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외, [통일 그날 음악회], 연세대학교 노천극장, 2001. 6. 9. 한영애, [클럽 5+], 폴리미디어 씨어터, 2001. 6. 6 – 10 먼저 밝혀둔다면 이 글은 두 베테랑 음악인의 우열을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렇게 읽힐 것 같다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두 음악인에게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훨씬 많았다. 무엇보다도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에서 둘은 ‘남녀 대변인’ 같은 존재였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했다’는 표현에 가장 어울릴 사람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한영애는 이번 공연 말미에서 “행진”을 불러서 어떤 유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행진”과 “누구 없소”가 발표된 지 15년 뒤에 가진 무대에서 둘의 모습은 달라 보였다. 한 가지 지적할 점은 전인권과 그가 속한 밴드 들국화가 섰던 무대는 단독 공연이 아니라 합동 음악회의 한 순서라서 공정한 평가에는 한계가 있을 듯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통일 그날 음악회]의 기획자가 ‘전인권’으로 되어 있고 무대에 함께 했던 이은미, 사랑과 평화 등도 전인권의 영향력 하에서 함께 무대에 섰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인권이 주도한 공연’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통일 그날 음악회]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성인으로 살아온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생각을 자아내는 자리였다. 이 음악회는 1987년과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후보’로 출마했던 백기완 선생이 운영하는 통일문제연구소에서 펴내는 계간지 [노나메기]의 후원을 겸하여 마련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1980년대식 문화공연과 1990년대식 록 페스티벌이 결합된 자리였다. 다시 말해 1980년대 이후 선진국들에서 성행했던 ‘양심적 콘서트’라는 메가이벤트에 가까운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이 날의 공연이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이런 결합을 잘 수행했는가에 대해서는 지금 단정적으로 답하기 힘들다. 이제 첫 발을 내딛었을 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직 ‘2000년대’라는 상도 불분명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이 공연에 대한 글에 대한 주된 대상은 이런 성격의 콘서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이 행사를 주도한 전인권과 들국화의 무대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간단히 말해서 이 날 들국화의 공연은 지난해 ‘예술의 전당’ 야외무대에서 있었던 공연, 그리고 그 뒤 소극장 ‘학전’으로 자리를 옮겨 치러진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식상하다’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을 무대였다. “그것만이 내 세상”, “매일 그대와”, “사노라면”, “세계로 가는 기차”로 이어지는 연주는 작년의 무대와 똑같았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체력을 요하는 코러스 부분에서 관객을 향해 마이크를 대는 것은 여전했다. 다행이라면 전인권이 노래 제일 마지막에 B♭까지 올라가는 ‘싸비’ 부분을 소화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사노라면”의 중간부의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라는 부분, “세계로 가는 기차” 마지막의 “너도 가도 나도 가야지” 부분에서 관객과 함께 ‘선창/후창’을 반복하는 것도 여전했다. 그런데 그걸 여러번째 본 나로서는 처음에 느꼈던 즉흥감 대신 지루함이 다가왔다. 여전한 들국화의 팬들은 그들만큼이나 여전한 전인권의 카리스마를 느끼면서 집단적 신명을 즐기는 모습이었지만… 또 하나 여전했던 점은 밴드의 구성이다. 한국의 주류 록 음악(이게 영미 사회처럼 ‘떼돈 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지만)의 공연에서 밴드 구성에는 특정한 규준이 존재한다. 대략 기타 둘, 베이스 기타 하나, 키보드 둘, 드럼 셋트 하나다. 이 날도 비슷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기타가 하나였고, 드럼이 둘이었다는 점이다. 기타는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이, 드럼은 역시 사랑과 평화의 드럼 주자와 주찬권이 각각 담당했다. 공연 마지막이라서 음향의 밸런스가 많이 무너진 상태라 드럼이 두 셋트 있다는 것이 하나 있는 것에 비해 어떤 특별한 효과가 있는지는 감지하기 힘들었다. 단지 이렇게 변칙적으로 밴드를 운용해야만 하는 상황을 나는 계속 아쉬워했다. 작년 공연에서도 같은 편성이었지만 그걸 ‘과도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들국화의 음반이나 공연에서 최구희나 손진태의 특유의 기타 톤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아무리 출중한 기타리스트라고 해도, 상이한 스타일의 연주인인 최이철의 기타가 들국화의 음악에 썩 부합한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팬들은 이런 점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하긴 대중음악 공연이 주는 쾌락이 연주의 묘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대변자의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다. 