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630025232-stephenmalkusStephen Malkmus – Stephen Malkmus – Matador, 2001

 

 

‘거물’ 인디 밴드로부터 나온 자의 유쾌한 수기

거물 밴드에서 나온 솔로는 어떤 방향을 취할 수 있을까. 대담하게 방향 전환하기? 아니면, 기존의 스타일을 고수하기, 더 나아가 적당한 타협으로 안전하게 안착하기? 아무래도 아주 다른 방향 전환은 무모하고, 기존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은 식상하며, 안전빵을 선택하는 것에는 비난이 따른다. 물론 이들의 경계선에 있는 경우도 존재할 것이다.

페이브먼트(Pavement)의 프론트맨이었던 스티븐 맬크머스(Stephen Malkmus)의 경우는 어떨까. 인디라고 말하기 힘들 만큼 너무나 유명했던 로파이 인디 록 씬의 인사 페이브먼트는 해체설과 이에 대한 부정이 반복되던 끝에 결국 작년에 해체되었다. 그들의 ‘swan song’이 된 다섯 번째 정규 앨범 [Terror Twilight](1999)는 상업적, 비평적 실망을 안겨 주었고, 앨범 서포트 투어는 멤버들이 얼마나 소원해졌는지 증명해주는 계기였을 뿐이었다. 페이브먼트 해체 후 밴드의 핵심에 있던 맬크머스는 오레곤 주의 포틀랜드로 거점을 옮기고 그곳의 베테랑 ‘직스(Jicks)’ – 드러머/퍼커셔니스트 존 모엔(John Moen)과 베이시스트 조안나 볼름(Joanna Bolme) – 와 함께 솔로 앨범을 분만해냈다. 밴드가 아닌 그의 이름을 건 앨범 타이틀은 음반사의 상업적인 고려 때문이다.

스티븐 맬크머스의 음악을 들으면 아무래도 그의 모(母) 밴드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Stephen Malkmus]는 로파이의 한 가지 사운드를 정의했던 페이브먼트의 첫 번째 앨범 [Slanted & Enchanted](1992)로부터, 미국 언더그라운드의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한, 보다 세련되고 편안한 사운드가 녹아있는, 그래서 로파이가 아니라는 평까지 등장케 한 두 번째 앨범 [Crooked Rain, Crooked Rain](1994)으로 나아가던 방향의(물론 그보다 더 확장된) 연장선상에 있다고나 할까. 특히 [Terror Twilight]는 스티븐 맬크머스의 솔로 앨범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이 앨범과 밀접한 상관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어쨌든 페이브먼트 초기에 생성했던 거칠고 조야한 텍스처, 즉 갑작스레 폭발하며 지글대는 피드백 노이즈 사운드나, 예상하기 어려운 곡 진행, 축축 늘어지는 건성의 보컬, 실수한 (듯한) 연주는, 물론 잔존하기는 하지만, 상당히 삭감된 것처럼 들린다(로파이의 산물이었던 조악한 앨범 커버 스타일을 버리고 클로우즈업된 맬크머스의 얼굴을 ‘핀업 보이’처럼 떡하니 걸었다니! 그런데 예전 스타일에 대한 아쉬움보다도, 웃음이 나오는 건 또 왜일까?). 밴드 해체의 중요한 한 가지 이유가 페이브먼트의 음악에서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음악 활동이 과거보다 즐거울지 모르지만, 이에 반해 그의 음악은 좀 ‘얌전한’ 게 아닐까.

이런 느낌은 그전보다 좀 더 다듬어진 사운드, 폭넓은 악기들의 사용 때문에 일어나는 것 같다. “Troubbble”의 귀여운 장난감 피아노 솔로를 비롯하여, “Phantasies”의 장난감 호루라기, 마림바, 핸드클랩이나 흥겨운 요들송 같은 배킹 보컬, “The Hook”의 관악 및 퍼커션의 울림은 경쾌하기 그지없다. “Black Book”에서 갈피를 못 잡듯 급습하는 플롯은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한편 “Church On White”나 “Pink India”(이 곡들은 페이브먼트의 “Here”나 “Major Leagues”를 떠오르게 한다)에서 슬라이드 기타의 싸이키델릭한 탄주(彈奏)는 얼마나 우아하고 달콤하게 들리는지.

또 한편으로, 페이브먼트의 음악을 상상력의 산물로 만들던, 자동기술에서 나오는 추상적이고 난해한 가사도 다소 사라진 듯하다. 강조점은 사실적인 스토리라인을 사용하여 내러티브가 있는 ‘말하는 듯 노래하기'(루 리드적인?)에 있는 것 같다. 이런 방식을 통해 사악한 해적의 모험담(“The Hook”)이나,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Brothers In Arms]를 이정표로 삼았던 어린 소녀와 늙수그레한(맬크머스 또래의) 슬래커의 관계에 대한 신랄한 이야기(“Jennifer And The Ess-Dog”)를 비롯하여, 인도에 열중한 영국 식민주의자를 소재로 삼은 “Pink India”, 고대 그리스 역사와 조우한 “Trojan Curfew” 등이 그려진다. 또한 예전처럼 뮤지션에게 퍼붓던 가사들도 있다. 율브리너에게 헌정한 “Jo Jo’s Jacket”은 모비(Moby)에 대한 악의있는 공격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정교한 조크와 조롱이 담겨있다. “The Hook”에서 쇠갈고리와 보물이 등장하지만 실상은 음악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페이브먼트의 전작(前作)들에 비하면 그렇게 직설적인 것이 아니다. 아니, 죽은 친구에 대한 애가(“Church On White”)처럼 무척이나 진지한 자세를 취한 곡마저 눈에 띈다.

이 앨범은 때때로 생기 또는 예측불가능성을 다소 상실한 것 같지만, 빈둥거리면서 질질 끌리는 듯한 그 특유의 유쾌함과 가벼움 혹은 서정성이 살아있다(그가 페이브먼트의 주요한 건축자였다는 사실도 증명해준다). 그렇다면 전설적인 페이브먼트의 연대기에 필적할 수 있을까? “난 머리를 깎음으로 해방되었다”(“Jo Jo’s Jacket”)는, ‘밴드덤’에서 수갑을 풀고 나온 자의 선언치고는 너무 온순한 게 아닐까. 20010626 | 최지선 fust@nownuri.net

7/10

수록곡
1. Black Book
2. Phantasies
3. Jo Jo’s Jacket
4. Church On White
5. The Hook
6. Discretion Grove
7. Troubbble
8. Pink India
9. Trojan Curfew
10. Vague Space
11. Jennifer And The Ess-Dog
12. Deado

관련 글
Pavement, [Terror Twilight] 리뷰 – vol.1/no.4 [19991001]

관련 사이트
Stephen Malkmus 공식 사이트
http://www.stephenmalkmus.com
Matador 레코드의 Stephen Malkmus 페이지
http://www.matadorrecords.com/stephen_malk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