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인디아(India)’를 찾아서 이 글은 자메이카(에 뿌리를 두고 국제화된) 음악을 다룬 시리즈 “글로벌-디지틀 시대의 ‘월드 뮤직'”의 후속편이다. 레게라는 이름으로 총칭되는 음악을 다루기에는 제목이 너무 ‘일반적’이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후속 시리즈의 대상은 인도 음악으로부터 영향받은 음악이다. ‘인도 음악’과 자메이카가 무슨 상관이냐고? 그건 일단 우리 같은 아시안들의 책임이 아니라 서양인(유럽인)들의 이상한 ‘역사적 편견’ 때문이다(사족: 이 편견으로 인해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의 언어 습관도 이상해졌다. 영어로는 모두 ‘Indian’이지만, 인도에 사는 사람은 ‘인도인’으로, 북아메리카의 선주민들은 ‘인디언’으로 부르니 말이다. 게다가 중남미의 선주민들은 ‘인디오’라고 부르고). 이 편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을 찾아가 보자. 통계마다 편차는 있지만 현재 영국의 인구에서 ‘유색 인종’은 전체 인구의 5%에서 10% 사이를 차지한다고 한다. 특히 이스트 엔드, 즉 런던의 동부는 유색 인종이 많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들 ‘검은 피부의 영국인’들은 미국의 흑인들처럼 노예제에 대한 기억으로 공유감을 형성하는 집단이 아니다. 이들 대부분은 20세기 이후 이민의 역사의 산물이고, 따라서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텔리’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영국의 유색 인종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자메이카 등 카리브해의 섬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과 인도와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대륙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다. 묘한 것은 자메이카계 같은 아프로캐러비언들(afro-carribeans)의 위치다. 이들이 몰려 사는 곳은 ‘West Indian Community’라고 불리는데, 직역하면 ‘서인도인 공동체’다. 미국 밑에 있는 카리브해 연안의 섬들을 서인도 제도라고 부르니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인도’라는 말이 들어가니 영 낯설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려면 세계사와 세계지리 책을 보고 공부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악몽 같은 입시교육 하에서 배운 내용들이 흥미로운 기억으로 남아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대략 콜럼부스가 ‘자신이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라고 생각했다’는 정도만 확인하고 넘어가자. 기억력이 더 좋은 사람은 영국이 ‘세계 경영’을 하던 시절 카리브해의 도서와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 개척을 위해서는 ‘서인도 회사’를,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대륙의 식민 지배를 위해서는 ‘동인도 회사’를 설립했다는 사실도 떠오를 것이다(혹시 역사 선생님이 ‘미친 개’과에 속했던 사람에게는 양해를!) 카리브해의 섬나라 사람들을 ‘서인도인’, 인도 대륙으로부터 이민해온 사람을 ‘동인도인’이라고 부르는 영국인의 이상한 관습은 지금도 남아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들 마이너리티들 사이에 연대감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뿌리를 찾는다면 서인도인은 ‘아프리칸’에 가깝고, 동인도인은 ‘아시안’에 속하지만 말이다. 따라서 연대감이라고 한 것도 ‘우리 모두는 자랑스러운 인도인(Indian)’이라는 적극적 형식의 것이라기보다는 ‘영국인에 의한 식민 통치’라는 역사적 기억에 의해 느슨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자메이카의 라가/댄스홀의 슈퍼스타 슈퍼 캣(Super Cat)의 닉네임이 “Wild Apache”라는 사실, 그리고 영국에서 ‘라가 정글(ragga jungle)’의 선구자의 예명이 UK 아파치(UK Apache)라는 사실도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아시아계 밴드인 아시안 덥 파운데이션(Asian Dub Foundation)에 ‘dub’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사실도 시사적이다. UK Apache & Shy FX – Original