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길에 있었던 일들

그렇게 2박 3일간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4월 19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니 이 글은 일본 이야기가 아니다. 별로 본 것도 없이 돌아온 주제에 주절거리는 게 너무 많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서울 촌놈, 아니 일산 촌놈 아저씨는 보고 들은 게 많았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그렇지만 이번 방문의 목적은 한국의 음반유통의 현대화를 위한 공청회에서 발제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부실한 시찰에 대해 슬슬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돌아오는 일은 매우 피곤한 것이어서 그리 많은 생각을 하진 못했다. 일본으로 가는 것도 그렇고 한국에 돌아오는 일도 좀 짜증스럽다. 비행기가 하늘에 떠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2시간일 뿐인데, 숙소에서 공항을 향해 출발하여 자기 방에 들어오기까지는 8시간 쯤 걸린다. 공항까지 버스로 가는 시간이 각각 두 시간이며, 출국 및 입국 수속을 하려면 두 시간 전까지 도착해야되기 때문에 그렇다. 하루가 꽝난다는 뜻이다.

8시간 동안은 시찰도 관광도 뭐도 아니었으므로 특별히 할 말은 없을 것 같지만 나로서는 평소에 만나기 힘든 한국 음반산업의 실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였으므로 어색함을 무릅쓰고 몇몇 사람과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거기서 한국 음반산업의 역사에 대해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나는 이른바 ‘빽판’의 출처였다. 점심 식사를 하다가 “빽판 만드시던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궁금하다”라고 한 사장님에게 물어보았는데 그분이 머뭇거리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내가 당황했다. 그분은 한때 유통업을 주름잡았던 도매상 사장님이었는데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는 “그때는 다 했지 뭐, 지구, 오아시스도 했고”라고 말했다. 그 뒤에 그는 “그때는 그게 애국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애국’이란 유신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인의 DNA에 각인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긴 ‘붉은 악마’를 보면 젊은 애들이라고 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분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1990년대 초 아직 CD가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던 무렵 [Pink Floyd Best], [Led Zeppelin Best] 식의 5,000원짜리 CD가 전국의 소매상들에 쫙 깔린 적이 있다. 이런 짝퉁 CD들에는 ‘**음반’이라는 타이틀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들 대부분은 한국 굴지의 도매상의 이름이었다. 그중 한 도매상은 장부를 손으로 기록하고(‘수기거래’), 소매상에게 음성적으로 할인해 주는(이른바 ‘빽 DC’) 등 음반유통질서를 어지럽힌 장본인이다. 최근까지 KRCnet의 공동대표로 있던 분이기도 하다. KRCnet을 추진하는 분들이 모두 이런 분들은 아니겠지만 이런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 과연 음반물류의 합리화와 전산화를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내가 e-mail을 물어보았을 때 즉석에서 불러주는 분들이 드물었으니까.

‘가요순위 프로그램’에 대한 입장도 ‘애국주의’가 작용했다. 연예제작자협의회에서 나온 분은 “그걸 폐지하면 우리 가요가 죽는다”고 주장했다. 외국의 막강한 자본의 공세 앞에서도 ‘우리 가요’가 시장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선전한 데에는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만약 순위프로그램이 폐지된다면 현재의 기득권 세력은 타격이 크지 않겠지만 신인들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다못해 30위 안에라도 들어서 이름을 알릴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연예제작자협의회라는 곳은 ‘매니저’들의 이익단체다. 실제로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폐지에 관한 말이 나왔을 때 당황한 쪽은 방송국 연예 PD들이 아니라 이들 매니저들이었다. 막말로 방송국 PD야 보수도 안정적으로 많이 받고, 폐지되면 다른 프로그램을 맡으면 되지만 가수 매니저들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없어지면 ‘홍보’가 막막하다고 불평했다. 하긴 전국의 나이트클럽을 돌면서 쇼를 하려면 춤추는 애들이 녹초가 될 판이니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의 심정도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하여튼 한국의 음악산업 시스템은 여러 가지가 꼬이고 꼬여서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비행기 안에서 한 음반사 사장님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간략히 이야기해서 KRCnet이 출범하는 등 정부가 대중음악에 대해 ‘지원’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일본문화개방’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부가 일본문화를 개방하게 되자 음반업계에서는 ‘그러면 우리는 망한다’고 주장하면서 로비(돈이 오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를 펼쳤고 그 결과 정부에서 몇가지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그 중 하나가 ’21세기 한국 대중음악 진흥재단’이라는 곳이다. 금전적 지원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 단체는 최근 ‘한일 대중음악교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고, 한일 양국의 인기가수들이 참여하는 ‘월드컵 기념음반’도 곧 나올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위 음반사 사장님은 요즘은 음반제작보다는 재단의 일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그걸 ‘우리 가요를 지키고 나아가 외국에 수출하는’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계셨다. 방금 언급한 음반에 자우림을 포함시킨 것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이미 자우림의 김윤아는 한달에 한번 일본에 가서 한 라디오의 한국어 방송의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재단이 벌이는 사업의 일환이라고 했다. 물론 이 모든 사업들은 한국의 국위를 선양하는 일로 생각하고 계셨다.

