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을 다룬 영화는 정말 많다. 영미권의 록 음악에 대한 영화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령 힙합과 함께 1990년대 이후 대중음악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일렉트로니카 혹은 테크노로 범주화되는 음악을 다룬 영화만 해도 그렇다. 주로 다큐멘터리 형식이 되겠지만, 이러한 특정 장르의 음악과 그에 관련한 문화를 다루는 영화들은 일반인들에게나 그 장르의 골수 팬들 모두에게 영화적 감동과 함께 많은 소중한 정보를 공감각적인 방식으로 제공한다. 가령 국내에서도 이미 소개된 [Modulation]이나 [Better Living Through Circuitry] 같은 일렉트로니카 음악과 문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쪽 DJ와 프로듀서들의 일상사, 음악적 내용과 태도, 그리고 클럽 중심의 서양 ‘일렉트로니카 공동체’의 문화가 어떠한지를 대충이나마 감 잡을 수 있다. 사실 힙합 음악과 문화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는 의외로 많지 않다. 물론 Will Smith, L.L. Cool J, DMX가 폼잡으며 출연하는 주류 상업영화나, 힙합과 R&B를 뒤섞은 사운드트랙으로 무장한 전형적인 흑인영화들은 널려 있지만, 이 영화들 중에 힙합 자체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시도하는 영화들은 없다. 우린 그저, 할리우드에서 스타가 된 이 래퍼들의 코믹하고 마초적인 연기와 마이크로비트의 백그라운드 랩, R&B 음악들을 보고 들으며 힙합에 대한 일면화되고 다소 왜곡화된 상상을 펼칠 수밖에 없다. 무수한 흑인영화들(흑인을 주인공으로 한 백인용 블록 버스터이든, 흑인을 위한 흑인 스타일 코미디이든)이 쏟아지는 미국에서도 몇몇 ‘문제적’ 영화를 제외하면 최근까지도 사정이 이와 같았으니, 한국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꼼꼼히 뒤져보면, 힙합 음악과 문화를 진지하게 다룬 영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힙합이 세상에 이름을 드러낸 이후 무려 25년 여의 기간이 지났고 그 사이 힙합이 청년문화와 대중음악의 엄연한 하나의 중심 축으로 자리잡아 왔다고 할 때, ‘진정한’ 힙합 영화가 간헐적으로나마 만들어져 왔다는 것은 사실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힙합퍼들의 무관심 속에 이런 영화들이 대중문화 시장에서 하나같이 존재감을 상실해 왔다는 것이 더 신기할 뿐이다. 힙합을 주제로 다룬, 특히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들 중에 세 편의 영화를 골라보았다. 선정 기준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우선 특정 시대와 공간의 힙합 문화와 음악에 대한 구체적이고 성실한 묘사가 돋보여야 된다는 점이고, 한편으로 현재 비디오로 출시되어 있어 나름대로 관심만 있다면 쉽게 구입, 감상할 수 있어야 된다는 점이었다. 이들 다큐멘터리는, 주류 힙합의 스타와 그들을 착취(?)하는 메이저 영화의 홍수 속에 힙합에 대한 환상에 빠져있는 우리 힙합퍼들에게, 왜곡된 시각을 교정해보기를 조용하게, 하지만 강력히 권할 것이다. Wild Style Wild Style Productions, 1982/Rhino, 1997 Directed by Charlie Ahearn 비록 미국 대도시의 흑인들에게 한정된 것이긴 했지만, 힙합은 1980년대 초에 이미 음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미국 사회에 거대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한편에서는 이 새로운 형태의 변종 상품 혹은 문화적 표현물에 대해 벌써부터 경계를 하기 시작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역으로 섣부른 축복을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이 영화 [Wild Style]은 대도시의 하위문화적 성격이 보다 강했던 당시의 힙합 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헌사와 축복에 다름 아니다. 힙합의 모든 것이 쏟아져 나왔다는, 뉴욕의 사우쓰 브롱스(South Bronx)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힙합 문화에 대해 최초로 진지한 접근을 시도한 ‘다큐-드라마’였다. 브롱스를 헤집고 다니며 ‘Charlie Video’란 별칭까지 얻었던 이 영화의 감독, Charlie Ahearn은 업타운과 다운타운의 힙합이 문화적, 음악적으로 충돌과 퓨전을 거듭하며 디제잉, 엠씽, 그래피티, 브레이크댄싱의 거대한 복합물로 성장하던 시기의 모든 것을 이 한편의 영화에서 고스란히 담고자 한다. 그는 당시 사우쓰 브롱스의 대표적 클럽인 Dixie, 업타운의 길거리, 전철이 지나 다니는 철로까지, 당시의 힙합퍼들이 지배했던 모든 공간을 투박한 카메라워크로 추적한다. 그 속에는 물론, 집단적인 형태로 길거리에서 즉흥적인 프리스타일 랩 배틀을 벌이고 농구와 브레이크댄싱을 즐기는 흑인 젊은이들이 있다. 