Nuttah ‘동인도인’들은 이들 ‘서인도인’에 비해서는 팝 차트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1993년 아파치 인디언(Apache Indian)이 등장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버밍엄 출신의 아파치 인디언은 인도 펀잡 지방에 뿌리를 둔 방그라(bhangra)라는 음악을 라가 및 랩과 결합시킨 “Arranged Marriage”라는 곡으로 처음에는 레게 차트에서, 나중에는 팝 차트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는 “(영국에서) 최초의 아시아계 팝 스타”라는 칭송을 들으면서, 아시아계로서는 최초로 ‘The Top Of The Pops’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였다. 잘만 하면 [New Musical Express]나 [Melody Maker]의 표지를 장식할 수도 있었지만, ‘예쁘장한 백인 오빠가 표지를 장식하지 않으면 아리따운 백인 언니들이 잡지를 사지 않는다’는 업계의 불문율로 인해 이건 실현되지 못했다. 성질 급한 평론가들은 “방그라가 아시아계 청년들에게서 갖는 의미는 1970년대 레게가 흑인 커뮤니티에서 가졌던 의미와 유사하다”([East II West: Bhangra For The Masses](Nachural, 1993)의 라이너 노트))라고 썼다. 아시안계 최초의 ‘영국’ 팝 스타 아파치 인디언 그렇다면 이렇게 상상할 수 있다. 서인도인들에게 레게가 있다면, 동인도인들에게는 방그라(bhangra)가 있고, 양자간의 문화적 상호작용도 활발하다. 또 서인도인들에게 라스타파리아니즘(라스타주의)이라는 세속적 종교가 있다면, 동인도인들에게는 그에 못지 않게 심오하고 영적인 각종 사상이 있다. 하지만 서인도인과 동인도인 사이의 연대감 운운하는 이야기는 이 정도로 그치자. 이제 인도인은 ‘아시안’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것도 물론 같은 ‘아시안’ 입장에서는 불만스럽기 그지없고, 게다가 종교와 사상이 다른 파키스탄계, 방글라데시계, 스리랑카계들도 모두 ‘아시안’이라고 불린다는 문제가 있지만 이미 관습이 되어버렸으니 양해하고 넘어가자. 그래도 ‘아시안’, ‘인디안’ 등의 용어가 국적인지 혈통인지 계속 헷갈릴지 모르겠다. 그러니 앞으로는 ‘아시아계’, ‘인도계’ 등으로 쓰겠다. 이 글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국적은 ‘영국인(british)’이고, 혈통은 ‘인도계’다. 주) 주) 혈통이라는 표현은 그저 ‘재미로’ 붙여본 것이다. 영어로 ‘ethnicity’라고 쓰는 단어로 이해하면 좋겠다. 한가지 더 이상한 점은 미국의 경우 African-American, Asian-American식으로 ‘ethnicity’에 해당하는 용어가 앞에 붙는 반면, 영국의 경우는 Anglo-Asian, Anglo-Indian 식으로 ‘ethnicity’에 해당하는 용어가 뒤에 붙는다는 점이다. 이유는 알 수 없는데 조만간 교통정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덧붙여 지적한다면 영국계, 영국인이라는 표현도 English(및 Anglo라는 접두어)와 British 모두 동양인들에게는 ‘영국’이므로 혼동스러울 수 있다. 어느 정도 분명한 것은 British라는 말이 국적(nationality) 개념이라는 점이다(옛날이라면 영 연방 모두를 포함했고 지금은 잉글랜드 외에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를 포함한다). 따라서 아시아계 영국인은 ‘British’일 수는 있어도 ‘English’일 수는 없다. 방그라란 무엇인가 그런데 방그라란 도대체 무엇인가? 거칠게 말한다면 ‘현대 영국에서 아시아계 주민들이 즐겨듣는 음악’을 총칭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따지고 들어간다면 역시 복잡해진다. 방그라의 기원은 펀잡(Punjab) 지방에서 수확하면서 부르던 ‘포크 댄스 음악(민속 춤 음악)’이고, 돌(dhol), 돌락(dholak), 툼비(tumbi)같은 고유의 타악기로 연주되어 왔다. 그러니까 영국에서 건너오기 훨씬 전부터 수세기 동안 계승되어 온 전통 민속음악인 셈이다. 인도의 지도 그런데 여기서 펀잡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도를 펼치면 펀잡 지방이 인도의 북서부, 그러니까 파키스탄과 맞닿은 곳에 위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지도에는 ‘Punjab’이라는 지역명이 나오지 않지만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에서 북서쪽으로 암리차르(Amritsar)와 스리나가르(Srinagar)가 위치한 곳이 펀잡 주(洲)다). 