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601011009-talvinsingh-okTalvin Singh – OK – Island/Polygram, 1998

 

 

일렉트로니카, 인도 음악과 만나다

음반의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먼저 얻은 상태에서 이 음반을 듣는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로 대별될 것이다. 하나는 음악인의 ‘국적’을 중시하여 드럼&베이스라고 부르는 테크노/일렉트로니카의 한 장르에 속하는 음악으로 듣는 것이다. 그럴 때는 ‘드럼&베이스 스타일에 인도의 전통 악기와 전통 음악을 접목한 음악’으로 들린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음악인의 ‘혈통(및 피부색)’을 따져서 ‘인도 음악’의 한 갈래로 듣는 것이다. 그럴 때는 ‘인도에 뿌리를 둔 음악이 영국으로 파급되어 첨단 테크놀로지와 조우했다’고 말하게 된다.

어느 경우나 ‘퓨전’이나 ‘크로스오버’라는 단어로 ‘뭉개버릴’ 수 있다(그건 한국 평단의 악습이기도 하다. 자기가 잘 모르는 음악에 대해서는 탈장르화니 어쩌니 하면서 저런 말을 남용한다). 전자는 음악의 ‘장소성’을 특권화하는 것이고(‘인도계 사람이라도 선진국의 환경에서 활동하다 보니 멋진 음악이 나왔다’라는 식의), 후자는 음악의 ‘민족성(ethnicity)’를 강조하는 것이다(‘인도는 음악적 자산이 풍부하여 인도계는 어디를 가도 음악을 잘한다’라는 식의). 둘 중 어느 것에 가까울까. 답은 ‘둘 다이거나 둘 다 아니다’일 것 같다.

전체적인 사운드가 ‘인도’ 혹은 ‘아시아’의 느낌(적절히 표현할 말이 없다)을 부각시킨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이는 앨범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자신이 직접 연주할 수 있다는 인도의 타악기 타블라는 물론 비틀스 이래 인도 악기의 대명사처럼 된 시타(sitar), 그리고 인도의 플루트(피리) 등의 음향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다. 이런 소리들, 때로 ‘뱀 나올 것 같은’ 소리들은 설사 이들 악기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인도’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뿐만 아니다. 10분을 넘는 대곡인 “Traveler” 그리고 “Eclipse” 등에서는 파키스탄의 카왈리(Qawwali)풍의 흐느적거리는 보컬을 들을 수 있고, 인도의 ‘영화 음악(film music)’ 스타일의 현악도 들어 있다(참고로 인도 영화 [밴디트 퀸(Bandit Queen)]의 사운드트랙에서 파키스탄의 ‘악성(樂聖)’ 고(故) 누스라트 파테 알리 칸(Nusrat Fateh Ali Khan)의 카왈리를 ‘질리도록’ 들을 수 있고,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 사운드트랙에서는 펄 잼의 에디 베더와의 듀엣을 들을 수 있다). 또한 “Mombasstic”에서는 DJ 크러시(DJ Krush)가 즐겨 사용하는, 재즈 풍의 관악기가 주도하는 트립합 풍의 사운드가 전개된다.

그렇지만 이런 사운드가 ‘아시아적’이라는 느낌으로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영미의 대중 음악을 즐겨 듣던 사람들이라도 무리없이 들을 수 있게 다가온다. 사운드의 구성을 본다면 인도의 대중음악보다는 LTJ 부켐(LTJ Bukem)의 드럼&베이스 사운드와 가장 가깝다(실제로 탤빈 씽과 LTJ 부켐은 절친한 사이인데, 사운드의 질료들이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인상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음반이 발표된 시점을 떠올린다면 ‘댄스 클럽에서 파생되었으면서도 감상용으로도 즐길 수 있는 드럼&베이스’라는 트렌드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DJ 크러시 풍의 트랙이 있다는 점도 ‘범아시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탈아시아적’으로 다가온다. 이 모든 것은 탤빈 싱이 ‘일렉트로니카 음악인의 글로벌 네트워크의 일원’임을 재확인해 준다.

힙합이 ‘정통 흑인 음악’이라는 수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아메리카 속의 아프리카’를 표상하듯이, 탤빈 싱과 그의 음악도 ‘정통 인도 음악’이라기 보다는 ‘영국 속의 인도'(혹은 ‘서양 속의 동양’, ‘유럽 속의 아시아’)를 표상한다(인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탤빈 싱의 음악을 ‘양놈들 음악’이라고 말할 것 같다). 물론 서양인에게는 ‘영적(spiritual)’으로 다가오는 사운드가 동양인에게는 하품만 나오는 것일 수 있다. 동양인들 가운데 문화적으로 ‘쿨’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일렉트로니카 음악에 삽입되는 ‘제 3세계’의 음악적 질료는 그리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걸 가지고 오리엔털리즘을 들먹일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몇몇 트랙에서 보이는 ‘오버’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인도계 영국인의 문화적 씬이 확고하게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예술적 성취임을 부정하기는 힘드니까. 20010527 | 신현준 homey@orgio.net

8/10

수록곡
1. Traveller
2. Butterfly
3. Sutrix
4. Mombasstic
5. Decca
6. Eclipse
7. OK
8. Light
9. Disser/Point. Mento.B
10. Soni
11. Vikram The Va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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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클럽 Anokha 홈페이지
http://www.anokha.co.uk
Talvin Singh의 [CMJ]지와의 인터뷰
http://www.cmj.com/features/singh.html
인도 음악 사이트: 탈라, 라가 등 인도 전통 음악 스타일, 타블라 등 인도 전통 악기 샘플 파일
http://usoc.snu.ac.kr/india/india.htm