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20볼빨간 – 야매 – ImStation/Dreambeat, 2001

 

 

넘버 쓰리 혹은 마이너리티의 초상

조선 왕조의 영화를 상징하던 경복궁, 경복궁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민속박물관(‘민속’이라고 했지만 왕궁의 격조에 맞추다 보니 그 건물 역시 만만찮게 웅장하다). 광장에는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의 서울의 골목이 재현되어 있다. 지금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솜틀집, 동네 어귀임을 알려주던 이발소의 유혹적인 삼색등, 불량식품 티가 풀풀나는 형형색색의 사탕과 과자가 놓인 구멍가게는 조국 근대화(!)의 관문을 힘겹게 통과하던 그 시절 삶의 내력을 꽤 정감있게 보여주고 있다. 그 골목 끝 어느 집에서는 온 동네 꼬마들이 동네를 통틀어 한 대뿐인 흑백 TV 앞에 모여 후라이보이 곽규석 아저씨가 진행하는 ‘쑈쑈쑈’를 넋 놓고 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 그런데 이 이야기는 왜 꺼내냐고? 볼빨간의 2집 [야매]를 플레이어에 거는 순간, 아니 인사동 구석에서나 찾아볼 수 있음직한 엽기찬란무비한 음반의 표지를 대하는 순간 저절로 ‘추억여행’의 조각들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특히 히든 카드(?) ‘에레나 정’이 등장하는 6번 트랙 “난 몰라 정말 몰라”에 등장하는 ‘유원지와 팔각정의 맹서’는 기표만으로도 “에레나가 된 순이”나 “미워도 다시 한번” 못지 않은 초절정 복고판 통속의 정수를 뿜어내고 있다. 1972년생의 감성으로 더구나 ‘홍대 앞’이라는 출신 성분을 지니고 어쩌면 저런 곡을 만들고 부를 수 있느냐는 감탄은 이미 진부한 이야기.

그렇다고 해서 이 앨범이 영화 [친구]와 함께 절정에 오른 복고바람에 편승한 ‘야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과장된 남성 코러스를 곁들인 “사랑의 스튜디오”, 전형적인 카바레 사운드 “인생역전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감동의 사부모곡 “이젠 준비가 됐는데” 같은 곡들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니라 ‘넘버 쓰리’라 자조하는 동시대 청춘들의 구겨진 자화상이다. 앨범을 여는 곡 “도무지”와 “볼빨간 땐스”는 ‘엠비언트하다’라는 말을 들이대도 크게 손색이 없을 것이다. 테크노의 몽환적 비트와 트로트의 깨는 창법이 뒤집어지게 어울리는 부분이 나오면 ‘역시나 볼빨간답군’하며 감탄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 볼빨간과 달파란이 ‘이박사 신드롬’의 전조 증상이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누가 뭐라해도 볼빨간은 쌈마이, 판박이 음악의 대명사 뽕짝을 컬트로 만들어버린 전대미문의 현상을 연출한 한 주역이었고, 한국형 테크노(!)의 개척자, 지루박의 당당한 계승자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야매]는 이박사의 후예라는 말로만 그를 규정하는 관행에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들게 만든다. 씨디가 몇바퀴 돌고 내린 결론은 [야매]가 담고 있는 것은 한국형 테크노도, 컬트의 경지에 이른 뽕짝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신 감정을 최대한 과장되게 느끼하게 전달하려는 음험한 의도 혹은 전략만이 열네 트랙을 꼭꼭 채우고 있었다. 이것은 뽕짝의 본류 즉 거칠 것 없는 통속의 세계에 진입하려는 의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볼빨간에 이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 그는 부인할 수 없는 홍대 앞 출신이고 아직도 그 자장 안에 있으니까. 그리고 그의 음악은 마이너리티에 불과한 홍대 앞 씬에서도 마이너리티에 불과하니까. 20010616 | 박애경 ara21@nownuri.net

7/10

수록곡
1. 도무지
2. 사랑의 스튜디오
3. 인생역전타
4. 볼빨간 땐스
5. 모시는 말씀
6. 난 몰라 정말 몰라
7. 내 사랑의 설명서를 주세요
8. 이젠 준비가 됐는데
9. 언감생심
10. 동천각
11. 사랑의 십자말풀이
12. 나는 육체의 환타지
히든트랙
13. 사랑의 스튜디어
14. 인생역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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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빨간과 함께 한 음악 이야기(인터뷰) – vol.2/no.14 [20000716]
이박사 [Pak Sa Revolution & Emotion] 리뷰 – vol.3/no.10 [20010516]

관련 사이트
볼빨간 공식 사이트
http://www.imstation.com/ball
7월 오픈 예정. 볼빨간의 캐릭터를 담은 포스터와 월 페이퍼, 아이콘들이 때 이른 더위에 짜증난 이들을 조금은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