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y Cooder with V.M. Bhatt – Meeting By The River – Waterlily Acoustics, 1993 슬라이드 주법의 글로벌 네트워킹 월드 뮤직의 ‘착취자’ – 이 말은 중립적 의미다 – 라이 쿠더(Ry Cooder)의 작품들 중 ‘월드 퓨전’의 명반들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음반이다. 그의 경력으로 본다면 이 음반 [Meeting By The River]는 말리(Mali)의 블루스 기타리스트 알리 파르까 뚜레(Ali Farka Toure)의 음반에 참여한 것과 영화 [Paris, Texas] 사운드트랙을 만든 것 사이의 작업이므로 ‘슬라이드 기타’에 대한 추구가 담겨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음반은 공식적으로 ‘하와이언 기타의 거장 개비 파히뉘(Gabby Pahinui)에 헌정하는 음반이다. 라이 쿠더와 개비 파히뉘의 인연은 197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자세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은 라이 쿠더의 [Chicken Skin Music](1976)을 들어 보라. ‘하와이언 기타(정확히 말하면 하와이언 슬랙 키 기타(Hawaiian Slack Key Guitar))’를 추구하는 음반에 ‘인도’의 음악인이 초빙된 것은 의아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도 비슈와 모한 바트(V.M. Bhatt)의 경력을 알고 있다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라비 샹카의 제자인 그는 19줄의 현으로 이루어진 모한 비나(Mohan Veena)라는 악기의 개발자로 알려져 있다. 모한이란 그의 이름이고 비나는 시타보다 더 오래된 악기라고 한다면 발명이라기보다는 개량이라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그의 업적은 단지 악기의 현대화가 아니라 주법의 현대화였는데, 그가 새로이 창조한 주법은 하와이언 기타의 주법을 비나나 시타의 주법과 결합시킨 것이었다. 1980년대 말부터 국제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그의 음반들은 ‘슬라이드 주법’이라는 느슨한 말로 포괄할 수 있는 세계 각지의 연주자 커뮤니티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1992년 앨범의 제목 [Guitar a la Hindustan]이 혁신자의 지향을 잘 표현해 줄 것이다. 결국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표현력 풍부한 슬라이드 연주자”라든가, “서양의 기타리스트들에게도 영감을 던져준다”는 평이 나왔다. 소개가 너무 길었지만 이 음반은 ‘슬라이드를 원없이 들을 수 있는’ 텍스트다. 의도적으로 왼쪽 스피커에는 라이 쿠더의 연주를, 오른쪽 스피커에는 V.M. 바트의 모한 비나를 담고 있어서 시설 좋은 공연장에서 전기증폭 장치 없이 어쿠스틱 라이브를 보는 느낌을 준다. ‘라비 샹카를 들어보려고 했지만 음악의 형식도 구조도 없는 것 같고 화성과 멜로디로 뚜렷하지 않아 오래 못 듣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이 음반은 익숙할 것이다. 라이 쿠더의 기타가 만들어주는 화성이 있고, 마디로 분할해주는 리듬 패턴도 비교적 선명하기 때문이다. 조성이 뚜렷하다는 것이 이토록 안정감을 주다니… 수흐빈더 씽 남드하리(Suknvinder Singh Namdhari)의 타블라와 요아힘 쿠더(Joachim Cooder)의 둠벡(dumbek)은 혹시라도 거장들의 연주를 방해할까봐 노심초사하면서 원만한 보조를 계속하고 있다. 타이틀 트랙 “A Meeting By The River”가 장조의 비교적 밝은 분위기에서 ‘거대한 강을 앞에 두고 그리운 사람과 해후하는 기쁨이 이런 것일까’라는 상상이 드는 환희의 순간을 담고 있다. 구성은 정통 라가와 비슷하게 조용히 시작하여 타블라 소리와 더불어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악기의 독주(獨奏)가 ‘무조건 지루하다’는 사람을 위한 배려인 듯 악기소리의 화답이 지루함도 사라지게 만든다. 타블라 소리의 볼륨이 커지는 중반부 이후에는 손놀림도 빨라지면서 ‘정말 말하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던진다. 반면 “Longing”은 단조의 슬픈 분위기에서 애절한 울림을 반복하고, “Ganges Delta Blues”는 제목처럼 진짜 블루스다. 도입부에서 악기로 주고 받는(call and response) 부분은 마치 사원에서 수도승끼리 느린 말투로 선문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마지막 트랙 “Isa Lei”를 들으면 윤형주의 노래로 한국인에게도 유명한 “우리들의 이야기”의 멜로디가 흘러나와서 조금 당황하게 된다. 중간 두 트랙은 물론 첫 트랙에 비해서도 유럽-북아메리카의 선율이 뚜렷하여 친숙하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을 논쟁적인 트랙이다. 결론적으로 1960년대 이후 다양하게 시도된 ‘동서양의 퓨전’의 성과가 어디까지 왔는가를 느낄 수 있는 음반이다. 물론 ‘동양 음악은 서양 음악과의 퓨전을 통해서만 익숙하게 들린다’는 어떤 안타까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오래 전부터 ‘영원한 숙제’로 남아있었던 문제니까 이 음반에 대한 평을 하면서 언급할 것은 아닌 듯하다. 라이 쿠더의 명성에 이끌려 이 음반을 집어든 사람들이 V.M. 바트의 연주에 감탄하여 그의 음반을 찾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 참고로 비슈와 모한 바트의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라면 1996년의 작품 [Tabula Rasa]도 권하고 싶다. 라이 쿠더와의 공작으로 월드 뮤직 애호가의 범위를 넘어 유명해진 그가 블루그래스 음악인이자 밴조 연주자 벨라 플렉(Bela Fleck), 중국의 얼후(二胡) 연주자 첸지에빙(Chen Jie Bing)과 함께 만든 음반이다. 20010714 | 신현준 homey@orgio.net 9/10 수록곡 1. A Meeting By The River 2. Longing 3. Ganges Delta Blues 4. Isa Lei 관련 글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4): 신대륙으로 건너간 아시안 비트 – vol.3/no.14 [20010716] 관련 사이트 Ry Cooder 팬 사이트 http://rycooder.members.easyspace.com V. M. Bhatt 관련 페이지 http://members.ozemail.com.au/~carnival/whats/Vashi.htm 인도 고전음악에 관한 사이트 http://culturopedia.com/Music/musicintro.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