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22더더 – The Man In The Street – Sky Music/Ene Media, 2001

 

 

새 보컬과 함께 활달한 분위기로 바뀌다

단정적으로 말해 ‘한국형 모던 록'(혹은 ‘모던 록 가요’? 거칠게 말하자면, 과도하지 않은 정도의 기타를 내세운 부드럽고 멜로딕한 노래들)이 일부 한국 대중가요’판’에서 통용된 지 좀 시간이 흐른 듯하다(그래봤자 1990년대 중반부터겠지만). 주주 클럽, 자우림과 더불어 그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더더(The The)는 1997년 데뷔 앨범을 발표한 이래, 프론트맨 김영준이 밴드를 이끌면서 여성 보컬을 내세운 밴드의 한 전형을 보여 주었다(앞서 말한 자우림, 주주 클럽도 역시). 1999년 말, 박혜경이 솔로로 독립하자 해체된 듯 했는데, 2년여만에 새로운 보컬 한희정을 내세워서 3집 [Man In The Street]을 내놓았다(홈페이지에 ‘작년 11월 앨범이 나올 예정이었지만 지연되었다’는 공시가 있는 걸 보면, 앨범이 나오기까지 나름의 진통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김영준이 리드하는 2인조 체제 – 축소된 형태의 밴드,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밴드 형태는 아닌 – 를 고수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지만.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것은 교체된 보컬 목소리다. 김영준의 말을 빌리자면, 음악 경력이 없던 한희정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 더더의 음악을 소화하도록 10개월간 트레이닝시켰다고(이 대목에서 남성 생산자가 기획, 운용하고 여성이 얼굴 마담 역을 하는 밴드의 전범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청아하면서도 약간 허스키한 여린 결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던 박혜경과 다르게, 한희정은 굵직하고 힘있는 결을 보여준다. 첫 곡이자 타이틀 곡인 “사랑해요”를 들어 보라. 미드 템포의 이 곡(을 비롯한 이 앨범의 곡들)은 과거보다 좀더 강하고 활발한 사운드를 보여주는데, 이는 역시 목소리의 영향력이 큰 탓일까. 한희정의 보컬이 한 가지 색깔만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여리고 귀여운 “널 사랑해”나, 비감한 어조의 “버린 거야”도 선보이고 있다. 한 곡 안에서도 음색을 변화시켜, 버스 부분에서는 굵직하고 강한 톤으로, 코러스 부분에서는 여린 가성의 톤으로 처리한다.

타이틀 곡뿐 아니라 대다수 곡들이 활달한 사운드를 보여주는데 주력한 듯하다. 특히 굵직한 선의 베이스와, 세분화되고 강화된 드럼 비트가 두드러진다. 전작들에서 거칠고 스트레이트한, 혹은 산뜻한 소리를 내기도 했던 기타는 이 앨범에서 보다 중후한 톤으로 바뀌었다(이상에서 지적한 사운드 변화의 기미는 2집부터 있었지만). “사랑해요”, “가려하니”에는 세션으로 참여한 기타리스트 샘 리(Sam Lee)의 연주도 들린다.

기타 중심의 사운드이긴 하지만, 곡을 채우고 화려하게 수식하는 신서사이저 배킹(오르간 소리, 관현악 오케스트레이션이나 기타 효과음 등)이 전보다 더 잦아진 것 같다. 배킹 코러스나, 중간 중간 들리는 피아노 소리(“버린 거야” “가려하니” 등 많은 곡에서), 트럼펫 소리(“버려”) 같은 양념 역시 그러하다. 막간에는 1분 내외의 짧은 낭송곡 소품들이 더해져 있다. 몇몇 소리들의 조합, 목소리의 변조로 이루어지는 “버린 거야… 왜”와, 몽환적인 사운드에 전위적인 듯 툭툭 던져지는 트럼펫 소리가 실린 “나”의 경우가 그렇다. 불협화음적인 “버려”, 몽환적인 소리가 등장하는 “You Said”는 전주부에서 잠깐 실험적인 사운드를 선보인다(물론 이런 곡들이 이 앨범의 주요한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덧칠로 인해, 더더의 (특히 1집의 ‘몇몇’ 곡에서 보여주었던) 풋풋하고 상큼한 기타 팝 사운드는 사그라들어 버렸다. 너무 지나친 조미료는 재료 고유의 맛을 감퇴시키기도 한다.

사운드와 직접적으로 관련없는 이야기 하나. 수록곡의 다른 버전으로 너댓 곡을 보너스 트랙 식으로 싣는 건 더더뿐 아니라 한국의 많은 음반에서 변하지 않은 관행(?)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그 유명한 “Over The Rainbow”(는 잠깐이고 한참―한 4분쯤?- 시간이 흐른 후 더더의 1집 수록곡 “Delight”의 한희정 버전, 그러나 사실은 박혜경의 모방 버전이 등장한다)는 그렇다치고, 타이틀 곡과 서브타이틀 곡의 반주(MR) 버전 같은 채우기 식 수록곡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음반 기획사에 얽힌 것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마지막으로 그들 자신의 음악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자. 더더가 모던 록 밴드라고 분류되는 것에 대해 김영준이 과거에 한 인터뷰에서 “모던 록이라기보다는 그냥 모던한 음악입니다… 저는 이미 모던한 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거기에 어떤 걸 더 할지 많은 생각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그렇지만 삶이 바탕이 되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모던한 음악’이란 무엇일까? 이번 앨범의 라이너 노트에 적힌 바, “난 가요를 많이 듣지 않는다. 정체성이 없는 음악들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팝은 우리의 음악이 아니다. 그래서 아직 배울 것이 많다.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지 아직 모른다. 한국적인 음악… 그건 나에게 꿈에 불과하다”라는 나름의 변은 솔직하다는 인상은 주지만, 아주 새삼스러운(‘모던한 음악’이란 외국의 팝 음악을 수용한 결과물?) 것이다. 더더가 만든 음악(그의 말을 조합하자면 ‘모던한 팝/가요’) 역시 정체성이 없는 음악이긴 마찬가지가 아닐까? 20010612 | 최지선 fust@nownuri.net

4/10

수록곡
1. 사랑해요
2. 가려하니
3. 널 사랑해
4. 버린 거야
5. 버린 거야… 왜
6. Because
7. 버려
8. 나
9. I Never
10. You Said
11. 버린 거야 (Acoustic Studio Version)
12. Over the Rainbow (Acoustic Studio Version)
13. 사랑해요 (MR)
14. 가려하니 (MR)

관련 사이트
더더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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