)인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의 앨범 두 장이 있었는데, 음악과 달리 앨범 커버는 별로 아방가르드하지 못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는 네빌 브로디(Neville Brody)인데, 제작 방식은 사진을 인화하면서 조작하든지 아니면 그렇게 조작된 사진들을 다시 합성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의도나 제작 과정은 현대적이고 포스트모던하지만 문제는 작업의 결과가 별로 충격적이지도, 신기하지도 않다는 데 있었다. 인상주의 느낌이 조금 나면서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의 흐름은 무의미하고, 대체로 제목은 ‘무제’인 감성도 느낌도 없는 최근의 회화를 보는 것 같았다. 뭐 다시 생각해 보니 포스트모더니티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물론 당시에는 신선했을 수도 있겠다.

20010801125545-31980년대 중후반으로 가면서 모르는 아티스트가 많아져서 당혹스러웠다. 본 전시에서 유일한 미국 밴드인 픽시즈(Pixies)의 [Doolittle](1989)이 있었지만 별로 멋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이 앨범의 디자이너인 본 올리버(Vaughn Oliver)도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가 디자인한 스크리티 폴리티(Scritti Politti)의 [Cupid & Psyche 85](1985)앨범이나 클랜 오브 자이목스(Clan Of Xymox, 1985, 네덜란드)의 동명 앨범 커버는 질감 혹은 양감을 살리는 데 주력한 것이 눈에 띈다.

1990년대 초반의 테크노 음악의 이미지는 시스템 7(System 7)의 앨범 커버가 대표한다. 데이빗 제임스(David James Associates)의 디자인인 [777](1993) 앨범 커버의 아른거리는 초록색 이미지는 이제 컴퓨터와 컴퓨터 그래픽의 시대임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CD로 바뀌면서 확실히 디자인에서 느껴지는 재미나 감동이 줄어든다. 스피리추얼라이즈드(Spiritualized)의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1997) 앨범은 CD임에도 불구하고 직사각형의 큰 박스로 되어있었는데 리미티드 에디션(limited edition)인 것 같다. 마크 패로우(Mark Farrow)가 디자인한 표지의 경고성이지만 귀여운 문구(주의: 부작용, 1알=70분 등)와 약 포장 박스를 생각나게 하는 재치는 ‘(마)약 정신’을 강조하기에 충분했고 시도도 나쁘지 않다. 하긴 감기약도 많이 먹으면 마약이 된다고 한다. 넘어가다 보니 심지어 나무로 만든 CD 케이스도 있었다(Roger Sanchez 외, [Muzik Masters], 1996). 이러한 시도는 크기에서 오는 제약을 극복하거나 혹은 다른 방향으로 디자인의 중심을 전환하는 것이지만 생산 단가나 보관의 문제가 있을 것 같아 그냥 ‘단발성 시도’로 그친 것 같다.

뷰욕(Bjork)의 “Bachelorette”(1997) 싱글은 환상적이기는 한데 그녀 자신의 카리스마를 강조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없어서 아쉽다. 테크노 아티스트 칼 콕스(Carl Cox)의 앨범 [F.A.C.T.](1995)의 분위기도 뷰욕과 유사한데, 테크노 음악에서 나타나는 카리스마적인 분위기는 아마도 디제이가 디지털 사제(digital guru)로 불리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과거의 예술 장르를 재활용한 것으로 스테레오랩(Stereolab)의 [Dots And Loops](1997)가 훌륭하게 보였는데, 1960년대에 잠시 유행한 이른바 옵 아트(op-art)라는 장르로서, 시각적 착시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고도로 계산된 정교한 선 혹은 형태로 구성된 경향을 말한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스테레오랩의 음악 형식에 잘 맞는 예술 장르를 적절히 선택한 것 같다. 이들 중 뷰욕과 스테레오랩을 비롯한 몇몇 싱글/앨범들은 1990년대임에도 LP크기여서 주최측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75장의 앨범들 중 일반인이 쉽게 알 수 있는 아티스트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디자이너의 우수성 중심으로 선정을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필자도 처음 들어보는 아티스트가 많아서 다시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감상자로서 이번 전시에서 느낀 것은 아무래도 본인이 소장한 앨범에 한번이라도 더 눈이 간다는 것이다. 필자도 특히 80년대 후반의 작품들에서 그런 맹점을 피하지는 못한 것 같다. 아무튼 본 전시는 생각보다 ‘어려운’ 주제이자 작품들이었고, 자료도 넉넉하지 못하여서 아쉬웠다. 작품 자체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고 디자이너의 일기에서 발췌한 듯한 진술들로는 앨범 커버의 디자인을 ‘표면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아울러 발매된 시대 순으로 앨범을 전시하다보니 섹스 피스톨스 다음에 또다시 갑자기 핑크 플로이드의 1970년대 후기작이 나와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 전시가 음악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장르별로 나누어 놓든지, 아니면 아예 디자이너 중심으로 묶어서 각 디자이너의 경향이나 변화를 알 수 있도록 했으면 좋았을 텐데, 시대순으로 배치한 것은 이보다는 조금 못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음악애호가이자 음반수집가로서 핑크 플로이드, 섹스 피스톨스, 조이 디비전, 카바레 볼테르 등 훌륭한 아티스트의 진짜(인지 아니면 껍데기만 있는 것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지만) LP를 본 경험 그 자체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돈주고도 구경하기 힘든 것이라 생각된다. 앨범 커버 아트에 대한 ‘일반론’이 궁금한 사람은 ‘아트센터 나비’ 공식 [we http://www.nabi.or.kr)에 가면 임근영의 강의록을 다운 받을 수 있다(강좌 내용과는 별 상관이 없다). 이 강의록에는 앨범 아트에 관한 참고 문헌도 있어서 필요한 사람에게는 매우 유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강의록에 인용되어 있는,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앨범 커버에 대해 한마디씩 한 ‘어록’의 가르침을 듣고 마무리하고자 한다.