한편으로 새벽마다 집에서 뛰쳐나와서 철로 변에 그래피티를 수놓는 다양한 인종의 젊은이들도 있는데, 이들 그래피티 청년들은 조합을 만들어 일종의 문화운동의 형태로 자신들의 예술작업을 펼쳐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클럽에서는 Grand Master Flash같은 출중한 디제이들의 현란한 스크래칭 속에 Grand Master Caz, Busy Bee 같은 엠씨들의 힘있는 랩이 쩡쩡거리고 많은 젊은이들은 이를 배경으로 흥겨운 파티를 벌인다. 특히 영화 마지막 부분의 30여분간의 힙합 파티 장면은 단연 압권인데, 인산인해의 대형 야외공간에서 엠씽, 디제잉, 그래피티, 브레이크댄싱의 모든 것이 폭발적으로 휘몰아친다. Charlie Ahearn은 힙합 문화의 모태가 되는 이 모든 요소들을 일관되게 영화 속에서 조율함으로써 힙합 문화의 특징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정형화해준다. 사실 [Wild Style]은 다큐멘터리적 요소와 극영화적 요소가 다소 어색한 형태로 결합되어 있는 영화이다. 당시 그래피티의 왕, 여왕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Lee’ Quinones와 Sandra ‘Pink’ Fabara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인데, 이들은 주류 예술시장과 게토라는 두 공간 속에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며 한편으로 묘한 애정문제까지 여기에 끼어 든다(이 그래피티 작가들에 대해서는 ‘브루클린 미술관 ‘Hip Hop Nation’ 전시회 관람기’ 참조). 그리고 브롱스의 거물 뮤지션 중 하나인 Busy Bee 같은 이들도 연기자로 출연하여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자신들의 이야기에 바탕하지만, 한편으로는 극영화적으로 이를 가공하여 묘사하는 방식은 물론 당시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겐 오히려 영화의 재미와 구체적 사실 전달이라는 두 측면에서 모두 감점 요인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 인위적인 것과 사실적인 부분이 혼재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드러난 올드 스쿨 힙합의 모든 요소들은, 불과 20여년 사이에 힙합이라는 이름 하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진행되어 왔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설사 영화의 스토리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아마 이 영화에서 시종일관하는 올드 스쿨 힙합의 명곡들은 그 진부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 올드 스쿨의 명인, Grand Master Flash나 DST(혹은 Grandmixer DXT)의 빼어난 디제잉 솜씨를 공감각적으로 감상하는 것은 분명 최신 턴테이블리즘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며, 한편으로 Cold Crush Bros, Busy Bee, Grand Master Caz의 박력있는 래핑은 Jurassic 5 식의 올드 스쿨 래핑의 재현에 매혹된 이들에게 묘한 향수를 제공할 것이다. 이 영화 한 편으로, 막연하게만 여겼던 올드 스쿨 힙합의 모든 것을 젊은 세대 힙합퍼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해도 결코 과장은 아닌 듯싶다. Military Cut (Scratch Mix) – Grand Wizard Theodore & Kevie Kev Rockwell M.C. Battle – The Chief Rocker Busy Bee vs. Lil Rodney Cee with Grand Wizard Theodore from [Wild Style: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Rhino, 1997) Battle Sounds Hip_Hop Documentary Battle Sounds, 1997 Directed by John Carluccio 지금의 턴테이블리즘 혹은 턴테이블리스트의 부상은, 때론 마치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급격한 혁명적 변화의 결과인 것처럼 간주된다. 하지만 Grand Wizard Theodore가 집에서 얼쩡거리다가 ‘스크래칭’이라는 혁신적 기술을 개발한 이후 거의 20여 년에 이르는 턴테이블리스트들의 연대기는 지금의 턴테이블리즘이 결코 기습적인 음악적 전환의 산물만은 아님을 반증한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 [Battle Sounds Hip_Hop Documentary]는 20여 년에 이르는 턴테이블리스트들의 기술적, 음악적 변화의 과정을 한편으로는 전문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일반 팬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보여주는 턴테이블리스트에 대한 거의 유일한 다큐멘터리다. John Carluccio는 뉴욕을 근거지로 오랜 기간 턴테이블리즘을 음악적, 문화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그는 ‘Battle Sounds Turntablist Festival’이라는 일종의 턴테이블리스트 경연대회 겸 이벤트 시리즈를 최근 5년 간 주관해 왔으며, 이 공연 장면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하여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판매해왔다(‘Battle Sounds Turntablist Festival’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룰 예정이다). 