이 지역은 비옥한 농토 지대이자 면화 생산지로 유명하고, 만약 이곳이 없었다면 영국의 산업혁명도 없었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건 그렇고, 이곳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경지대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종교적 갈등이 예민하다. 인도는 힌두교, 파키스탄(및 방글라데시)은 이슬람교를 각각 국교로 갖는다는 사실은 대충 알 것이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에 각자 믿는 종교별로 ‘헤쳐 모여’하는 와중에 인류역사상 최대인 1,000만명이 살 곳을 찾아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250만명이 이런저런 이유로 사망했다는 사실은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펀잡 지방은 인도 국내에 남아있는 이슬람교도들이 많은 지역임과 동시에 시크(Sikh)교라는 또 하나의 종교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교리는 힌두교와 비슷하지만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는 시크교의 (광)신도들은 ‘과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인도 전체 인구의 2%를 차지하는(그래도 2,000만명이다) 시크 교도들은 펀잡 지방의 독립을 요구하는 지하 투쟁을 오랜 기간 지속해 왔다. ‘방그라는 펀잡의 시크교도들의 투쟁의 음악이다’라고 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단지 펀잡 지방은 힌두어가 주류인 인도 사회에서 펀잡어라는 별도의 언어를 사용하고, 종교와 문화도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방그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 음악과는 기원이 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아는 인도 음악? 대부분의 팝 음악 팬들에게 인도 음악은 ‘중기 비틀즈 음악의 백그라운드 음악’ 정도일 것이다. 서양의 기타 같기도 하고, 한국의 가야금과도 비슷한 시타(sitar)라는 악기, 그리고 시타의 고수인 라비 샹카(Ravi Shankar)라는 인물의 이름은 ‘조지 해리슨 때문에’ 널리 알려졌다. 라이 쿠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앨범 [A Meeting By The River](1993)에서 함께 연주한 비슈와 모한 바트(Vishwana Mohan Batt)의 음악을 좋아할지도 모르겠다(V.M. 바트는 라비 샹카의 제자이고 ‘엘리트’에 속한다). 이들 외에도 ‘인도 음악’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각종 ‘명상 음악'(이나 ‘devotion music’)도 방그라와는 거리가 있다. 이들은 민속 음악이 아니라 ‘클래식'(정확히 말하면 ‘클래시컬’) 음악이며(유럽에만 클래식 음악이 있는 건 아니니까), ‘월드 뮤직’의 한 장르로 마케팅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이들의 음악은 클럽이나 공연장에서의 상업적 공연보다는 음악대학 강당에서 열리는 워크숍에서 더 자주 들을 수 있다. 이들의 음악은 엄밀히 말하면 ‘힌두 음악(hindi music)’이고, 따라서 ‘펀잡 음악(punjabi music)’인 방그라와는 차이가 많다. ‘종묘제례악’과 ‘춘향가’가 똑같은 음악(국악?)이라고 우기는 사람이면 똑같다고 볼지도 모르겠다. 그밖에 ‘월드 필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도가 영화의 강국이며, 영화산업의 근거지인 봄베이를 볼리우드(bollywood)라고 부르며, 인도 영화는 음악과 긴밀하게 관련되며, 따라서 인도의 대중음악은 거의 대부분 ‘영화 음악(film music)’이라는 점도 알 것이다. 아샤 보슬(Asha Bhostle)이라는 가수(이자 배우)는 ‘세계 최장시간 레코딩 기록’을 보유한 인물이다(나중에 소개할 인도계 영국인 밴드 코너숍(Cornershop)이 자신들의 최대 히트곡 “Brimful of Asha”에서 헌정한 인물이 바로 아샤 보슬 여사다). 따라서 ‘현대적’ 방그라와 관련이 있다면 라비 샹카나 V.M. 바트같은 ‘클래식’ 인도 음악이 아니라 ‘대중 음악’인 영화 음악일 것이다.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음악도 만만찮은 영향력이 있지만 너무 장황해지므로 나중으로 미루자. 여기서는 단지 볼리우드의 ‘스타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 음악(및 음악 영화)은 그 넓은 땅덩이와 그 많은 인구들을 문화적으로 통합시키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점만 짚고 넘어가자. 