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716032414-weezer_greenWeezer – Weezer(Green) – Interscope/Geffen, 2001

 

 

돌아온 ‘비치 보이스 주니어’의 희망가

유투(U2)는 앨범 [Pop](1997)을 발매할 당시 “훗날 우리도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처럼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유투가 비치 보이스를 언급한 것은 그들의 음악적 성향만을 추종한다는 의미는 아닐 테지만 ‘비치 보이스 주니어’적인 뉘앙스로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그 자리는 유투보다 위저(Weezer)가 적합한데, 그것은 직간접적으로 드러난 비치 보이스 색감의 영향과 더불어 여전히 새 앨범에서도 그 궤도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위저에게 남아있는 과제는 ‘소리의 실험’뿐일까. 하지만 ‘실험’이라기보다는 ‘모험’에 가까웠던 전작 [Pinkerton](1996)으로부터 유턴한 그들에게 또다시 무슨 실험을 강요할 수 있으랴.

지금까지 위저를 잊지 않고 있던 팬들이라면 진작에 느꼈겠지만, 그러므로 이번 앨범 [Weezer(Green)](이후 ‘그린 앨범’)는 길지 않은 그들의 바이오그래피에서 데뷔 앨범 [Weezer(Blue)](이후 ‘블루 앨범’)로 선회하는 도돌이표로 남게되었다. 어쨌거나 이러한 성과에 대하여 대부분 기뻐하는 듯한 분위기인데, 한편으로 5년이라는 장기간 침묵의 결과가 결국 폐곡선을 그리는데 할애되었다는 점에서 측은한 기분이 발효된다. 그것은 이번 그린 앨범이, 2집 [Pinkerton]에서 마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 사탕]처럼 외쳤던 염원이 반영되지 않은 채(“I wanna go back, yeah!”(“The Good Life”), “but I ain’t never comin’ back”(“Butterfly”)), 시선을 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며(“Just keep drawing up the plans and re-erect it”(“Photograph”), “Nevermind the past, Living for today… We can start a glorious day”(“Glorious Day”)), 더불어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심했었기에’ 하는 약간의 동정표도 포함되었기 때문임을 밝히는 바이다. 하지만 이럴 때면 늘 지적되는 ‘단순반복’이라는 혹평대신 가평(佳評)을 주고자 하니, 3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러닝타임은 응축된 에너지로 지루함을 방지한다고 주장할 것이며, 블루 앨범의 분위기를 풍긴다고 한다면 이는 기억의 망각을 거슬러가게 해주어 지난날 감정의 부산물과 합한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오히려 전작을 뛰어넘게 되니, 미묘한 평가겠지만 지난 두 장의 앨범을 혼합한 완성본의 탄생이다. 이로서 위저의 1기는 마감된다고 성급하게 결론지어본다.

비록 스스로를 희극화시키는 특유의 뮤직 비디오는 스파이크 존스(Spike Jonze)의 “Buddy Holly”로 출발하여 뒤에서 ‘딴짓’하는 맷 샤프(Matt Sharp, 前 베이스)와 패트릭 윌슨(Patrick Wilson, 드럼)의 “The Good Life”를 지나 이번에도 예외 없이 엉뚱하게 스모 선수를 등장시키는 “Hash Pipe”를 보게 되는데, 그다지 표방하는 이미지의 변화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에 현혹되어 ‘코미디 밴드’라던가 ‘위트’가 있다는 식으로 단순히 평가하지 않기를. 그보다는 여전히 그들의 음악에서 빠지지 않는 부드러운 하모니와 함께 코러스가 어우러진 밴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1960년대 감성의 멜로디와 1990년대 ‘펑크’ 연주의 혼합에 가치를 두고자 한다. 이 점에 있어서 ‘비치 보이스 주니어’의 자리는 보다 확고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은 한순간에 몰아치고 끝내버리는 ‘중간 생략적’인 느낌이 드는데, 완급이 부족한 채 표출되는 다채로운 감성은 악기의 두리뭉실함에 갇히게 된다. 때문에 고정된 외벽 속에 다양한 분위기를 담은 음악을 청자에게 전달시키기가 예전보다는 그리 녹록치만은 않을 것이다.

확실히 비어있는 공간이 전보다 확장된 [Pinkerton]과 비교되는 까닭으로, 간혹 악기의 배합이 공간을 뭉툭하게 ‘소음’으로 채워놓을 때면, 베이스 라인을 찾기가 힘들어지거나 똑같은 연주가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온다. 그리고 모든 곡이 하나의 음원에서 출발한 듯한 의구심을 자아내는데, 같은 편곡과 구성을 지니고 있다고 폄하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할 수 있는 힘은 수록곡들이 ‘감성의 창문’을 여는 데 흔쾌히 허락한 덕분이다. 물론 가사보다 음률에 무게 중심을 둔 경우지만, 여기에는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듯한 “Smile”이 있고,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주려는 “Island In The Sun”, “Knock-down Drag-out”, “Simple Pages”를 찾을 수 있다. 그러면서 주변의 일상을 소중하게 보듬거나 소소한 연정과 비애, 그리움 등을 담고있는 “Crab”, “Glorious Day”, “O Girlfriend”를 느끼다보면 어느새 현실과 상관없이 흥겨워하는 “Don’t Let Go”와 “Photograph”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고, 발끈한 모습을 보이는 장난꾸러기 같은 “Hash Pipe”가 뛰쳐나온다. 록 음악의 자양분으로 팝 음악의 지형도를 그리는 덕분에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 있지 않고 손끝으로 연약함이 묻어난 탓일까.

위저(Weezer)는, 그리하여 생활에 지쳐 외롭거나 고단한 이들에게 행복을 만들어주고 싱그러운 미소를 짓게 해준다. 어느새 이곳에는 록의 마초이즘 따위는 사라지고 [Pleasant Ville]이 그림처럼 편안하게 펼쳐질 뿐이다. 그러니 만약 우울한 ‘삶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으려면, 위저(Weezer)를 듣고 힘내보시라. 다시 한번 비치 보이스 주니어가 그 걸음을 내딛고 있다. (P.S. 혹 지극히 ‘아메리칸 유쓰’ 같은 감성으로만 들린다면 우리의 ‘키 보이스(Key Boys)’아저씨들을 기억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20010709 | 신주희 zoohere@hanmail.net

8/10

수록곡
1. Don’t Let Go
2. Photograph
3. Hash Pipe
4. Island In The Sun
5. Crab
6. Knock-down Drag-out
7. Smile
8. Simple Pages
9. Glorious Day
10. O Girlfriend

관련 사이트
Weezer 공식 사이트
http://www.weezer.com
Weezer 팬 사이트
http://www.weezerfa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