한국 음반산업 종사자들의 멘털리티

세 가지 사실을 종합해 보건대 한국의 음반업계에 종사하는 분들 특유의 멘털리티가 있는 듯하다. 이분들 대부분은 연예인 매니저(음반사 사장님들의 경우)이거나 음반상점의 점원(도매상 사장님들의 경우)으로 출발한 경우다. ‘김군’, ‘이군’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장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바닥에서부터 산전수전을 다 겪고 자신의 사업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자수성가’라는 말 아니면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요즘 젊은 애들보다야 겪은 고초가 많았다고 생각되지만 기본적으로 ‘먹물’인 나는 이들 특유의 강인함에 지레 기죽을 때도 있다.

묘한 것은 이 분들이 성공을 거둔 뒤에는 ‘정치인’처럼 변한다는 사실이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좌우지간 나름대로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 비즈니스계에 들어온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업계에서 오래 ‘굴러먹다’ 보면 모든 일에서 두뇌를 빨리 회전하게 되는 것 같다. 복장은 꼭 검은색 계통의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핸드폰을 넣고 빼기 쉬운 가죽 수첩을 가지고 다닌다. 그러니 어쩌다 이분들과 대화할 일이 있으면 한 마디 한 마디를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다. 사심없이 이야기를 꺼낼 때도 ‘상대방이 어떤 의도로 말하는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방이 자신과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으면 ‘대충’ 말하는 게 감지되고, 이해관계가 절박한 경우에는 친절하게 있는 말 없는 말 다한다.

또한 ‘윗사람’에게는 과잉친절을 베풀면서 깍듯하게 대접하는 반면, ‘아랫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반말을 하는 것을 포함하여 홀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의 위 아래를 나누는 기준이 나이가 아니라 업적, 즉 히트시킨 음반의 수라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매니저의 세계에서는 ‘나이’를 밝히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고 그러다가 나중에 ‘새파란 놈이 말을 깐’ 일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물론 방송국 PD는 아무리 젊더라도 언제나 ‘윗사람’이다. 이는 가수 및 음악인에 대한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타덤에 오른 가수에게는 ‘너무 잘해주는’ 반면 스타가 되지 못한 가수들에게는 ‘너무 못해주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 정도 언급했으면 어떤 분위기인지 전달되었을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 [weiv]를 찾는 음악 팬들(애호가들)의 멘털리티와 한국의 음악산업 종사자들의 멘털리티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사실이다. 물론 따지고 보면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의 음악 비즈니스도 197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이나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곳 역시도 매니저의 파워가 강했다는 사실은 ‘로큰롤의 역사’에서조차 톰 파커 ‘대령'(엘비스 프레슬리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비틀스의 매니저), 토니 드 프라이즈(데이빗 보위의 매니저), 심지어 맬컴 맥클라렌(Malcom McClaren)이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는 점에서도 드러난다(영화 [Velvet Goldmine]을 보면 글램 록 시대의 매니저의 역할이 나온다).

음악 비즈니스란 기본적으로 사람을 데리고 하는 장사고 그러다 보면 각종 구설수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매니저가 지배하는 음악 비즈니스계에는 업계 용어로 ‘마구리’, ‘쌈마이’가 많고, 한국의 음악산업은 아직도 ‘매니저 지배형’ 제작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사석에서 한 말을 이런 데서 밝혀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대장’이었던 D 기획의 사장님은 “현재 음반사 사장들 중에서 나랑 몇몇을 빼고는 모두 마구리다”라고 표현했다. 한국의 음반제작자들 중에서 의미있는 몇몇 분들에 대한 소개는 ‘언젠가’ 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1980년대 이후 선진국의 음악산업계는 거대 미디어 기업들이 5대 메이저 체제로 재편하면서 ‘현대화’를 완료했다. 물론 음악산업의 현대화는 1960년대 후반부터 추진되어 온 것이지만 1970년대 후반의 불황을 맞으면서 근본적인 재편이 일어났다. 그 내용은 매우 복잡하지만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음악 비즈니스 종사자들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서 음악산업은 바닥에서부터 굴러먹다가 올라온(이 말에 무슨 비하의 의도는 없다) 사람보다는 체계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에 의해 경영되기 시작했으며,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업무는 ‘음악을 좀 아는(=음악인이 되려다가 포기한)’ 사람들이 담당하게 되었다(후자가 이른바 ‘A&R man’ 이고, A&R이란 ‘Artists & Repertoires’의 약자다).