이 시리즈와는 별도로, [Battle Sounds Hip_Hop Documentary]는 턴테이블리즘 역사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주제로 하는 다큐멘터리인데, 1997년에 ‘Whitney Biennale’에 출품, 상영되면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영화는 크게 7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턴테이블리즘의 시간적, 기술적 변화 과정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 올드 스쿨의 전설적 디제이들부터 현재의 턴테이블리즘 스타들까지 수많은 턴테이블리스트들의 생생한 인터뷰와 연주 장면, 연주 시범 등이 가득 담겨 있다. Grand Wizard Theodore가 제일 처음에 등장해, 스크래칭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설명하고 Kool Herc, Afrika Bambaataa, Jazzy Jay 등이 올드 스쿨 디제잉에 대한 생생한 회고를 하는데, 그들의 말에 따르면 아마 Herbie Hancock의 [Future Shock](1983)은 이러한 올드 스쿨 디제잉의 절정이자 디제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된 듯하다(그래미 시상식에서 Grandmixer DST의 현란한 스크래칭과 Hancock의 키보드가 훵키하게 결합되었던 연주 장면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1980년대 끝 무렵의 제 2세대 디제이들의 등장 시기에 대한 부분인데, 그 당시 ‘DMC’나 ‘New Music Seminar’ 등의 디제이 경연대회에 출연했던 Superman Crew 등은 현재의 턴테이블리스트에 비해 전혀 뒤질게 없는 현란한 솜씨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어 Q-Bert를 중심으로 한 Invisibl Skratch Piklz(이하 ISP)의 질적인 사운드 진화, Rob Swift를 중심으로 한 X-Men(지금의 X-ecutioners)의 ‘비트 저글링(beat juggling) 혁명’ 부분에서는 본인들이 직접 나와 인터뷰와 함께 실연을 해준다. 그리고 후반부는 1990년대 이후의 ‘DMC’ 등의 배틀 디제이 경연대회에 관한 에피소드와 스타 턴테이블리스트들과의 인터뷰로 맺어진다. 사실 턴테이블리스트나 지망생을 위한 실전 연습용 턴테이블리즘 비디오는 정말 많다. Beat Junkies, ISP, X-ecutioners, Allies 등이 단골로 나오는 강의용 비디오 테이프와 ‘DMC’, ‘ITF’ 등의 턴테이블리스트 경연대회 실황 녹화 비디오들은 지금까지 출시된 것이 수 십여 종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비디오의 내용은 주로 전문적인 기술 시범과 교육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일반 힙합 팬들이 즐기기에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한편으로 턴테이블리즘을 힙합으로부터 때론 소외시키고 격리된 하나의 기술적인 범주로 내몰고 있는 주범(?)이 되고 있다. [Battle Sounds Hip_Hop Documentary]는 기존의 이런 비디오들과는 달리 일반 힙합 팬들이 턴테이블리즘의 음악적 내용과 그 문화의 발달과정에 대해 비교적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힙합의 탄생과 함께 성장해온 턴테이블리즘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담아낸 이 다큐멘터리는, ‘힙합은 관심 없지만 턴테이블리즘은 즐겨 듣는다’라는 최근의 일부 턴테이블리즘 팬들의 주장이 얼마나 모순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Untitled Battle DJing – Rob Swift vs. Mista Sinista of the X-ecutioners from ‘Battle Sounds, Turntablist Festival no. 5’ Live (10th, May, 2001, New York) Pirate Fuckin’ Video Hip Hop Slam, 2000 Produced by Evil Twin & Vince Flores 아직도 ‘베이 에리어(Bay Area) 힙합에 대해 잘 모르겠다’ 혹은 ‘베이 에리어 힙합을 접하고 싶은데 누구의 어떤 음악을 사서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 비디오와 관련 사운드트랙인 [Pirate Fuckin’ Radio 100](Hip Hop Slam)을 먼저 사서, 보고 듣기를 권한다. 