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630040356-labunavidaLa Buena Vida – Gran Panorama – Siesta/Mercury/Ales Music(라이센스), 2001

 

 

소박하고 따뜻한 스페니쉬 인디팝

씨에스타(Siesta)는 아꾸아렐라(Aquarela), 엘레펀트(Elefant)와 함께 주로 유럽, 일본 등지의 대중 음악을 발표하고 있는 인디 레이블이다. 보사노바 팝, 프렌치 팝, 라운지 팝, 환타지 팝, 샴페인 팝 등 다분히 친숙하고 위안적인 스타일들을 표방함으로써 ‘인디 씬의 이지리스닝’이라 할 만한 입지를 세우는데 성공하고 있다. 데쓰 바이 초콜릿(Death By Chocolate), 카이미 카리(Kahimi Karie), 보몽(Beaumont) 등 주요 소속 밴드나 뮤지션들(의 음악)은 국제적이고 공시적인 음악의 흐름 안에서 자신이 거한 풍토적 정체감을 형상화함으로써 영미권 음악과는 뭔가 다른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현재 제 3세계 음악인들의 강박을 팝의 코드에서 풀어내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데쓰 바이 초콜릿이 레트로의 틀에서, 카이미 카리나 보몽이 프렌치 팝의 틀에서 팝을 확장하고 있다면 라 부에나 비다(La Buena Vida)는 포크, 오케스트레이션 팝 안에서 보사노바, 프렌치 팝 등의 스타일들을 조화시키고 있다.

예전에, 라 부에나 비다의 1997년 작 [Soidemersol] 중 “Desde Hoy de Adelante”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특유의 된소리를 부드럽게 중화시키는 스페인 방언에, 제인 버킨(Jane Birkin)을 연상시키는 나른하고 관능적인 창법을 구사하는 이란쭈 발렌시아(Irantzu Valencia, vo)도 인상적이었지만, 일격이라 할만큼 단아하면서도 정격한 힘을 갖춘 매혹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의 선율은 쉽게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비틀즈로부터 음악적 영감을 많이 받았다는 멤버들의 고백에 기대면, 폴 맥카트니(Paul McCartney)와 필 스펙터(Phil Spector)의 “The Long And Winding Road”를 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거나 그 트랙 하나만으로도 라 부에나 비다에 대한 개인적 인지도는 높아있던 셈인데, 알고 보니 이들은 씨에스타가 자랑하는 대표 밴드로 관현악 오케스트레이션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전(그러니까 [Soidemersol] 이전)까지는 시부야계의 총아 코넬리우스(Cornelius)의 음악적 전범이 될 만한 음역을 선보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들은 건 라 부에나 비다의 제 2기부터라 할 수 있겠다. 1기 라 부에나 비다에 대한 식견이 전무하기 때문에 2기와의 유비 평가를 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2기만 이야기할 때 이들은 벨 앤 세바스찬을 자기돌파구(?)의 모델로 삼고 있는 듯 하다. 단, 벨 앤 세바스찬의 숙성하고 내향적인 정서 대신 소박하고 나른한 상실감을 통해 사운드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20010630040436-labuenavida_panorama[Gran Panorama]는 라 부에나 비다의 가장 최근작에 해당하는 네 번째 정규 앨범 [Panorama](1999)에 EP 분량의 보너스 CD를 더한 것으로, 최근 알레스 뮤직(Ales Music)으로 이름을 바꾼 명음 레코드에서 라이센스로 나왔다. 한국에만 특별히 나온 일종의 스페셜 패키지인 셈인데, 씨에스타 레이블에서 앨범 재킷과 부클릿 디자인을 보내왔다고 한다(재킷은 이들의 프로모션 싱글 “Tormenta en la Manana de la Vida”와 동일한 디자인이다).
20010630040436-labuenavida_tormenta<오른쪽> 라이센스반 [Gran Panorama]의 오리지날 앨범에 해당하는 [Panorama](1999)의 재킷. <왼쪽> 라이센스반의 재킷 디자인의 원형에 해당하는 이들의 프로모션 싱글 “Tormenta en la Manana de la Vida”(1999) 재킷

아무튼 이 앨범은 라 부에나 비다가 완연한 오케스트랄 포크 팝 밴드로 정착했음을 알게 해준다. 전작 [Soidemersol]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주조로 한 포크나 보사노바를 곁들인 스페이스 팝 트랙 중간 중간에 드보르작이나 시벨리우스를 연상케 하는 오케스트랄 팝 트랙을 ‘곁들인’ 정도였다면, 이 앨범에서는 거의 모든 트랙에서 관현악 오케스트레이션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다. 아마도 전작의 “Desde Hoy de Adelante”의 성공에 고무 받은 것이 큰 원인이 아닌가 싶은데, 정규 CD와 보너스 CD에 걸쳐 오케스트레이션 트랙만 세 곡을 할애하고 있는 점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목가적인 신서사이저로 조용히 시작해서 스네어 드럼, 오르간이 함께 전진하다 관현악 오케스트레이션까지 가세되는 “Tormenta en la Manana de la Vida”는 발렌시아와 미껠 아기레(Mikel Aguirre)의 혼성 중창과 함께 실연의 쓸쓸함을 수수하면서도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말로 은혼식을 의미하는 “Bodas de Plata”는 단조 오케스트레이션의 선율과 함께 가사의 묘미가 인상적인 곡이다(참고로 부클릿에 전곡의 가사가 번역되어 실려있다). 함께 산 지 25년이 되는 배우자를 “요란스럽고 오래된 골동품”이라고 말하면서 “고원을 향하여 지도자처럼 결정하는 너 / 지도자처럼 결코 사과하지 않는 너”라고 신랄하게 비아냥거리는 가사는 나른하게 떠다니는 발렌시아의 목소리와 오케스트레이션 파노라마와 함께 비감 어린 애증을 전달해 준다.

보너스 CD에는 [Panorama]보다 트로피칼한 풍토성이 짙은 사운드를 들을 수 있어 인상적이다. 특히 마지막 트랙 “Old Man”은 상이한 신서사이저 음들을 순차적으로 병렬하면서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 [Pure Phase] 시절의 스피리추얼라이즈드(Spiritualized)를 연상케 할만큼 미니멀하고 몽환적이다. 하지만 스피리추얼라이즈드와 달리, 전체적 대기감이 혼탁하거나 무겁지 않고 따뜻하고 가볍다. 그것을 스페인 음악의 풍토성이라 이름할 수 있는지는 자신 없지만 ‘국제적인 것이 보편적’이라는 음악 논리에 무차별적으로 편승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나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20010627 | 최세희 nutshelter@hotmail.com

7/10

수록곡
1. Melodrama
2. Arroz Amargo
3. Tormenta en la Manana de la Vida
4. El Largo Adios
5. Odessa (Instrumental)
6. Despedida
7. Surquemos el Cielo Entero
8. Bodas de Plata
9. Aquella Noche de Sabado
10. Guillermine
11. Mi Punto de Vista
12. Metronome (Instrumental)
13. Todas de Tamblea (hidden track, instrumental)

Bonus CD
1. Siracusa (Instrumental)
2. Mil Ventanas Abiertas
3. Otra Vez Tu
4. Old Man (from [Forever Changes] of “Love”)

관련 사이트
La Buena Vida 공식 사이트
http://pagina.de/labuenavida
Siesta 레이블 공식 사이트
http://www.siesta.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