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스케줄이 달라서 모이기 힘든 귀한 몸이었던 우리의 언니 오빠들이 함께 뭉쳤다. 7월 10일 63빌딩 컨벤션 센터에서 한국연예제작자협의회(이하 ‘연제협’)의 기치 아래 기자회견을 가진 것이다. 이 날 전후의 사태의 추이는 인터넷만 뒤지면 상세히 알 수 있으므로 생략. 최종 결말이 어떻게 될 지도 지금 글을 쓰는 상태에서는 오리무중이므로 역시 생략. 이 글에서는 ‘어떻게 될까’라는 궁금증을 접고 이번 사태에서 과연 뭐가 문제인가만 짚어보기로 하자.

untitled13사진 출처: [한겨레] 신문, 2001. 07.18
그런데 잠시 신문과 잡지를 보지 않았던 아저씨는 저 장면을 보고 단단히 오해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보고 ‘아, 연예인들이 드디어 매니저들에게 반기를 들었구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난 겨울 프로야구 선수들이 비슷한 기치를 걸고 프로야구 구단에게 대항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한때 프로야구 선수협 대변인을 역임했던 강병규마저 그 자리에 나와 있던 점도 ‘아, 드디어 이제 연예인도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구나’라고 착각할 만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웬 걸. 이 날의 분위기는 연예인과 매니저가 똘똘 뭉쳐 있는 것 아닌가. 이들이 성토하는 대상은 MBC였다. 이것도 아저씨로서는 영 이상했다. 방송사와 연예인들이란 동업자이자 공생관계 아닌가. 이른바 ‘한 통속’이라거나, 서로 정답게 ‘주고 받는’ 사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게 웬 일인가. 결국 아저씨의 둔한 머리로는 이렇게 추론할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니라 한국인들이 싸움을 벌일 때는 감정대립이 대부분이고, 이건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격렬하다는 점이다. 지금도 연제협과 MBC는 다시 얼굴 볼 일 없다는 듯이 대립하고 있다. 연제협 측은 방송사의 ‘고압적 자세’를 문제삼고 있고, MBC 측은 연제협의 ‘무례한 행동’을 문제삼고 있다. MBC 측에서 내세우는 ‘보도권’이라든가, 연제협 측이 내세우는 ‘사기 저하’ 등도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건 엘리트와 인기인 사이의 자존심 대립의 명분일 뿐이다.

문제의 본질이 뭐냐고? 아저씨의 생각으로는 불투명과 불공정이 지배하는 연예계의 현실이다. 이거 말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고 몇 개만 폭로해도 ‘여러 명 다치는’ 일이니 대충 넘어가자. 이런 사실을 조금 알게 되면 연예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도 그 세계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 싹 가실 것이다. 한때 최진실과 엄정화 등 쟁쟁한 스타들을 거느린 매니저였던 배병수가 왜 비명에 횡사했는지, 리아가 왜 남자친구를 시켜서 매니저를 폭행하여 법의 제재를 받았는지 곰곰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런데 험악하게 싸우다가도 두리뭉수리하게 넘어가는 것이 한국인의 또 하나의 생리다. 이른바 ‘연예인 매춘’이나 ‘연예인 성 상납’ 같은 사건이 터진 지도 1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도 매니저랑 SBS랑 험악하게 싸웠지만, 한두 주일 정도 시끄럽다가 유야무야되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어떤 흑막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루머’조차도 없다. 갑자기 정말로 궁금해진다.

그래서 이번에도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지 않고 다시 묻혀 버릴까봐 걱정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사 측은 불투명한 계약관계와 불공정한 분배의 피해자들의 ‘비참한’ 모습을 취재하는 편이 훨씬 나을 뻔했다. 하지만 그때 방송에 나온 가수들은 그동안 잘 나갔던 에쵸티의 멤버들, 아직 젊어서 ‘재기’할 가능성이 있는 한스 밴드, 로커로서 확고한 자리를 잡은 이은미 등이었다. 이들보다는 서울 변두리의 나이트클럽을 전전하고 있는 ‘왕년의 오빠들’이 할 말이 훨씬 많을 텐데 말이다. 지금의 오빠들도 몇 년 있으면 비슷한 모습일 테고… 얘들아, 세상 참 잔인하지? 아, 그런데 아저씨는 이번 싸움에서 누구 편이냐고? 누구 편도 아냐. 싸움구경할 때는 양비론으로 사는 게 제일 속 편하거든. 농반진반이지만. 20010715 | 신현준 homey@orgio.net

* 이 글은 하이틴 월간지 [Povteen]에 게재될 글의 수정 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