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716032052-travis_invisibleTravis – The Invisible Band – Independient/Sony(국내발매), 2001

 

 

여전한 서정과 낭만의 기타 팝

‘누구누구의 아류’라는 말은 아티스트에게는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동정심은 사실은 버려야 되지만 말이다). 트래비스(Travis)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2집 [The Man Who](1999)가 ‘라디오헤드(Radiohead)와 버브(The Verve)의 아류(혹은 적절한 절충)’라는 평가는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도 잘 베껴서 얄미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베껴도 훌륭한 경우도 있지 않은가. 이러한 두 판단의 기준으로서 결국 시간이 지나면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트래비스는 새 앨범 [The Invisible Band]에서 (성숙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는 상투적인 말은 빼고) 아류든 나발이든 2집 때의 느낌을 그냥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신경을 썼다. 마치 ‘이게 원래 우리 스타일’이라고 강변하듯. 이제 라디오헤드는 21세기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되어 먼 여행을 떠난 것처럼 보이니, 이런 상황에서 트래비스에게 또다시 ‘누구누구 아류’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애매하다.

동정심을 가지든 말든 한 마디만 하자면 이들의 지난 앨범은 사기성이 조금 짙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앨범에서 대부분의 곡이 동일한 코드 진행을 갖고 있더라는 게다. 다음과 같이 간단히 확인해 보자면 “Writing To Reach You”의 도입 부분에다가 “Turn”의 코러스 부분을 바로 이어서 불러보자. 가사는 그렇다고 치고 멜로디 진행에 큰 지장은 없다. 반면 새 앨범은 멜로디는 이전보다 다소 기억에 덜 남지만, 다행히 제목이 헛갈리거나 따라 부르다가 (뜻은 신경쓰지 않는) 가사가 뒤죽박죽이 될 일은 없어 보인다.

‘성숙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온’ 점을 굳이 꼽아보자면 (정말 할 말 없지만) 만돌린이라는 밝은 음색의 악기가 곳곳에 쓰였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쓸데없는 장난처럼 들렸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트래비스의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원래 저 악기가 컨트리(country) 음악에 자주 쓰였던 점을 고려하면, 앨범을 시작하는 “Sing”이나 다섯 번째 곡 “Flowers In The Window”의 만돌린 소리는 영국 밴드로는 개성적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해도 좋겠다. 예전보다 클리어 톤의 기타가 더 자주 쓰인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데 이것도 효과가 좋다. 옛말에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 같다고 “Pipe Dream”이나 “Follow The Light”, “The Cage”(다만 이 곡은 기타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등등 적절히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연주되는, 청명하면서도 약간 리버브가 걸린 기타는 감상적인 낭만성에 어딘가를 떠다니는 듯한 신비함까지 더한다. 드럼이나 다른 연주 파트, 곡의 구성 방식, 전형적인 브릿팝 혹은 포크 록의 화성 등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

몇 가지 사실적인 사항을 지적하자면 이들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 출신이고 1996년부터 런던에서 활동해왔다. 이들이 데뷔할 시기가 마침 ‘스코틀랜드 뉴웨이브’ 시절이었으니 시기운도 좋은 것 같다. 미술학교 출신들이라 그런지 앨범 커버 디자인이 서정적인 풍경 사진인데, 커버를 보면서 음악을 듣는 것도 올바른 감상의 포인트 되겠다. 별로 중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가 벡(Beck), 라디오헤드 등과 함께 작업한 나이젤 갓리치(Nigel Godrich)라는 사람이니 필요한 사람은 외워두자. 7월 둘째 주 현재 영국 차트 1위니까 지금 사도 별로 유행에 뒤지는 거 아니다. 다만 문제는 추천 트랙이 하도 많아 난감했던 지난 앨범과는 반대로 이번 앨범은 도대체 뭘 고를지 난감하다. 여담인데 열 한 번째 곡 “Indefinitely”를 아무도 없는 방에서 헤드폰 같은 것으로 들으면 마지막 부분에서 짜증나다가 나중에는 좀 무서워진다(특히 알람 시계 소리에 알레르기 있는 사람에게). 20010712 | 이정엽 fsol1@hananet.net

7/10

수록곡
1. Sing
2. Dear Diary
3. Side
4. Pipe Dreams
5. Flowers In The Window
6. The Cage
7. Safe
8. Follow The Light
9. Last Train
10. Afterglow
11. Indefinitely
12. The Humpty Dumpty Love Song

관련 글
Travis, [The Man Who] 리뷰 – vol.2/no.9 [20000501]

관련 영상

“Sing”

관련 사이트
Travis 공식 사이트
http://www.travisonl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