그에 반해 한국의 ‘가요’ 음반사에는 ‘정규 4년제 대학을 정식으로 나온’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이 말을 무슨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이 맡는 것이 효율적인 면이 있을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다. 하긴 한국의 대학교를 나와 봐야 음반사의 경영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아니므로 대학물 먹은 사람이 많아진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의 음반회사들이 회사의 조직을 갖추고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장의 카리스마적 지도력’ 하에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 중에는 제작부터 소매까지 모두 담당하는 신나라 레코드같이 ‘신앙의 힘으로’ 움직이는 곳도 있다. 규모가 웬만큼 큰 곳도 생겼지만 한국의 음반회사들은 ‘현대적 기업’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음반회사 그리고 음악산업이 현대화되는 것이 좋은 건지 아닌지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타워 레코드 같은 메가스토어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음반을 구매하는 것보다는 동네 판가게에서 주인 아저씨와 이런저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판을 사오던 일을 가끔 그리워하는 사람이다. LP가 CD로 바뀌면서 합리적이기는 해도 비정해진 면이 많다. 음반 뒤에는 ‘바코드’가 붙어서 공산품임을 확인해주고, 일일이 세어보지 않아도 선반의 길이만 알면 몇 장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LP와 달리 CD 케이스는 사이즈가 일정하니까).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이 중론이라면 차라리 냉정하게 추진해서라도 현대화, 합리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하다못해 ‘외국자본’이라도 유치하여 합리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나중에 이 주제에 대해 ‘한 입으로 두 말’ 할 지 모르겠다). 그런데 현재 이 사업을 추진하는 분들을 직접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취약한 것은 자본이나 기술이 아니라 ‘인력’이라는 점이다. ‘니가 발벗고 나서서 해 봐’라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 꼭 그런 문제도 아니다. 업계의 사정을 잘 알면서도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할 일이라는 이야기다. 내부 사정도 모르는 채 뛰어들었다가는 김민석이나 임종석 꼴 나지 말라는 법 없으니까.

앞에 언급한 음반사 사장님은 나에게 ‘좋은 애들 있으면 이리 좀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 사장님은 업계의 실세들 중에서는 드물게 정규 대학교를 다닌 사람이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어서’ 고충이 많다는 말도 꺼냈다. 물론 내 주위의 후배들 중에 그런 곳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도 별로 보내고 싶지 않고. 그게 한국의 현실이다. 음악 팬들 일부의 취향은 호사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선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음악이 전달되는 시스템은 웬만한 후진국보다도 낙후되어 있는 현실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합당한 에토스는 어떤 것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런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선택보다는 어느 정도 염두에 두는 것이 음악문화가 덜 척박해지는 길일 것이다. 조금…피곤하다. 20010530 | 신현준 homey@orgio.net

참고자료: 5월 4일 국회의 대중음악 정책개혁 포럼 발제문
* 지난 5월 4일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문화개혁 시민연대 주최로 개최된 ‘대중음악개혁 정책 포럼’의 자료집이 필요하신 분은 http://www.cncr.or.kr에서 hwp 파일로 된 자료를 다운로드받으십시오.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라는 1차 포럼에 이어 2차로 열린 이번 포럼에서는 한국 음반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음반유통 시스템의 개혁을 주제로 토론이 있었습니다. 제가 맡은 발제문 이외에 다른 분들의 발제문도 함께 있습니다.
이날 토론은 잘 된 편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KRCnet이라는 이름으로 음반물류센터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데 ‘업계의 이해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거대 음반제작사(도레미 등)와 거대 음반도매상(신나라)이 불참한 가운데 ‘기존 도매상과 중소 제작사’ 중심으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일에 대해서 ‘정책적으로’ 개입한다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초점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제가 성미가 급한 탓도 있을 겁니다). 더구나 지금처럼(언제나 그랬지만) 국회라는 게 있으나마나한 존재인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평소에 음반유통에 대해 문제 많다고 여기저기서 떠들고 다니던 사람들이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입니다.

관련 글
서울 촌놈 아저씨, 일본 음악산업 엉터리 시찰기 (1) – vol.3/no.9 [20010501]
서울 촌놈 아저씨, 일본 음악산업 엉터리 시찰기 (2) – vol.3/no.10 [2001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