비록 이들 비디오와 음반이 베이 에리어 힙합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진 않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이 지역에서 떠오르고 있는 턴테이블리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힙합 사운드, 그리고 그 씬에 대해 전반적인 감을 잡는데 이 이상의 텍스트는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비디오와 음반을 제작한 Hip Hop Slam은 베이 에리어의 대표적인 인디 힙합, 특히 턴테이블리즘 레이블로 유명하다. Bomb Hip Hop이나 Om Records같은 이 지역의 다른 유명 턴테이블리즘 레이블들과 달리 Hip Hop Slam은 Hieroglyphics나 Quannum 레이블처럼 관련 뮤지션들을 일종의 공동체 형태로 묶어주는 역할에 보다 충실하다는 점에서 여타의 턴테이블리즘 레이블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특히 이 레이블 산하의 ISP, Space Travelers, Live Human과 같은 프로젝트 팀들은, Eddie Def, DJ Marz, DJ Quest, Q-Bert, Mix Master Mike, DJ Disk 같은 절정고수 턴테이블리스트들을 규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Pirate Fuckin’ Video]는 Hip Hop Slam의 간판이자 Space Travelers의 리더이며 한편으로 베이 에리어 턴테이블리스트들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한 Eddie Def의 연주를 배경으로 베이 에리어의 그래피티 벽화들을 보여주는 뮤직비디오로 시작한다. 뒤이은 ISP의 신기의 연주장면을 감상하고 나면, Peanut Butter Wolf의 “The Chronicles”가 이어지는데 이 곡이 들려지는 동안 턴테이블리스트 사진작가로 유명한 Timi D의 흑백 스틸 사진들을 감상할 수 있다. DJ Shadow, Shortkut, Automator, DJ Apollo, Billy Jam, David Paul 등 수십 여 거물 뮤지션들의 연주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턴테이블리즘과 이 지역이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는지를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중간에 Kool Keith와 Kut Masta Kut의 뮤직비디오가 끝나면 일본의 요절한 천재 디제이인 DJ Sushi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잠시 일본 얘기를 하자면, 사실 일본의 턴테이블리즘 씬은 자국 내에서 거의 10여 년 간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독자적인 형태를 갖추고 거대한 음악적 장르로서 발전해 왔다. 10대에 이미 확고한 명성을 쌓은 DJ Sushi는 뛰어난 테크닉에도 불구하고 DJ Yoshi 같은 이전의 국제적인 배틀 디제이들과 달리, ‘턴테이블리즘은 스포츠가 아니라 예술이다’라는 명언과 함께 디제이 경연대회 참가는커녕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조차 거부하면서 오히려 자신만의 영역을 일본 내에서 구축했다. 그의 음악들은 DJ Krush와 Eddie Def의 도움으로 베이 에리어에 알려지게 되고 Hip Hop Slam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지만, 그때는 이미 그가 약관 20세의 나이에 자살한 뒤였다. 아무튼 다큐멘터리 감독 Doug Pray의 베이 에리어 턴테이블리즘 씬에 대한 인터뷰가 중간에 이어지고 나면, Hieroglyphics 패거리(Del Tha Funkee Homosapien, Souls of Mischief 등)에 대한 소개가 이어지고, Live Human과 Q-Bert의 라이브 장면들로 [Pirate Fuckin’ Video]는 끝을 맺는다. 이 비디오는 앞서의 두 편처럼 제대로 된 형태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니며, 뮤직 비디오, 공연 장면, 인터뷰 등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두서없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이런 중구난방의 구성이 오히려 현재의 베이 에리어 힙합 씬과 그 사운드의 자유분방함을 형식적으로 반영하는데 보다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듯 하다. 물론 이 비디오를 제작한 Hip Hop Slam을 통해 음악활동을 하거나 이 레이블과 친분이 있는 뮤지션들의 음악이 주로 선곡되었다는 점은 다소 아쉬움을 준다. 가령 Quannum이나 Living Legends 같은 패거리들은 전혀 언급이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턴테이블리즘을 중심으로 새로운 힙합의 대안세력으로 떠오른 베이 에리어 힙합의 화려한 면면을 맛보기로나마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Pirate Fuckin’ Video]는 최적의 ‘베이 에리어 힙합 입문용 텍스트’임에 틀림없다. Inner Light – Zion I Ichiban Itch – DJ Sushi from [Pirate Fuckin’ Radio 100](Hip Hop Slam, 2000) [Freestyle] vs. [Scratch] 이상에서 소개한 힙합 다큐멘터리 영화들은 사실 너무 구닥다리 스타일이거나([Wild Style]), 다소 전문적이거나([Battle Sounds Hip_Hop Documentary]), 혹은 형식적으로 중구난방이라는([Pirate Fuckin’ Video]) 점에서 제대로 된 힙합 영화를 찾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큰 만족을 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저 ‘올드 스쿨 힙합’([Wild Style]), ‘턴테이블리즘’([Battel Sounds Hip_Hop Documentary]), ‘베이 에리어 힙합’([Pirate Fuckin’ Video])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얻는데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영화적 가치라는 측면에서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못 받아도 할 말이 없다. 