“12인치 X 12인치. 1피트의 정방형. 그것은 디자인하기 좋은 완벽한 사이즈다.” –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
“어떤 면에서 앨범 커버는 끝장난 것 같습니다… CD 커버는 LP 커버의 1/7 정도 크기 밖에 되지 않죠. 미술가에게 그것은 너무도 작은 것입니다…” – 스톰 소거슨(Storm Thorgerson)

‘플러스’에 대한 비평 : 김기철의 [소리조각]

자격은 없지만 내친 김에 ‘플러스’ 작품이자 전시회 제목까지도 바꾸게 한 김기철의 [소리조각]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김기철은 홍대 조소과 출신이고 개인전 3회 및 그룹전에도 다수 참여한 경력 있는 작가이다. 우선 불평할 것은 좁은 전시공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더 좁아졌다는 것인데, 이런 것까지 지적하는 필자에게 ‘예술이 뭔지도 모르는 것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작품을 깎아 내리다니…’ 하고 욕하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필자도 예술을 잘 모르지만 작품도 예술을 잘 모르는 것이 현대 예술의 경향이니깐 뭐 ‘편의성’을 지적하는 것을 ‘무식한’ 것으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 현대 예술을 ‘불편하게’ 끝까지 서서, 엄숙하고 고급스럽게, 특히 만지지 말고 감상해야 할 이유는 없다. 작가 노트를 보니 종각의 이슬비 내리는 소리를 녹음하고 그것을 스피커를 통해 소리로서 형상화한 것이라고 되어있는데, 조금 더 예술적인 ‘조작’을 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스피커를 매달아 놓은 위치가 허리 높이로 오는데 그 사이가 너무 빽빽해서, 가운데 들어앉아 소리를 감상할 수가 없고 그냥 주변만 맴돌 뿐이었다. 상식적으로 비는 ‘나를 적시며, 나의 주변으로’ 내리기 마련인데, 스피커 사이로 들어서서 빗소리를 ‘맞을’ 수가 없으니 아마 ‘비 구경’만 하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설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스피커가 똑 같은 규격으로 똑 같은 방향만을 향하고 있어서 상당히 평면적이고 인공적인 것도 불만이다. 다만 이 점은 설치 장소의 제약을 고려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겠다. 작품의 의도인 빗소리는 자연의 모방인데 작품의 구조는 별로 자연스럽지 못한 것 같다. [weiv] 식으로 별점을 주자면 별 세 개다. 20010723 | 이정엽 fsol1@hananet.net

자료 협조 : 최두은(choi@nabi.or.kr), 아트센터 나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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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웹진 [Cultizen]에 실린 ‘사운드 디자인 플러스’ 전 리뷰
웹진 [Bookers]에 실린 ‘사운드 디자인 플러스’ 전 기사

관련 사이트
아트센터 나비 공식 사이트
http://www.nabi.or.kr
‘사운드 디자인 플러스’ 전 소개 페이지
http://www.nabi.or.kr/projects/soundplus/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