그러다 보니 “인도 영화의 공식은 한두 명의 스타, 여섯 곡의 노래, 세 개의 춤”이라는 말로 표현되듯이 ‘장르 컨벤션’이 강하다. IASPM(International Association of the Study of Popular Music)에서 발간한 집단 저작 [Music At The Margin](Sage, 1991)에 의하면 인도의 대중 음악은 ‘전통을 현대화’했다는 비교적 좋은 평을 듣지만, ‘동질적’이라는 그리 좋지 않은 평도 함께 듣고 있다. 그건 그렇고. 여기서 다음 순서가 ‘방그라의 역사’, ‘인도계 영국인 음악의 역사’라고 예상하여 다른 데를 클릭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건 다음으로 미룬다’고 말해야 할 듯하다. 무언가 귀를 확 잡아끄는 게 있어야 관심을 가지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그러니 인도계 영국인의 음악 가운데 첨단적인 사운드부터 먼저 들어보자. 탤빈 씽과 ‘아시안 언더그라운드’ 본래 인도계 영국인들의 음악의 인트로는 다른 인물을 내세우려고 했는데, 단지 ‘최근 새로운 음반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탤빈 씽(Talvin Singh)이 인트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인트로에서 말해버리고 치워버리기에는 비중이 큰 인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탤빈 씽의 음악이 ‘방그라’라는 범주로 집어넣고 끝내버릴 단순한 음악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각종 음악 사이트나 잡지의 장르 분류를 보면 방그라라는 단어가 들어 있지만 그건 앞서 말했듯 저 용어가 ‘인도계 영국인들의 현대적 대중 음악’을 총괄하고 있다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시안 언더그라운드’의 좌장 탤빈 씽 탤빈 씽에게는 방그라라는 특수한 딱지보다는 ‘드럼&베이스라는 일렉트로니카의 한 장르를 대표하는 여러 인물들 중 한 명’이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또한 돌이나 돌락을 주로 사용하는 방그라 음악과 달리 탤빈 씽이 주로 사용하는 타악기는 타블라(tabla)다. 인도의 전통 악기로서 일단 사운드만 들으면 주술적(‘뱀이 혀를 낼름거리며 춤추는?’) 느낌을 던지는 악기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음악을 드럼&베이스&타블라(drum’n’bass’n’tabla)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생겼다. 요즘이야 월드 투어로 공사다망하겠지만, 1995년 중반까지 탤빈 씽을 만나려면 이스트 엔드의 클럽가에서 매주 월요일 열리는 아노카(Anokha)라는 클럽을 찾아가면 되었다(이때 ‘클럽’이란 장소라기보다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노스 런던 대학교에서 일요일에 열렸던 아노카는 블루 노트(Blue Note)라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때부터 아시아계 DJ들과 펑크 밴드들이 찾아와서 드럼&베이스의 무거운 사운드와 비트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1996년부터는 2층에 캘커타 사이버 카페(Calcutta Cyber Cafe)라는 곳을 마련하여 춤추다 지친 사람들이 ‘칠 아웃 룸(신선실?)’으로 이용하게 만들었다(이 카페는 때로는 음악인들이 음향에 관한 실험 성과를 서로 교환하고 세션도 가지는 ‘비공식 공간(informal space)’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스테이트 오브 벵갈(The State Of Bengal), 베두인 어센트(Bedouin Ascent)같은 아시아계 일렉트로니카 DJ들도 아노카를 들락거리게 되었다. Bedouin Ascent – Ganga Dev 처음에는 주로 인도계 영국인들이 주요 고객이었지만 소문이 나면서 아시아계가 아니라도 ‘아시안 언더그라운드’를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규 레코딩 작업으로 이어졌고, 씽은 자신이 설립한 레이블 옴니(Omni)를 통해 [Anokha Sampler]라는 이름의 시리즈로 음반을 발매하다가 1997년에는 아일랜드(Isaland) 레이블과 계약하여 [Anokha: Soundz Of Asian Underground]라는 정규 컴필레이션 음반을 발매했다. 이 음반에 수록된 음악들은 영국에서 ‘아시안’에 대한 이미지, 좋게 말하면 ‘영적’, ‘정신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생기 없고 수동적’이라는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탤빈 씽의 경력은 몇 차례의 공식 인터뷰를 통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그는 런던에서 태어난 이른바 ‘이민 2세’다. 