사실 힙합이 음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확장과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지금, 힙합을 영상을 통해 풀어나가려는 보다 진지한 접근들 또한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가령 Q-Bert의 [Wave Twisters](1998)를 실험적 SF 애니메이션으로 재해석한 동명의 영화는 이미 국내에도 작년에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으며(Q-Bert의 6월 서울 공연에서도 다시 상영된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올 봄에 비디오로 출시되어 예상을 뒤엎는(?)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호평 속에 각종 영화제를 휩쓸었던 두 편의 힙합 다큐멘터리, [Freestyle]과 [Scratch]는 이제 힙합 영화의 수준이 새로운 단계로 올라섰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두 영화는 각기 현재의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으로 한 MC 음악과 문화([Freestyle]), 그리고 턴테이블리즘의 세계([Scratch])를 진지하게 접근함으로써, 현재의 미국 힙합 씬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추적, 묘사하고 있다. Kevin Fitzgerald가 감독한 [Freestyle](2000)은 Mos Def, Freestyle Fellowship, Pharoe Monche, 2 Pac과 Notorious BIG, Medusa, Supernatural, Planet Asia, Black Thought 등의 음악과 변화하는 미국 사회에서 그들 음악의 문화적 의미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도한다. 한편으로 시애틀 그런지 씬을 다룬 다큐멘터리 [Hype]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Doug Pray가 감독한 [Scratch](2001)는 올해 ‘선댄스(Sundance) 영화제’에 출품되어 더욱 유명해진 영화인데, 올드 스쿨 힙합을 주도했던 디제이들부터 현재의 베이 에리어를 주축으로 한 새로운 개념의 턴테이블리스트들까지, 디제이 음악과 문화를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이 영화는 원래 [Vinyl]이라는 제목으로 제작을 시작했었다. ‘베이 에리어 힙합 씬의 현재와 미래’ 참조). 영화적 재미와 작품으로서의 충실함을 두루 갖춘 이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힙합퍼들과 영화 팬들의 많은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한 듯한데, 필자 또한 벌써부터 정식 개봉 혹은 비디오 출시가 기다려진다. 음악적 내용물을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내어 전달할 수 있는 공감각적 문화상품, 혹은 문화적 표현물이 영화라는 점에서, 최근의 힙합 음악과 그 문화의 다양한 형태의 영화화는 매우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물론, 비록 그것이 주류 영화에서 힙합을 다루는 방식과는 다른 형태일지라도 어쨌든 또 다른 형태로 힙합, 특히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상업화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힙합이라는 이름 하에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음악적, 문화적 변화의 과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우리에게 안내해주고 힙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권한다는 점에서 힙합 영화의 현재의 양적, 질적 팽창은 앞으로도 보다 많은 긍정적인 역할들을 해 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20010609 | 양재영 cocto@hotmail.com 관련 글 [us line] 브루클린 미술관 ‘Hip Hop Nation’ 전시회 관람기 [us line] 베이 에리어 힙합 씬의 현재와 미래 관련 사이트 영화 [Wild Style]의 공식 사이트 “http://www.wildstylethemovie.com Battle Sounds’ 기획제작팀의 공식 사이트 ‘http://www.battlesound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