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14윤도현밴드 – An Urbanite – 서울음반, 2001

 

 

윤도현 ‘밴드’에서 ‘윤도현’ 밴드로의 퇴보 혹은 성공

데뷔 때부터 평론가들과 언론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던 윤도현밴드. ‘한국적 록’의 가능성, 1990년대 록 담론의 수혜자, 진보적인 록 음악의 대표주자 등 윤도현밴드의 이름 앞에 자연스럽게 붙던 수식어들은 과연 그들을 온전히 설명하고 있는 걸까? 무척 궁금했던 윤도현밴드의 5집이 나왔다. 1997년 2집, 밴드로의 전환 후 매년 한 장씩의 앨범을 발매하던 것에 비하면 오랜만에 나온 이번 앨범은 멤버의 이동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거친 듯하다. 김진원(드럼)과 박태희(베이스)를 제외하고 실질적인 밴드의 리더였던 유병렬(기타), 엄태환(리듬기타)은 이스크라 출신의 고경천(키보디스트)과 허준(기타)으로 바뀌었으며, 음악도 ‘여전함 속의 완연한 다름’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나 돌아갈래”라는 외침으로 시작하는 첫 곡 “박하사탕”은 2집에서 가장 잘 나타났던 툭 내지르는 시원한 윤도현의 보컬과 1970-80년대 포크의 아련한 정서, 선 굵은 기타 리프가 더해져 예전 윤도현밴드에 가장 가까운 음악이며, 김민기의 1970년대 작품을 리메이크한 “도대체 사람들은”은 록 오페라 [개똥이]에도 삽입되었던 곡으로 1980년대의 민중가요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축인 풍자와 해학이 담긴 ‘노가바’ 스타일을 힙합 리듬에 실어낸 곡이다. 앨범의 타이틀 곡인 “내게 와 줘”는 재즈기타를 공부했다는 허준의 리듬감 강한 기타, 그리고 가벼운 가사에 걸맞게 힘을 뺀 윤도현의 보컬이 부담없이 다가오는 대중적인 곡이다. 그 외에도 가야금과 턴테이블의 스크래칭이 접목된 “거울”이나 근래의 랩 메탈에서 많은 것을 차용한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등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을 접목하려는 노력도 보인다. 전체적으로 기존의 윤도현밴드의 이미지였던 거칠고 선 굵은 사운드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리듬을 더해 그루브 감을 살리려고 한 느낌이며, 그런 시도가 가장 잘 반영된 “그대로”란 곡에선 재즈 풍의 기타 리듬과 베이스의 그루브한 진행, 부드러워진 윤도현의 보컬이 어우러져 기존의 윤도현밴드의 음악과는 많이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이런 변화에 고개를 끄덕이기 힘든 건 2집에서 보여주었던 넘치는 에너지나 대중적이지는 않았지만 3집에서 드러냈던 완숙한 ‘밴드’의 음악처럼 듣는 이를 움직일 만한 그 무엇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거칠지만 예전의 순수함이 좋았지’ 류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크게는 멤버의 변화(음악적 리더였던 유병렬의 교체)나 아직 새로운 멤버들과의 호흡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 때문이지만, 다양한 시도(보컬의 다양한 변화에 초점을 맞춘)나 세련됨이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옅게 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TV 라이브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던 이전보다 더해진 윤도현 개인으로의 집중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당혹스런 일은 이번에도 3곡이나 방송금지를 받았다는 점이다. ‘노동자 위주의 편향적인 사고’가 부적격 판정의 이유라는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비속어가 문제가 된 “도대체 사람들은”, 농촌현실을 비관한 가사와 사투리가 이유인 “배웅”까지 총 3곡이 방송금지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더 답답한 건 이번에도 금지를 받나 한번 해보았다던 타성이나, 일관성 없는 방송심의의 결정이 윤도현밴드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잣대가 되어 버리는 현실이다. 언제부터 ‘방송금지’를 먹어야 비판의식 있는 뮤지션이 되어 버린 건지.

주류 언론들의 호평일색 기사와는 달리 대다수의 사람들은 윤도현밴드에게 예전 같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한국에서만큼은 주류가 되기 쉽지 않은 록 음악의 현실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주류의 대안이 되는 주류’를 꿈꾸기에는 윤도현이 덜 영악하든지, 애초부터 그런 기대가 과한 것이든지 둘 중 하나일 듯하다. ’21세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될 것’이라던 한 평론가의 예측은 그렇게 어긋난 것 같다.

윤도현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들의 가능성을 막고 있는 이런 수많은 ‘말’들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아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 좀더 솔직해지는 것이 먼저 일수도 있겠다. 20010713 | 박정용 jypark@email.lycos.co.kr

5/10

수록곡
1. 박하사탕
2. 도대체 사람들은
3. 내게 와 줘
4. 거울
5. 난 나를 사랑할 줄 몰랐습니다
6. 흑백사진
7. 이 땅에 살기 위하여
8. 그대로
9. 하노이의 별
10. 독백
11. 말없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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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밴드, [한국록 다시 부르기] 리뷰 – vol.2/no.2 [20000116]

관련 사이트
윤도현밴드 공식 사이트
http://yoonbban.soundpump.com
윤도현밴드 팬클럽 사이트
http://star.clubnet.co.kr/yb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