그렇지만 다른 이민 2세와 다른 점은 16살 때 인도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이유는 다섯 살 때부터 연주하기 시작했다는 타블라를 정식으로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의 성장 배경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그저 어릴 때부터 악기를 연주해 왔고,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난 것을 보면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은 아닌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탤빈 씽은 1980년대 후반 런던으로 돌아왔는데, 그가 다시 돌아온 배경에는 인도의 클래식 음악계에 대한 불만이 작용한 것 같다. [CMJ]지와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이런 불만을 읽을 수 있는데, 다행히도 그를 가르친 타블라 연주자는 (그의 표현에 의하면) “non-bullshit person”이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는 인도의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라비 샹카와 연주하라고 요청했지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상세히 알 수 없지만, 탤빈 씽에게 인도의 클래식 음악계의 상황은 “all the bullshit”이라는 말로 간단히 표현되었다. 탤빈 씽이 관심을 기울인 곳은 영국의 댄스 클럽 씬이었고, 때는 마침 드럼&베이스의 초기 형식인 정글(jungle)이 싹트고 있던 때였다. 그는 드럼&베이스의 브레이크비트를 기본으로 하면서 타블라 등 인도의 악기와 인도 풍의 보컬을 섞는 독자적 실험을 계속해 나갔고, 아노카를 구상하던 무렵에는 드럼&베이스의 거장인 LTJ 부켐(LTJ Bukem)과 만나면서 흑인계 DJ들과의 교류도 넓혀 나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창조된 사운드는 인도계 사람들의 ‘로컬 커뮤니티’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라기보다는 런던이라는 ‘글로벌 메트로폴리스’에서 만들어진 사운드가 되었다. 퓨전이라는 말을 떠올리기 쉽지만 본인으로서는 황당한 모양이다. 왜? [CMJ]지와의 인터뷰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할테니 각자 생각해 보자. “나의 문화는 실제로 런던에 있다. 내가 하는 것은 실제로 퓨전이 아니다. 퓨전이란 두 가지 요소를 함께 혼합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음악 속에 있는 모든 요소들은 내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내가 왜 이 요소들을 퓨전하는가? 나는 그런 것은 할 수가 없다. 그건 나의 음악이다. 내 음악은 ‘나’라는 개인이다”([CMJ]지와의 인터뷰). 20010530 | 신현준 homey@orgio.net * 시리즈 차례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1): 타블라를 두드리면서 춤추는 ‘영국인’들 – vol.3/no.11 [20010601]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2): 방그라, 드럼 머신과 레게를 만나다. – vol.3/no.12 [20010616]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3): 정치 선동 그리고 파란 눈의 ‘문화적 아시안’들 – vol.3/no.13 [20010701]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4): 신대륙으로 건너간 아시안 비트 – vol.3/no.14 [20010716]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5): 인도 팝(indipop)으로 돌아온 아시안 비트 – vol.3/no.15 [20010801] 관련 글 Talvin Singh. [OK] 리뷰 – vol.3/no.11 [20010601] Talvin Singh. [Ha] 리뷰 – vol.3/no.11 [20010601] Various Artists, [Talvin Singh Presents… Anokha: Soundz Of Asian Underground] 리뷰 – vol.3/no.11 [20010601] 아시아를 벗어난 ‘아시안 비트’ (1) – vol.3/no.11 [20010601] 관련 사이트 방그라 공식 서치 엔진 http://punjabilink.com/bhangra Apache Indian 공식 사이트 http://www.karmasound.com/artists/apache/default.htm 클럽 Anokha 사이트 http://www.anokha.co.uk Talvin Singh의 [CMJ]와의 인터뷰 http://www.cmj.com/features/singh.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