이건 하찮은 대중음악이나 훌륭한 대중음악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달리 말한다면 앞으로 들국화의 공연은 ‘사운드를 통해 청중을 사로잡는’ 것 못지 않게 이런 사운드 외적인 요인에 의해 많이 좌우될 것이라는 말도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새 음반이 나올 때까지 들국화의 공연은 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고, ‘1980년대 민중가수’인 윤선애가 특별 게스트로 출연하여 전인권과 함께 “아침이슬”을 부르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공연장을 나섰다. 다음 날 한영애의 공연을 보기 위해 대학로로 가면서도 나는 큰 기대를 걸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한영애의 공연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에 ‘신곡’은 몇 개 없을 것이 분명하며 심지어 나는 한 사람의 팬의 입장에서 이번 공연의 ‘흥행’에 대해서도 염려했다. 하지만 공연은 전회 매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예약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2층의 구석자리에 앉아야 했다. 공연장에 입장하면서 맥주 한 잔과 새우깡을 나누어주는 것도 이색적이었지만 더욱 이색적이었던 것은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처음 무대에 등장한 인물이 ‘턴테이블리스트’였다는 점이다. 그는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의 “Block Rockin’ Beats”를 틀고 턴테이블을 문질러 대면서 리듬을 만들어냈다. 이어 헐렁한 바지와 야구모자를 쓴 젊은 애들 두 명이 나와 랩을 해댔고, 한영애는 제일 마지막으로 나왔다. 표준적으로 편성된 밴드의 연주에 큰 기대감을 갖지 않았던 나 같은 사람에게 ‘한 방 먹이는’ 순간이자, 공연 타이틀이 왜 [클럽 5+]인가를 설명해주는 대목이었다. 그 뒤에도 한영애의 노래는 록 밴드의 악기 연주, 턴테이블의 치키치키거리는 소리, 래퍼들의 래핑과 어우러졌다. 턴테이블리즘과 랩/힙합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어설프다’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말도 현장에서 나오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노래 뿐만 아니라 진행 자체가 하나의 연주였다. 예를 들어 래퍼들과 더불어 “이 나이에 길을 못찾았다는 게 말이 돼 안 돼?”라고 묻다가 “길이 없으면 길 내지 뭐”라고 말한 다음 “말도 안돼”를 부르는 식이었다. 소극장 공연에서 짜증스러운 시간들인 ‘MR 틀어놓고 노래부르는 게스트’도 없었고, 뮤지션인지 개그맨이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드는 수다 잔치도 없었다. 중반 이후에는 래퍼들의 활동(?)이 뜸해졌지만 기존 곡들이 새롭게 해석되었기 때문에 색다른 느낌을 주는 건 여전했다. 예를 들어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은 보싸 노바 풍으로, “여울목”은 테크노 풍으로 각각 편곡되었다. 20여 곡을 부른 뒤 앵콜로 “코뿔소” 등 두 곡을 부르기까지 해서 오랜 시간이 흐른 줄 알았지만 1시간 4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상의 이야기가 “한영애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단행한 반면, 전인권과 들국화는 ‘영광스러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말로 들릴지 모르겠다. 나 역시도 어떤 장면을 목격하기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름 아니라 한영애의 공연장을 찾은 나이든 관객들은 낯선 사운드에 적잖이 당황했다는 점이다. 특히 2층의 관객들은 모두 기립해서 발광하던 마지막에도 차분히 자리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려고 했다. 아마도 그들은 ‘베테랑이면 예전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다보니 들국화의 공연을 보고 난 직후 들었던 약간의 서운한 생각도 바뀌었다. 불완전하면 불완전한대로, 초라하면 초라한대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그다지 문제될 건 없다는 생각 말이다. 문제는 그것이 언제까지 ‘팬과 함께’ 할 수 있느냐는 점일 것이다. 한영애가 앵콜을 마치고 “우리 모두 곱게 아름답게 나이 들어 갑시다”라고 한 말도 비단 음악인들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인 듯하다. 그래서 쉽게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글이 마지막에 이렇게 꼬여버리고 있다. 그런데 아차, 여기는 젊은 애들만 오는 곳이었지. 20010615 | 신현준 homey@orgio.net P.S. 전인권은 6월 14일부터 홍대 앞의 [쌈지 스페이스]에서 솔로로 장기 공연에 돌입한다. 최성원은 신곡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고, 밴드는 신곡의 골격이 갖춰지는대로 레코딩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번의 ‘마약’에 관한 발언에 대한 ‘당국의 반응’은 아직까지는 크게 없다고 한다. 한영애는 작년에 발매되었지만 유통사의 부도로 시중에서 구하기 힘들어진 5집 앨범에 두 곡의 신곡을 추가하여 [한영애 5+]라는 이름의 새 앨범을 곧 발매할 예정이다. 관련 글 들국화 공연 리뷰 – vol.2/no.18 [20000916] 주찬권, [One Man Band] 리뷰 – vol.2/no.2 [20000116] 배리어스 아티스트, [A Tribute to 들국화] 리뷰 – vol.3/no.5 [20010301] 팬과 함께 나이들어가는 무대의 주술사: 한영애 공연 리뷰 – vol.2/no.1 [20000101] 한영애, [난다 난다 난·다] 리뷰 – vol.1/no.2 [19990901] 관련 사이트 들국화 팬 사이트 http://my.dreamwiz.com/aproman http://www.hangjin.wo.to 한영애 공식 사이트 http://www.hanyounga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